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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한국의 그렉 잭슨, 싸비MMA 이재선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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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한국의 그렉 잭슨, 싸비MMA 이재선 감독을 만나다
  • 박성환 기자
  • 승인 2014.10.15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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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성환 기자] 그렉 잭슨을 아는가. 전세계 종합격투기 팀들 중에 가장 핫한 팀으로 꼽히는 ‘그렉 잭슨 MMA 아카데미’의 대표이자, UFC 사상 최강의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으로 불리는 존 존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다. 그가 펼쳐내는 치밀한 전략과 상대 분석 능력은 MMA 지도자들 중 최고로 인정받는다.

그러한 그렉 잭슨의 이름을 별명처럼 달고 다니는 한국인 지도자가 있다. 바로 싸비MMA의 수장인 이재선 감독이다. 그에게 왜 한국의 그렉 잭슨이라는 애칭이 붙은 걸까?

코리안탑팀의 전찬열 대표와 하동진 감독, 팀매드의 양성훈 관장과 더불어 미래의 한국 종합격투기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로 손꼽히는 이재선 감독을 스포츠Q에서 만났다.

 

▲ "서울 번화가의 중심 홍대입구역 앞이라 임대료가 너무 비싸요." 하지만 자기 피붙이같은 코치들의 생계를 우선 걱정하는 이재선 감독이다.

- 반갑다. 이젠 선수는 완전히 그만두고 지도자의 길에 올인하는 것 같은데.

▲ 아니다. 케이지 위에서 싸우는 내 선수들을 보면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가 싸우고 싶다. 경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체육관 경영과 선수부, 일반관원 지도에 집중하다 보면 좀처럼 내 훈련을 할 시간이 안 난다. 더구나 국내외 대회에서 소속 선수들의 시합 스케줄이 계속 잡히다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유파시의 유우성 관장, 강남 팀파시의 위승배 관장은 아직 선수생활을 포기한 것 같지 않아보이던데? 선수 겸업을 유지하는 지도자들을 보면 자극받지 않나.

▲ 당연히 자극 받는다. 선수의 뒤편에서 세컨드만 볼 때보다는 내가 직접 시합을 뛸 때 더욱 느끼는 점이 많다. 최근에도 선수들과 스파링 해주다가 목을 삐끗했고 여기 저기 몸이 안 좋다. 하지만 선수생활을 아직 포기하진 않았다.

- 팬들은 코리안탑팀의 전찬열 대표와 하동진 감독, 팀매드 양성훈 관장과 더불어 국내 3대 지도자를 논할 때 이재선 감독을 포함시키곤 한다. 그 지도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 일단 종합격투기라는 스포츠를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TV 게임 중계를 보며 각자 전략을 짜듯이 나도 틈 날 때마다 종합격투기 전략을 고민한다. UFC 중계를 보다 보면 같은 주짓수 기술이라 해도 끊임없이 진보하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레슬링도 한 시대를 풍미한 기술이 어느 순간 정체될 때 다른 돌파구가 생기고, 새로운 트렌드의 기술이 발전하는 식이다.

종합격투기라는 스포츠 자체가 여러 투기 종목들이 모여 단점을 빼버리고 실전에 통할 만한 장점들만 흡수시킨 격투 무술이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다.

영화 액션 장면에서나 나올 뿐 실전에선 무용지물로 여겨졌던 가라테식 앞차기가 이제는 선수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앤더슨 실바와 료토 마치다가 그 기술로 각각 비토 벨포트와 랜디 커투어를 K.O 시키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종합격투기란 장르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스포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지 않은가.

▲ 현관 입구 간판부터 깔끔한 커피숍 느낌을 풍기는 싸비MMA 체육관 전경.

- 전략도 훌륭하지만 세컨드를 볼 때 선수에게 상황에 적절한 단어 선택과 어휘력, 발음 전달력이 돋보이던데.

▲ 항상 로드FC와 UFC 등 동영상을 켜놓고 혼자 중얼거리며 시뮬레이션 연습을 한다. 선수들은 정신없이 주먹을 교환하다 보면 세컨드의 지시를 못 듣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세컨드 임무를 맡은 지도자는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정확하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지시 내용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힘내! 밑에서 빠져나와!”처럼 응원하듯이 세컨드를 보면 안된다.

“오른쪽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왼손바닥으로 상대 오른쪽 골반을 밀어내며 빠져나와!”하는 식으로 자세히 지시를 내려야 선수가 당황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안 그러면 가뜩이나 멘붕에 빠져있는 선수가 헷갈려서 경기력이 더 나빠진다.

