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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화·곽영숙, 론볼에서 찾은 새로운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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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화·곽영숙, 론볼에서 찾은 새로운 삶의 의미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16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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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시안게임 D-2] 불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절망 속에서 재능 찾아 국가대표까지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신체의 일부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한다. 장애인 가운데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선천적 장애인도 있지만 사고 등으로 인해 장애를 겪게 되는 후천적 장애인도 있다.

후천적 장애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불편함을 겪게 되고 주위의 곱지 않은 또는 동정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정신적인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중에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재활을 하고 심신과 성격까지 좋아져 새로운 삶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용화(48·전남장애인체육회)와 곽영숙(58세·서울론볼연맹)은 론볼을 통해 절망에서 벗어난 선수들이다. 론볼을 접하면서 장애인이 됐다는 좌절을 털고 이제는 국가대표가 돼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이 되는 것이다.

▲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었던 노용화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준 아내와 여동생 등 가족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찾았고 론볼 국가대표 선수까지 됐다. 그의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목표는 단·복식 2관왕이다. [사진=인천APG조직위원회 제공]

◆ 노용화 "재활치료로 시작한 론볼, 새로운 자아 발견"

노용화는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1995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됐다. 그해 1월 결혼을 한 그는 7개월 뒤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노용화는 "너무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었다. 하지가 마비돼 화장실도 혼자서 갈 수 없었고 하반신은 감각 자체가 없어서 절망적이었다"며 "남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워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용기를 준 사람들은 역시 가족이었다. 7~8개월의 힘든 시간을 보낸 그를 여동생이 휴직하면서까지 간호해줬고 아내 역시 임신 중에 충격이 컸지만 용기를 줬다. 그렇게 그는 삶의 용기를 되찾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가족을 통해 용기를 되찾았다면 론볼은 그에게 이름 석자를 알린 계기가 됐다. 소일거리 삼아서 다른 장애인들과 재활치료 일환으로 론볼을 한 것이 그 시초였다.

▲ 노용화가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단식과 복식 2관왕 목표 달성을 위해 신중하게 공을 굴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인천APG조직위원회 제공]

노용화는 "1997년에 론볼을 처음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바깥에서 하는 운동이라 활동성도 크고 성격에서도 나와 잘 맞았다"며 "하지만 선수층이 얇아서 금방 장애인전국체육대회도 나가고 대표선수까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론볼 선수들 가운데 가장 오래 선수생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론볼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론볼 입문한지 5년만인 2002년 부산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 복식 금메달을 따냈고 2004년 말레이시아 세계선수권에서도 단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간에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아 슬럼프를 겪었지만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계선수권에서 단식 은메달, 복식 금메달을 걸며 재기에 성공했다.

노용화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2006년 콸라룸푸르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던 것도 자존심 상했다"며 "하지만 몇 년 동안 마음을 잡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훈련했다. 다시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날마다 '할 수 있다'를 외친 결과 페이스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의 목표는 남자 단식과 복식 두 종목을 모두 석권하는 것이다. 힘들었을 때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가족들에게 금메달 2개를 모두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 평범한 주부였던 곽영숙은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혼 등으로 5년 동안 절망을 겪다가 시작한 론볼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했다. [사진=인천APG조직위원회 제공]

◆ 곽영숙 "삶의 이유를 되찾아준 론볼, 헤어진 남편에게 금메달 보여주고 싶어"

곽영숙 역시 노용화처럼 1995년에 장애인이 됐다. 아파트 4층 베란다에서 청소를 하다가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5년은 그에게 악몽의 세월이었다. 장애인이 된지 3년만에 남편과 이혼했고 아이들과도 헤어졌다. 병원에서 5년 동안 치료를 받는 기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를 시련과 절망에서 구해준 것이 바로 론볼이었다.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친구를 통해 론볼을 알게 됐다. 그때가 2000년, 그의 나이 45세였다.

곽영숙은 "론볼을 하면서 갈 곳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며 "제각각 아픔과 사연이 있는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론볼을 만나면서 내 삶을 되찾았고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능이 있었던 덕분인지 론볼을 시작한지 1년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장애를 갖기 전까지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능력이 드러난 것이다. 국가대표가 된 그는 2002년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와 호주 세계선수권에서 단식 금메달과 복식 은메달을 따냈다. 2006년 콸라룸프르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도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은메달을 땄다. 국내외에서 따낸 수많은 메달들이 그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

▲ 곽영숙이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신중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사진=인천APG조직위원회 제공]

곽영숙의 목표는 2관왕이다.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기 위해 오전 2시간, 오후 4시간 등 하루 6시간의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다.

곽영숙은 "벌써 환갑을 앞두고 있어 지칠 때는 너무 힘들다.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해 하면서 살고 있다"며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남편에게도 메달을 보여주고 싶다. 용기를 내 새로운 삶에 도전했고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전 남편도 기뻐할 것 같다"고 웃는다.

그러나 곽영숙은 장애인 스포츠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함께 피력했다. 그 역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곽영숙은 "장애인 스포츠도 연금제도 등 여러 복지정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어렵게 운동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제적으로 힘겨워 운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장애인들이 마음껏 스포츠를 즐기고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곽영숙(왼쪽)과 노용화가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훈련에 임하고 있다. [사진=인천APG조직위원회 제공]

■ 론볼이란

론볼은 흔히 장애인 스포츠로 많이 인식되어 있지만 원래 기원은 비장애인 스포츠로 시작됐다. 론볼의 역사는 700년도 넘는다. 1299년 영국의 남행프론 클럽에서 돌로 깎아 만든 공을 사용한 것이 최초의 론볼 경기르 기록으로 남아있다.

론볼이 장애인 스포츠에 적용된 것은 1960년 영국의 한 병원에서 휠체어를 탄 선수들이 경기하면서부터이니 장애인 스포츠로서 론볼의 역사는 54년이다. 국내에는 1987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시범경기를 시애했고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론볼이라는 명칭은 잔디에서 공을 굴린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표적구인 잭을 먼저 굴려놓고 공을 근접시켜 겨루는 방식으로 보치아와 상당히 흡사하다. 공이 완전한 구형이 아니라서 직선으로 굴러가는 법이 없다.

어떤 선수 또는 어느 팀이 많은 수의 공을 표적구에 근접시키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며 매회 점수를 합산해 주어진 시간이나 정해진 횟수를 통해 최다 득점자가 승리하게 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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