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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서늘함과 뜨거움의 대결, 한석규 이제훈 vs 송강호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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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서늘함과 뜨거움의 대결, 한석규 이제훈 vs 송강호 유아인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09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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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드라마와 영화가 잇따라 조선 왕조 500년 잔혹사의 주인공인 영조와 사도세자를 호출하고 있다.

SBS는 24부작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연출 김형식·극본 윤선주)을 방송 중이다. ‘맹의’와 ‘신흥복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드라마틱한 관계를 훑어간다. 영화계는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사도’ 촬영에 한창이다. 영조에서 정조에 이르는 56년의 역사를 담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게 된 인과관계에 대해 접근한다.

◆ 다양한 텍스트로 읽히는 애증의 부자관계 ‘영조-사도세자’

드라마·영화에서 가장 많이 초점을 맞추는 역사적 배경은 조선시대다.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오브제로 삼아지는 인물이 광해군과 정조다. 캐릭터가 지닌 드라마틱한 면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올해 상반기 ‘역린’이 두 인물을 다룬 화제의 영화들이다.

영·정조가 조선을 지배했던 시기는 조선 후기 부흥기였다. 왜란과 호란 이후 침체했던 조선이 활기를 찾고, 근대화의 싹이 트던 시기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을 지향했던 ‘현실적인’ 영조와 신분의 귀천 없는 평등한 세상을 주창했던 ‘이상적인’ 사도세자(본명 이선)는 부자간 갈등을 겪었다. 이로 인해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 '비밀의 문'의 한석규와 이제훈

사도세자는 조선의 왕족 중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인물이다. 정조의 생모이자 사도세자의 빈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이 있던 것으로 적고 있지만 해석이 분분하다. 최근 여러 서적에선 사도세자가 광인이 아니라 노론에 맞서 북벌을 추진하고, 서인 등용 등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까지 하다.

사도세자는 14세에 선위를 선포한 부왕을 대신해 대리청정을 할 만큼 총명했으나 노론세력의 줄기찬 무고로 인해 영조의 불신을 사 세자 폐위에 이어 자결을 명받았고, 이를 거절하자 서인으로 폐하여졌다. 결국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죽었다. 불과 28세였다. 훗날 영조는 죽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고 자신의 과오를 후회했다.

관객과 시청자의 뇌리에 가장 충격적으로 입력되는 대목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이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애증, 사도세자의 참혹한 죽음은 흡입력 강하게, 다양한 텍스트로 활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노·소론이라는 붕당정치의 헤게모니 싸움, 비정한 권력의 본질 등 대중의 궁금증과 기대심리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영화에 있어 고부가가치 아이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시금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 한석규-이제훈 ‘절제된 서늘한 연기’ vs 송강호-유아인 ‘뜨겁게 폭발시키는 연기’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한석규(50)와 송강호(47), 젊은 연기파 이제훈(30)과 유아인(28)은 각각 영조와 사도세자를 어떤 연기 결로 표현해낼까.

스릴러 터치로 진행되는 ‘비밀의 문’에서 노론의 지원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영조는 취약한 정통성 때문에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선위 소동을 벌이며 정국을 주도하고, 노론과 소론 간 권력다툼 속에서 권력을 유지하려 애쓴다. 영조를 연기하는 한석규는 전작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 연기에서 보여줬듯 ‘근엄한 왕’에 갇히지 않고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 '사도'의 리딩 연습에 참석한 당시의 송강호와 유아인

다면적이면서 디테일한 캐릭터 연기는 압도적이다. 영조의 기품과 상스러움, 광기와 유약함, 선병질적이고 괴팍한 성정이 한석규의 몸을 빌려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선정을 펼치고 싶은 욕구와 태생적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외로운 제왕의 모습, 세자를 사랑하면서도 정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복잡미묘한 심리는 특유의 윤기 나는 목소리를 통해 시청자의 가슴에 정확히 꽂힌다.

한석규의 원맨쇼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사도세자는 다소 몰입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 달리 엄한 아버지에 주눅 든 유약한 아들이 아닌 정의감에 불타는 사도세자를 연기하는 이제훈은 기복이 없는 배우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성장해왔다. 군 제대 후 복귀작 ‘비밀의 문’에선 더욱 성숙해진 모습이다. 노회한 정치력의 아버지와 달리 반듯하지만 정치적으로 순진한 면모를 매끄럽게 대비시키고 있다.

한석규와 이제훈은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폭발시키기보다 절제함으로써 감동을 자아낸다. 지적인 연기라 서늘하다. 반면 송강호와 유아인은 뜨겁다. 송강호는 서민적 희로애락 리듬과 밀착된 자신의 감성을 뜨겁게 폭발시킬 줄 안다. ‘천만배우’ ‘국민배우’ 소리를 듣는 이유다. 유아인 역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완득이’ ‘성균관 스캔들’ ‘밀회’ 등에서 그 또래 배우들에게서 맛보기 힘든 깊이와 뜨거움을 발산했다.

◆ 송강호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 영조 연기 통해 경험"

한석규와 송강호로부터 강인함이 절로 느껴진다면, 이제훈과 유아인에게선 부숴지기 쉬운 청춘의 유약함이 엿보인다. 영조와 사도세자 캐스팅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칭이다.

영화 '사도'에서 송강호는 완벽을 추구하는 강인함 뒤에 인간적 결함을 지닌 복잡한 영조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유아인은 사도세자로 분해 연민과 공감을 자아낼 예정이다. 송강호는 “나를 떨리게 한 작품이다. 영조를 맡아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연기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유아인은 “내내 기다리고 기대했던 작품이다. 촬영 전부터 '사도'에 대한 확신과 열망이 컸다”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한석규-이제훈은 파국으로 치닫는 부자의 운명을 어떤 얼굴로 전개해나갈까. 송강호-유아인의 빅뱅은 스크린에 어떻게 펼쳐질까. 기분 좋은 호기심이 밀려든다.

[Tip!] 1997년 영화 '넘버3'에서 당대의 톱스타 한석규는 조직의 넘버 1이 되고 싶은 폭력조직 도강파의 넘버3 태주 역으로, 무명의 연극배우 송강호는 일자무식 무소속 건달 조필로 출연했다. 주연 한석규는 양아치 깡패 역을 페이소스 짙게 소화했다. 정작 개봉 후 사람들의 관심은 하이톤의 경상도 사투리로 '현정화' '무대뽀 정신' '내 말에 토..토..토달면 작살내 버리겠어'를 외치던 듣보잡 조연 송강호에게 몽땅 쏠렸다. 99년 강제규 감독의 블록버스터 첩보영화 '쉬리'에서 한석규는 주인공인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 OP의 특수비밀요원 유중원으로, '넘버3' 이후 일약 신분 상승한 송강호는 그의 절친한 동료 요원 이장길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이후 두 명배우의 공연은 볼 수 없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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