개인적으로는 굵은 목소리도 세컨드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내가 굵은 함성으로 가득차기 때문에 굵은 저음의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평소보다 더욱 얇은 목소리로 날카롭게 찔러넣듯이 말하는 연습을 한다. 음색이 가늘고 날카로워야 선수에게 더 전달이 잘되는 것 같다.
 
- 지도력에 있어서 다른 격투 팀 지도자들보다 본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 선수들을 양성하고 가르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내가 머리로 알고 있는 지식과 그걸 효율적으로 선수들에게 가르쳐서 익숙해지게끔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몇 년 전의 내 지도방법과 지금의 내 지도방법은 조금 달라졌다. 세월 지나면서 쉬운 설명으로도 선수들이 빨리 몸에 익힐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예전엔 한 달을 투자해야 했던 기술적 노하우들을 이제는 2주 만에 습득시킬 수 있게 되더라. 지도자는 확실히 연륜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선수로서 최고 자리에 서보질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반드시 최고 정점에 서고 싶다.

-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선수가 꼭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지도자 자질에 중요한 건 스타 선수였느냐가 아니라 많은 경험을 축적했느냐인 것 같다. 확실히 중소 규모의 대회라도 꾸준하게 시합을 뛰다 보면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시합을 뛸수록 얻는 게 너무 많다. 장차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들이라면 자신이 꼭 스타선수가 못 되더라도, 승패 전적을 떠나서 경기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중요할 것이다.

▲ 싸비MMA도 국내 종합격투기 체육관의 현대화 붐에 편승해 인테리어에 신경썼다.

- 송효경 선수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자로서 씁쓸한 마음이 컸을텐데.

▲ 조금 해명을 하자면 평소의 송효경 선수는 원래 로드FC 데뷔전 체급보다 더 낮은 체급에서 뛴다. 그래서 로드FC 데뷔전도 기존의 낮은 체급에서 경기를 갖길 바랬다.

그런데 일본 측에서 그렇게 가벼운 체급의 여자선수 중에 송효경과 붙일 만한 선수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고 난처해 하더라. 그래서 “우리도 송효경 선수의 체급을 평소보다 좀 더 높여서 출전시킬테니 너희도 그 체급에 맞는 선수를 내보내라”라고 약속한건데 생각보다 자그마한 선수가 입국했더라. 왜 그렇게 가벼운 선수를 내보낸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 이길우 선수가 로드FC 밴텀급 타이틀을 딴 뒤로 부상이 길었는데.

▲ 저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고질적인 허리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길우도 허리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이제 너의 꿈이었던 로드FC 챔피언 타이틀도 땄으니 선수생활을 그만하자고 설득한 적도 있다.

다행히 내시경 시술을 받은 후로 이길우의 허리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이길우는 방어전 상대로 누가 나오더라도 성공할 것이다. 이윤준, 김수철도 좋지만 송민종이든 문제훈이든 상관없다. 그들의 단점은 이미 내 데이터에 저장되어 있다. 이길우가 제압할 수 있는 상대들이다. 그 둘 뿐만 아니라 나머지 로드FC 밴텀급 선수들의 장단점을 정리한 데이터를 내가 가지고 있다.  
 
- 지난 7월에는 박형근 선수가 '주먹이 운다 시즌3' 결승전 당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임병희 선수를 일방적으로 유린하다시피 이겼는데.

▲ '주먹이 운다' 때의 박형근과 지금의 박형근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그 때는 임병희의 체중이 박형근에 비해 무거웠고 박형근도 잔실수를 많이 했다. 사실 7월에 했던 2차전에서도 박형근이 이런 저런 실수를 좀 하긴 했다. 서브미션으로 끝낼 기회가 있었는데 정확한 그립 캐치를 못해서 놓쳐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 후에 왜 서브미션 피니시를 시키지 못했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임병희 선수에게 졌던 기억을 보상받기 위해 최대한 오래 파운딩을 때리고 싶었다더라.(웃음) 그래서 서브미션을 하려다가 계획을 바꿔서 파운딩을 계속 때린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서브미션을 걸다가 실패한 것 같다.(웃음)

박형근의 성장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로드FC 차기 챔피언급 재능을 지니고 있다. 본인이 중간에 선수의 길을 포기만 안 한다면 선천적인 재능과 성실한 훈련량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

▲ 러닝머신 뒷편에 로드FC 정문홍 대표의 화환이 눈에 띈다. 이재선 감독은 로드FC 창설 초기부터 꾸준히 싸비MMA(과거 영등포 팀파시)의 선수들을 출전시키고 있다.

