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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우울한 체육계 현주소] ⑤ 정유라-장시호, '체육특기생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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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우울한 체육계 현주소] ⑤ 정유라-장시호, '체육특기생은 아무나 하나?'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11.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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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이화여대 입학으로 본 체육특기생 입시의 자격과 문턱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금메달을 보여드려도 되나요?”

2014년 10월 18일.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면접 현장. 청담고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은 고사장 반입이 금지된 메달을 테이블 위에 자랑스럽게 펼치며 면접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일반 수험생과는 달리 눈에 띄는 원색의 승마복을 입은 채였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정유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이다.

정유라는 그렇게 이화여대 승마 체육특기생이 됐다.

이미 정유라는 2013년 4월 상주에서 열린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그러자 경찰이 경기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며 심판들을 조사했다. 문화체육관광부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문체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은 이 비리를 투명하게 보고했다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혀 공직을 떠나야 했다. 한 언론을 통해 나온 "정유라가 고교 2년이던 2013년부터 승마 특기생을 뽑지도 않는 이대에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정유라 지인의 증언은 세상이 정유라 그녀만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최순실 조카인 장시호 또한 이에 못지않다. 성적은 최하위 바닥권인데도 장시호는 명문사학인 연세대에 승마 특기생으로 당당히 입학했다. 1996년 전국승마대회 1위 등 총 7개 대회 9개 부문에서 3위 안에 입상했지만 이는 모두 국내기록이었다. 장시호 역시 입시 특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변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순간 “체육특기생을 시켜볼까?” 하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또 체육특기생의 자격과 조건이 쉽다고 여길 수도 있다.   

체육특기생이 분노하는 지점은 여기다. 대개 초등학생 때 선수생활을 시작해 모든 걸 운동에 바친 이들이니 해도 너무한 정유라의 입시 특혜에 분통이 터진다. 전국대회나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 명문대에 겨우 원서를 낼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까지 배구를 하다 잦은 부상으로 현재 코트를 떠난 A씨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새벽, 오후, 야간 운동으로 보냈다. 방학 때는 오전 운동도 했다. 수업도 다 참석해야 했다”며 “그렇게 6년을 보내면서 팀 성적까지 내도 명문대를 갈 수 있을까 말까다. 나 같은 사람이 전국에 수백 명은 될 것”이라며 체육특기생 입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K리그에서 뛰다 은퇴하고 현재 축구 분석관 공부를 하고 있는 B씨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있는 모든 고3 선수들이 명문대 진학을 원하기 때문에 경쟁률만 놓고 본다면 대학에서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기 포지션에서 다섯손가락 안에는 들어야 연고대에 갈 수 있다고 본다. 최상위 레벨의 실력을 바탕으로 대회 성적과 팀의 인지도, 감독과 주변 인맥의 영향력, 경제력까지 뒷받침됐을 때 진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체육특기자전형을 살펴보자. ‘원서모집 마감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규모 대회에서 개인종목 3위 이내 입상자’를 대상으로 한다. 1단계에서 3.5배수 내외를 뽑고 2단계에서 성적 80%에 면접 20%를 더해 최종합격자를 선발한다. 이번 수시에는 6명 모집에 81명이 지원했다. 경쟁률 13.5대1이다.

운동부가 유명한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야구, 축구, 럭비, 아이스하키 등 단체종목의 경우 대개 각 종목 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 소속팀 경기의 30% 이상을 출전하고 전국대회 16강 이상에 진출한 자만이 원서를 넣을 수 있다. 승마, 펜싱, 빙상, 수영같은 개인종목은 이화여대 전형과 마찬가지다.

수도권에서 고교야구팀을 지휘한 지도자 C씨는 “야구에서 16강, 8강에 진출하는 학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 선수층이 두껍고 전통 있는 팀이 반복해 토너먼트 상위권에 들다 보면 신생팀은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워 진다"며 "때문에 개인 기량이 뛰어나도 명문대에 원서도 넣을 수 없는 이들이 태반이다. 감독, 부모 속은 타들어 가는 와중에 정유라 사건을 보고 있으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직 야구 지도자인 D감독 역시 “스포츠로 학교를 광고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느냐. 우리 때와 달리 대학 입학 정원도 줄었다. 과거에는 우수한 체육특기생이라면 등록금도 내지 않았는데 이젠 절반 가량은 부담하는 걸로 안다”며 “이렇게 열악한데 말 타서 대학 가는 장시호 정유라같은 학생이 있으니 씁쓸할 뿐”이라고 말했다.

고교야구팀은 전국에 71개가 있다. 대학팀은 30개뿐. "매년 250여 명에 달하는 졸업생이 대학 진학을 노린다"고 C씨는 설명했다. D감독은 "대학야구의 위상이 줄면서 15명까지도 뽑던 과거와 달리 정원도 7~8명으로 줄어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수도권 명문대의 문이 많이 좁아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17일 대학수능능력시험이 끝났다. 대학 입시를 위해 12년을 달려온 학생과 부모가 가장 마음을 졸이는 시즌이다. 각 대학은 곧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최종합격자 명단을 공지할 것이다.

체육특기자는 더 간절하다.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남들 쉴 때 뒹굴고 다쳐가며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유라는 SNS에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고 적어 전국의 체육특기생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배구를 그만두고 체육행정을 공부하며 유학을 준비 중인 E씨는 "나는 수능을 3번이나 볼 정도로 입시에 매달렸다. 출발이 늦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며 "정유라 사태를 보며 권력 하나만으로 사회가 돌아가는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교육기관이 그랬다니 더욱 씁쓸하다"고 말했다.

A씨는 “정유라는 도를 넘었다. 화 나지도 않는다.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라고 허탈해 했다. B씨 역시 "그냥 이런 바닥에서 어떻게 해서든 잘해보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며 "돈 없고 백 없으면 열심히라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고 자조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1일 “정유라를 곧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입학처와 총장실, 기획실, 체육대학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한국마사회 현명관 회장도 참고인으로 불렀다. 체육특기생의 자존심을 짓밟은 ‘다이아몬드 수저’ 정유라의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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