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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신라 화랑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에 던지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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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신라 화랑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에 던지는 교훈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12.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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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기자] ‘꽃화(花) 사내랑(郞)’ 1500년 전 신라에 꽃미남 사단이 등장했다. 이들은 약소국 신라의 희망이자 야망이었다. 이들은 ‘삼한일통(三韓一通)’의 위업을 이루는데 앞장섰다.

17일 밤에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외전<화랑>’ 편을 방송한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신라의 화랑도에 대한 정보는 물론 오해와 편견, 또다른 진실에 접근한다. 화랑의 시작은 아름다운 미녀에서 시작했다는 기원설도 추적할 예정이다. 19일부터는 신라 화랑을 소재로 한 KBS 2TV 월화드라마 '화랑'도 안방을 찾아간다.

2016년을 마무리하고 2017년을 맞이하는 이 시기에 찾아오는 '화랑'의 역사적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또 1500여 년의 긴 시대의 터널을 통해 화랑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드라마 '화랑'의 주역들. '박서준, 고아라, 박형식(이상 왼쪽부터).  [사진= 스포츠Q DB]

한 명의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들로 이뤄진 화랑도는 진골 귀족 가문의 자제를 인재로 키위기 위해 신라가 야심차게 조직한 청소년 집단이었다. 문벌과 학식이 있고 외모가 단정한 ‘꽃미남’들로 조직된 무사 집단이었다. 심신의 단련과 사회의 선도를 이념으로 하였다.

◆ ‘팍스로마나’의 정신적인 배경이 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원전 8세기경 작은 도시 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기원전 1세기경 제정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시대부터 5현제(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까지 약 200년간 전성기와 함께 평화의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에는 로마제국 내 각 도시가 번영하고 로마 국민들은 평화를 맘껏 누렸다. 이 시기 ‘로마의 평화’를 ‘팍스로마나’라고 일컫는다.

‘팍스로마나’를 구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 등 사회 지도층이 보여준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꼽을 수 있다. 고위층의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 그리고 기부와 헌납, 희생 정신은 국민 통합 역량을 강화시켰고, 전쟁과 같은 국난을 새로운 전기로 삼았다.

요즘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권력과 재벌이 비선실세의 위세에 좌지우지당하면서 갖가지 부패와 비리를 낳았고, 사회 곳곳의 민주적인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 최순실 국정농단에 휘청이는 대한민국과 도덕적 의무 결핍의 지도자들

역사저널 그날’의 ‘외전<화랑>’ 편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를 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거듭되는 모르쇠와 말끝마다 되풀이되는 거짓말, 편한 것만 기억하는 ‘부분 기억상실증’에 국민들은 신물이 났다. 이제 청와대나 정권의 축을 형성하던 정치인들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등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사건들의 시발점은 어디였을까? 모든 원인의 꼭지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결핍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선거로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부터 고위 관료와 재벌들까지 도통 온전한 곳 없었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사상 초유의 비헌법적 상황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도덕적 바탕이 취약한 인물이나 조직과 기업이 비선실세가 조종하는 망석중놀이에 놀아난 셈이다.

우리 역사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계층이 없었을까? 신라를 지탱한 ‘화랑’은 그같은 도덕적 의무 집단이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중 신라는 가장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신라는 자국보다 강성했던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했다. 그 과정에서 ‘화랑도’ 정신은 큰 기여를 했다.

◆ 황산벌의 전황을 바꾼 관창과 화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사저널 그날’의 ‘외전<화랑>’ 편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서기 660년, 황산벌에서 신라와 백제가 맞붙었다. 신라가 수세에 몰리자 화랑 관창이 나서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관창은 3번의 돌격 끝에 결국 백제군의 칼끝에 목숨을 잃는다. 관창보다 먼저 적진으로 향한 이도 있었다. 또 다른 화랑 반굴이었다.

화랑은 내로라하는 신라 귀족의 자제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화랑은 전쟁에서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군입대 면제를 받으려고 갖가지 꼼수를 쓰는 현대의 비뚫어진 일부 사회 지도층 자제들과는 전혀 달랐다.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후퇴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 김유신에게 의절 당하고 죽임까지 당할 뻔했다. 김유신은 훗날을 도모하려 했다는 아들 김원술의 입장과 비겁한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화랑들에게는 가장 앞서 싸우는 것이 곧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었다. 귀족의 자제이자 지배층으로 솔선수범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자연히 따랐고, 전쟁을 비롯한 국난 시기에 하나가 되어 싸우고 국가를 통합하는 열쇠가 됐다.

물론 화랑에 대한 반론도 있다. 10대 소년들의 순수한 열정과 마음을 이용한 어른들의 전략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다는 ‘배사향공(背私嚮公)’의 화랑 정신은 높은 도덕적 의무를 몸소 실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단면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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