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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배구팬 위한 판정개혁과 '1000번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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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배구팬 위한 판정개혁과 '1000번의 숙명'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0.17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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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첫 시즌 맞는 김건태 KOVO 심판위원장...괴롭고 외로워도 한 길 걸어야 '진짜 포청천'

[300자 Tip!] 보통 배구가 한 경기에서 5세트까지 진행되면 심판은 1000번의 판정을 내린다고 한다. 그 판정을 모두 옳게 내린다고 해도 칭찬을 받기 힘든 게 배구심판이며, 단 한 번을 틀려도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는 게 배구심판이다. 배구심판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직업이다. 그런데 이 길을 무려 29년 동안이나 걸어온 이가 있다. 바로 김건태(62)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위원장이다. 그는 선배의 권유로 심판 세계에 뛰어든 뒤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심판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위치까지 올랐지만 김 위원장은 한 길만을 우직하게 걷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경험한 배구심판의 고충과 숙명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이상민 기자] 지난해 말 현역 심판에서 은퇴한 김건태 KOVO 심판위원장의 별명은 ‘코트의 포청천’이다.

중국 송나라 때 판관으로서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벌했던 포청천의 이름에서 따온 그의 별명은 그가 배구심판으로서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 '코트의 포청천' 김건태 KOVO 심판위원장은 지난 7월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올시즌 V-리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심판 아카데미를 개설, 신입 심판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건태 위원장은 현역 배구선수로(센터) 활약하다 은퇴하고 일반 회사를 다니다 1985년 심판에 입문했다. 2년 후 국내 A급 심판이 된 그는 1998년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 자격을 얻었다.

또 그는 20년 동안 국가 간 성인대표팀 경기에서 총 350여회 심판을 맡았고 그랑프리, 월드리그,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12회 주심을 봤다. 이런 공로로 2010년 FIVB는 김 위원장에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6월 20일 KOVO 심판위원장에 임명돼 18일 2014-2015 V-리그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왔다.

지난 7월 5일부터 8월 17일까지 7주간은 25명의 수강생들과 심판 아카데미를 실시했다. 김 위원장은 한 여름에 체육관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던 기억을 되살리며 “정말 힘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또 올시즌 V-리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16일까지 남녀 13개팀을 찾는 구단 순회 배구규칙 설명회를 실시한 그는 코트 밖에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교육 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심판 평가, 연습경기 참관 등 아직 시즌이 시작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입 안이 헐 정도로 심판위원장으로서 쉼 없이 움직였다.

◆ '이론'과 '실전' 고르게 뛰어나야 좋은 심판

서류 지원자 72명 중 1차 합격자 25명을 추려내고 한여름 7주 동안 실시한 심판 아카데미는 심판들의 역량을 단기간에 향상시키기 위한 지옥의 레이스였다.

김건태 위원장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론교육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야간 실전교육까지 모두 혼자서 지휘했다.

“프로 선수 출신 교육생 3명도 아카데미에 참가했습니다. 이 선수들이 KOVO 전임 심판이 된다면 앞으로 많은 선수 출신 심판들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에 교육을 수료한 프로선수 출신 교육생은 신경수(36·전 대한항공)와 송인석(36·전 현대캐피탈), 김은영(24·전 KGC인삼공사)으로, 이들은 심판 아카데미를 마친 뒤 KOVO 주관 심판 보수교육을 통해 새내기 심판을 향한 첫 발을 내디뎠다.

▲ 현역 시절 김건태 심판. 1985년부터 29년 동안 배구심판의 길을 걸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보수교육을 마친 뒤 또 한 번 평가를 거쳐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바로 이번 시즌부터 V-리그 전임심판으로 활약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합격자 25명 중 19명은 선수 출신이 아닌 교육생이었다. 김 위원장은 선수 출신이든 아니든 심판은 이론과 실전 모두 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 선수 출신은 실전에 강하고, 비선수 출신은 이론에 강하기 마련”이라며 “좋은 심판은 이론과 실전의 역량이 비슷한 심판이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면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합의판정 폐지로 '스피드 업' 실현한다

팬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프로스포츠는 ‘스피드 업’이라는 규정을 도입, 경기시간을 단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경기를 지루하게 끌지 않고 빨리 마치는 것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프로스포츠는 변화의 바람에 앞장서고 있다. 프로야구는 주자가 없을 때 투수가 12초 이내에 투구하지 않을 경우 1차로 경고, 2차로 볼을 판정하게 돼 있다.

