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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치욕의 588' 벗어나려면? 광주의 마음은 '색깔있는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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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치욕의 588' 벗어나려면? 광주의 마음은 '색깔있는 야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12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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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의 팬심, 해태 시절 보여줬던 끈끈함 실종에 실망…투수·타력·수비 모두 정신력 가다듬고 물갈이 바라

[광주=스포츠Q 박상현 기자]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은? 모두 알겠지만 KIA 타이거즈다. 해태 시절의 9회 우승과 함께 2009년 우승까지 'V10'을 달성한 팀이다.

그러나 KIA는 올해까지 3년을 치욕과 어둠 속에서 보냈다. 2012년 5위를 시작으로 지난해 8위에 이어 올해도 8위가 확정됐다. 광주 팬들은 이를 두고 '치욕의 588'이라고 말한다.

KIA는 해태 시절을 포함해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한 것이 이번이 두번째다. KIA의 전신인 해태는 1986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12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역사도 있지만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해태의 이름이었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IMF 사태로 해태가 사실상 구단 운영에 손을 놓으면서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2001년은 KIA로 인수되고 나서 첫 시즌이었다.

▲ [광주=스포츠Q 최대성 기자] KIA 치어리더와 홈 관중들이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과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뜨거운 응원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라는 새로운 구장도 생겼고 구단의 지원도 든든하다. '광주 야구의 레전드'인 선동열(51) 감독까지 3년 전에 영입하며 명문구단 재건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결과는 '588'이었다. 이와 함께 광주 팬들의 마음도 얼어붙었다.

KIA 구단 역시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라는 '새 집'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 무색무취 맹맹한 팀 분위기가 부진의 원인

삼성과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홈경기가 벌어진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는 겨우 3054명의 관중만이 있었다. 구장 최대 수용 규모가 2만7000명이기 때문에 거의 비었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테라스석으로 마련된 2층과 3층 역시 금방 몇 명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물론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이긴 했지만 경기를 보는데 크게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부산 못지 않게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보이는 광주 야구팬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그대로 대변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KIA 팬 최기영(29) 씨는 "흠 잡을 것 하나 없는 좋은 구장에 사람들이 텅 비어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경기장을 찾지 않는 것은 당연히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그는 "택시를 타고 구장을 찾으면 'KIA 야구 뭣하러 보느냐'는 택시 기사의 핀잔이 돌아올 때가 많다"며 "성적이 좋아지면 팬들이 많이 찾아올텐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 [광주=스포츠Q 최대성 기자] KIA와 삼성의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진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는 3000여명의 관중만이 입장했다. 홈팬들이 모인 3루쪽 관중석은 물론 외야석과 1루 관중석 모두 텅 비었다.

삼성에서 성공적인 지도자로 평가받은 선동열 감독이 맡았음에도 '588'의 치욕을 당한 이유가 뭘까.

이에 대해 광주 팬들은 정신력의 실종과 무색무취 야구를 이유로 들었다.

김민규(25) 씨는 "야수 수비를 먼저 지적하고 싶다. 수비를 하는 것을 보면 간혹 공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며 "조금만 몸을 던져도 안타 하나 막을 수 있고 주자를 한 베이스 덜 가게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질 못한다. 쉽게 포기하고 맥빠진 경기를 하는 경기를 누가 보러오겠느냐"고 말했다.

또 범성준(37) 씨는 "예전 해태 시절에는 강한 마운드가 있었고 조범현 감독이 KIA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켰을 때는 타격에 깐깐한 야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색깔이 없는 야구"라며 "색깔 있는 야구를 찾으려면 선수단을 대폭 물갈이해야 한다. 투수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투수 2명을 모두 선발로 채워서 강한 선발 마운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기대 받고 온 레전드 감독, 3년만에 싸늘하게 바뀐 시선

KIA가 2년 연속 8위의 성적을 올린 것에 대해 광주 팬들은 선동열 감독에 대해 책임을 묻는 분위기였다. 광주 야구의 레전드로서 당연히 존중해주고 대접해줘야 하지만 KIA 사령탑으로서는 3년이란 시간은 충분했다는 것이다.

범성준 씨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나무랄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을 통솔하는 감독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선수 장악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광주=스포츠Q 최대성 기자] KIA 선동열 감독이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과 프로야구 홈경기 직전 덕아웃에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어 범 씨는 "KIA가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면 '하드코어'로 가야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선수단을 장악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김성근 감독 같은 지도자가 광주 야구를 대표하는 KIA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여성팬은 장미라(28) 씨도 같은 의견이었다. 장 씨는 "선수들의 정신력이 떨어지는 것은 역시 감독이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개인의 능력을 하나로 뭉쳐 팀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지도자가 가장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김성근 감독이 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기영 씨는 "그래도 광주 야구를 대표하는 감독인데 쉽게 내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3년 임기 계약이 끝났지만 딱 1년만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경질에 반대 의사를 내놓기도 했다.

