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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구르미 그린 달빛'이 '최순실 게이트' 속 다시금 빛을 발하는 이유... 효명세자(박보검)와 홍경래 집안(정해균·김유정)의 반전 결말이 준 긴 여운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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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구르미 그린 달빛'이 '최순실 게이트' 속 다시금 빛을 발하는 이유... 효명세자(박보검)와 홍경래 집안(정해균·김유정)의 반전 결말이 준 긴 여운과 교훈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11.0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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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윤정 기자] 대한민국이 연일 ‘최순실 게이트’로 떠들썩하다.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논란은 점차 그 파장이 커져 정치권을 넘어서 연예계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의 정치적 사건을 모티브로 했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재조명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0월 종영한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박보검과 김유정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위주로 얘기를 전개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왕세자와 세도가의 정치싸움 얘기를 부각하며, 박보검·김유정의 로맨스 외에 또 다른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재미를 선사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결말은 역사와도, 원작 소설과도 달랐다. 역사에서의 효명세자는 비운의 세자로 기록돼 있다. 대리청정을 하며 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애를 섰지만, 결국 왕이 되지 못하고 21살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친 효명세자의 얘기를 담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떠들썩한 현시점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 KBS 2TV 종영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화면 캡처]

원작 소설 속 이영은 왕세자의 신분을 버리고 홍라온과 쌍둥이를 낳아 살았다는 내용으로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드라마는 원작소설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이영(박보검 분)이 왕위에 올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는 점 등으로 차이를 뒀다.

효명세자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09년(순조 9년)이었다. 3세 때 '영'이라는 이름과 함께 왕세자로 책봉됐던 효명세자는 효성스럽고 명민했으며, 문학과 예술적인 능력도 갖췄던 인물로 평가된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할아버지 정조를 모델로 삼았을 뿐더러, 여러 모로 성군의 자질을 타고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왕 순조가 자신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18세의 나이인 왕세자 이영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효명세자가 비범한 재목이었음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효명세자는 1830년(순조 30) 윤4월 말에 돌연 각혈한 뒤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영조와 정조 시대의 탕평책을 거울 삼아 세도가의 전횡을 막고 조선 왕실의 중흥을 꾀하려던 순조와 효명세자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효명세자의 불운한 단명은 조선왕조의 몰락을 재촉한 비극이었던 동시에, 조선 백성이 나라 잃은 설움을 겪게 만드는 시발점이 됐다고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헌종-철종-고종'으로 이어진 조선 왕실의 계보는 순탄하지 않았고, 안동 김 씨에 이어 풍양 조 씨가 주도한 세도정치는 나날이 극심해졌다. 

자연히 조선 정부의 정책은 백성의 민생과 멀어졌고, 힘없는 백성을 행한 관료들의 착취는 나날이 심해졌다. 이같은 핍박은 끝내 동학농민운동(1894년·고종31)으로 폭발하고, 이를 외세를 끌어들여 막으려한 조선 정부의 결정적인 과오는 결국 국권 피탈이라는 역사적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은 풍등제에서 풍등을 팔던 꼬마(강주은 분)에게 "좋은 나라란 어떤 나라더냐?"고 질문을 던졌고, 꼬마는 "그야 백성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임금님이 아시겠죠"라는 답을 얻으며 백성들을 생각하는 성군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 = KBS '구르미 그린 달빛' 방송화면 캡처]

역사에 가정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러모로 효명세자의 갑작스런 승하는 조선 후기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음은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효명세자 이영과, 정해균과 김유정이 모녀로 등장한 홍경래와 그의 딸 홍라온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은 '구르미 그린 달빛'의 결말은 드라마의 결말 이상의 감동을 줬다. 

홍경래의 난은 당시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분노와 저항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줬던 상징적인 농민반란이었기 때문이다. 이 난은 평양 출신의 홍경래가 지방 차별 폐습 등에 반기를 들고 1811년(순조 11) 12월에 일으켰으며 이듬해 4월까지 약 5개월간 지속됐다.

드라마에서 이영 역할을 맡았던 박보검은 처음부터 진정한 군주였다기보다는 성장을 통해 성군이 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는 자신의 벗인 김윤성(진영 분) 가문을 멸해야 하는 고뇌나 자리에 대한 부담감 등을 드러내면서도, 남다른 결단력과 지혜로움으로 책임감 있는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

실제 효명세자가 살아간 삶과는 다른 행복한 결말, 그리고 박보검이 나타낸 이영의 정치력에 시청자들은 ‘구르미 그린 달빛’, 또 배우 박보검에 주목했다. 여기에 조선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렸던 박보검의 연기력과 수려한 외모는 시청자들을 더욱 드라마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결말까지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다가서며 만족감을 높였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효명세자의 신분의 차별 없이 백성을 사랑한 삶이나, 홍경래를 따르는 백성들의 분노, 세도가들의 전횡에 대한 단죄도 대중의 바람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 대리만족시켰고, 이로 인해 후반부로 향할수록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제목은 백성을 뜻하는 ‘구름’과 군주를 뜻하는 ‘달빛’이 더해져 ‘백성의 뜻으로 그려낸 군주’란 의미를 갖는다. 드라마 속 박보검은 친근한 성군이 될 것을 다짐하며 곧은 정치를 펼치고자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민심이 싸늘해진 현시점에서, ‘구르미 그린 달빛’이 주는 의미가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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