프로축구에서는 골키퍼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6초 이상 공을 소유할 수 없으며, 프로농구는 빠른 진행을 방해하는 경기의 지연에 대해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부터는 팀파울을 적용하고 있다.

▲ 김건태 심판위원장은 "방송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심판이 잡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시즌부터 적용하는 심판 합의판정 폐지는 심판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프로배구도 뒤늦게나마 경기 시간을 줄이는데 동참했다. 올시즌 V-리그를 앞두고 바뀐 로컬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심판 합의판정 폐지’다.

KOVO가 지난 7월 컵대회를 앞두고 합의판정을 폐지하는 대신 비디오 판독 횟수를 1회에서 2회로 늘렸는데 이것이 대회를 치르면서 좋은 반응을 얻자 정규리그에 도입키로 한 것이다.

“합의판정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없기 없어서 호평을 얻고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비디오 판독 2회도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5세트에 한해 비디오 판독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습니다.”

KOVO는 4세트까지 비디오 판독 2회를 모두 소진할 경우 5세트 10점을 넘긴 상황에서 양 팀이 비디오 판독 1회를 더 사용하게 했다. 승부처에서 비디오 판독 기회를 사용함으로써 오심이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 결정이다.

“심판은 한 경기에서 1000개 가량 판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사소한 판정 하나에도 합의판정이 이뤄진다면 경기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죠. 스포츠의 묘미 중 하나는 ‘연속성’입니다. 관중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플레이에 열광하거든요. 따라서 이번 합의판정 폐지는 V-리그의 주인공인 팬들을 위한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 심판과 현장은 '불가근 불가원' 관계

심판 아카데미와 보수교육을 거쳐 KOVO 전임심판이 되면 본격적으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바로 주변 사람들과 선을 그어야 하는 절차를 거친다.

김건태 위원장은 현역 때 KOVO 심판위원과 FIVB 심판, 아시아배구연맹(AVC) 심판위원을 동시에 맡았다. 이때 그는 1년 365일 중 300일 동안 가족들의 얼굴을 못 봤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자녀들과 아내에게 영점짜리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 김건태 심판위원장은 올시즌부터 배구 코트가 아닌 관중석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전망이다. 그는 불시에 체육관을 방문해 심판위원들의 고과를 매길 예정이다.

배구심판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구단 지도자나 관계자들과 가깝게 지내면 안된다. 또 이들은 야구와는 다르게 조를 짜서 이동하지 않고 개인별로 경기장에 배치된다. 혼자서 모든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낼 수밖에 없다.

배구심판이 이렇게까지 고립돼야 하는 이유는 심판 스스로가 깨끗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심판은 청렴하면서 분명하고 정확한 판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심판이 가져야 할 의무다”라며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해도 한 번의 오심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는 게 심판이다. 따라서 심판은 정말 외로운 직업이다”라고 말했다.

김건태 위원장은 프로배구 외에 대한체육회(KOC)에서 주관하는 ‘클린 심판아카데미’에서 ‘좋은 심판 조건과 판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종목을 떠나 심판의 윤리적인 자세와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중이다”라며 “어떻게 하면 심판으로서 자기관리를 잘 할 수 있는지 내 경험담을 바탕으로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끝으로 팬들에게 배구심판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십사 당부의 말을 전했다.

“올시즌 V-리그 240경기가 생중계로 방송됩니다. 방송 기자재는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요. 그것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심판이 규칙을 모르거나 편파판정을 한다면 즉시 퇴출돼야 할 것입니다. 올해 새로 충원된 인원과 기존 심판들이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하고 있으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건태 위원장이 심판위원들의 수장이 돼 치르는 첫 시즌이 다가왔다.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코트의 포청천’ 역할을 수행할 그의 활약에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

[취재후기] 올시즌 새로 합류한 심판위원들이 지속적으로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게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처우개선이다. 김건태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심판위원들이 KOVO 전임심판을 하면서 넉넉한 삶을 보장받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들을 앞으로 프로배구계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심판 양성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예산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처우를 보장할 수 있는 예산도 확보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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