◆ 강한 테이블 세터, 너무 약한 중심타선

KIA에는 국내 최고의 테이블 세터진이 있다. 두 선수의 몸값만 74억이다. KIA는 지난해 4년 50억원에 김주찬(33)을 데려온데 이어 올 시즌 이용규(29)가 한화로 가 비어버린 톱 타자 자리를 4년 24억원을 주고 이대형(31)을 데려왔다. 특히 이대형은 광주일고 출신이어서 '광주의 아들'이 다시 돌아온 효과도 있었다.

두 선수의 활약은 선동열 감독은 물론이고 광주 팬들을 흡족하게 했다.

LG 시절 '슈퍼소닉'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빠른 발 하나는 일품이었던 이대형은 11일까지 타율 0.315로 리드오프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2012년 0.179, 지난해 0.237의 타율과 비교해도 눈부신 성과다. 도루는 22개로 이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빠른 발을 자랑했다.

지난해 부상 때문에 47경기 출장에 그쳤던 김주찬 역시 올 시즌 0.348의 타율과 함께 22개의 도루로 이대형과 함께 44도루를 합작했다.

▲ [광주=스포츠Q 최대성 기자] KIA 이대형(왼쪽0이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과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3회말 안타를 친 뒤 김창희 1루 코치의 격려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심 타선이었다. 브렛 필(30)은 타율 0.313으로 괜찮았지만 홈런이 18개에 불과했다. 나지완(29) 역시 홈런이 19개에 그쳤고 이범호(33)도 홈런이 18개뿐이다. 그나마 나지완은 부상으로 현재 전력에서 제외됐고 이범호가 4번으로 올라왔다. 안치홍(24)이 5번으로 '승진'했지만 그 역시 18홈런으로 20개를 채우지 못했다.

이를 보는 광주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테이블 세터진과 중심 타선이 너무 비교되기 때문이다.

정태훈(31) 씨는 "결정적일 때 한방을 터뜨려주는 선수들이 없다. 예전 해태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KIA 모두 기회가 왔을 때 시원스러운 홈런을 쳐주는 선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넥센 같은 경우는 박병호(28)가 49개, 강정호(27)가 38개를 치고 나이가 많은 이승엽(38·삼성)도 홈런이 32개나 된다"고 지적했다.

KIA가 팀 홈런에서는 11일까지 117개로 전체 4위에 해당한다. 117개면 아주 나쁜 기록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이 문제다. 중심 타선의 무게감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 '광주일고 삼총사'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

적지 않은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기 위해서는 팀내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KIA에는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해줄만한 선수가 없다. 이로 인해 KIA에는 끈끈함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광주 팬들은 '광주일고 삼총사'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가졌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서재응(37)과 김병현(35), 최희섭(35)이 그들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전이던 1996년 해태의 2차 우선으로 지명을 받은 서재응은 미국 생활을 마친 뒤 KIA로 돌아왔고 최희섭은 2007년 해외 선수 특별지명을 통해 입단했다. 김병현 역시 해외 선수 지명을 통해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가 올 시즌 KIA로 트레이드됐다.

▲ [광주=스포츠Q 최대성 기자] KIA 김주형(오른쪽)이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과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7회말 권혁으로부터 홈런을 뽑아낸 뒤 김종국 3루 코치와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광주 팬들은 김병현까지 들어오자 '판타스틱 3'가 완성됐다며 쌍수를 들었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알짜 활약을 해주며 KIA를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재응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단 한 번도 10승을 기록한 적이 없다. 2010년과 2012년에 9승을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최희섭은 올시즌 완전히 '실종'됐다. 1군은 물론 퓨처스리그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김병현도 3승6패에 7.59의 평균자책점으로 기대 이하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들이 1군에 있는 것 자체가 '특혜'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최희진(24) 씨는 "서재응과 김병현, 최희섭이 KIA에서 함께 뛰는 것은 광주 팬들에게 로망이고 꿈이었다. 그런데 정작 세 선수를 한 장소에서 본 적이 없다"며 "선수 개개인 사정이 있고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도 충분히 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겪었던 풍부한 경험을 젊은 선수들에게 전해줄 기회가 없는 것은 분명 아쉽다. 이들이 광주 야구를 대표해 리더 역할을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KIA는 12일 경기에서 삼성에 4-8로 졌다. 전날 5-4 승리로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개장 이후 처음으로 삼성을 꺾은 기쁨은 채 하루를 가지 못했다. 이와 함께 KIA는 삼성에 올 시즌 15차례 대결에서 3승12패로 일방적으로 밀렸다.

광주 팬들은 내년에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새로운 KIA 야구를 보고 싶어 한다. KIA는 광주 팬들이 바라는 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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