- 현재 체육관 운영은 어떤가

▲ 관장 3명에 코치 10명이 있다. 인건비, 임대료, 관리비 등 생각보다 많은 지출이 있다. 홍대 입구역 바로 앞이다 보니 임대료가... 힘들다.(웃음)

- 고정 지출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코치 인원을 많이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 난 나를 믿고 팀에 들어온 선수들의 생업을 보장해주고 싶다. 큰 월급은 아닐지라도 나 혼자 수익을 가져가지 않고 최대한 선수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나눠주는 돈의 액수보다 그들이 나에게 돌려주는 것들이 더욱 크다. 우리 코치들은 모두가 사명감으로 뭉쳐 있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팀을 위해 열심히 헌신해 주는 코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 외부 간판을 보면 킥복싱을 전면에 내세운 게 특이하다. 보통 종합격투기 혹은 주짓수, 아니면 여성 관원 유입을 위해 다이어트 복싱을 내세우는 게 유행인데.

▲ 어차피 간판에 MMA를 적어놔도 일반인들은 저게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오히려 MMA를 배우려는 매니아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 체육관에 찾아온다. 간판을 통해 정보를 얻고 오는 게 아니라 웹서핑을 통해 오는 것이다.

대중적으로는 MMA보다 킥복싱과 복싱이 훨씬 인지도가 높다. 그런데 이곳 주변에는 다이어트복싱 체육관이 너무 많다. 결국 고심 끝에 킥복싱을 일단 전면에 내세웠다.

- 체인점 형식이라든지 2관 창업은 생각 안 하나?

▲ 언젠가는 늘려야 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점 수를 늘려서 우리 팀 규모가 커보이도록 하기보다는 일단 홍대 싸비 MMA짐의 내실을 탄탄하게 다질 것이다. 지금은 늘리기 부담된다. 이곳 운영하기도 바쁘다.

▲ 로잉머신, 파워렉, 스미스머신 등 선수들의 크로스핏 훈련과 헬스 트레이닝에 필요한 필수 기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 사람들이 이재선 감독을 부를 때 항상 쾌남, 쾌남 하던데 본인 생각은?

▲ 하하하! 솔직히 말하면 성격이 좋은 척, 시원시원한 척 이미지 메이킹을 할 뿐이다. 사실 나는 내성적인 면도 있다. 요즘 들어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떻게 해야 좀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우리 선수들이 승리하게끔 내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 강해지기 위해, 또 지도자가 되기 위해 MMA에 필요한 여러 격투 종목들을 배우러 다녔을텐데 순서가 어떻게 되나

▲ 처음에는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했다. 유도가 내 격투 베이스였다. MMA의 스파링을 유도에서는 자유 대련이라고 하는데 꽤 괜찮게 하는 편이었다. 스피릿MC로 선수 데뷔를 하던 초기에는 영동 삼산 킥복싱체육관에서 킥복싱도 배웠다. 그런데 주말마다 그곳에서 주짓수 1세대 지도자인 이희성 관장이 미군들을 상대로 주짓수 강의를 하더라. 아마 자기 체육관을 오픈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그 체육관에서 평일에는 킥복싱, 주말에는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희성 관장이 체육관을 차리자 나도 그 쪽으로 옮겨서 운동을 계속 했다. 그 후에는 경기도 구리에 있는 청무 킥복싱 체육관에서 합숙하며 킥복싱을 배우기도 했다.

고 박현성 관장님과는 스피릿MC에서 함께 시합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그분으로부터 복싱을 배우고 나는 주짓수의 기술체계를 알려드렸다. 나에게는 무척 각별한 인연과 정으로 맺어진 스승이시다.

▲ "아디다스가 우리 체육관 물품 스폰서인데 꼭 찍어주세요!" 노골적(?)으로 스폰서 메이커를 노출시키려는 이재선 감독의 행동이 웃음을 자아낸다.

- 익스트림 컴뱃 선수들과 합동훈련을 자주하는 것 같은데.

▲ 타 팀 선수들과 교류를 하면 서로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다. 각 팀마다 전술과 기술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날마다 우리끼리 연습하면 다양하고 변칙적인 상황을 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임재석 관장도 같이 오는데 오늘은 안 왔다.

- 임재석 관장과는 스피릿MC 때 맞붙기 직전까지 가지 않았나. 이재선 감독이 그 당시에 링 위에 올라 마이크를 들고 “제가 반드시 임재석 선수를 꺾겠습니다!”라고 외치던 모습이 생각나는데.

▲ 그 당시에 임재석 선수가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정말 반드시 꼭 꺾고 싶었다.(웃음) 자신감도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단체가 폐업하면서 기회가 날아갔고 그 다음은 기약할 수 없었다. 이젠 지도자로 맞붙는 셈인데 내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선수로서 최고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지도자로서 국내 최고의 명성을 얻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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