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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로영화 감독의 웃픈 로맨스 '레드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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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로영화 감독의 웃픈 로맨스 '레드카펫'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17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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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10년째 에로영화 감독인 정우(윤계상)는 시나리오를 쓰며 상업영화 감독 데뷔를 꿈꾼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은수(고준희)는 엄마의 죽음 이후 배우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다. 전세사기를 당해 정우의 집에 얹혀살게 된 은수는 영화 오디션에 응시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던 시기, 사소한 오해로 정우에게 등을 돌린 은수는 톱스타로 도약하고, 정우는 영화사 대표의 농간으로 심혈을 기울여 쓴 시나리오를 유명 감독에게 가로채기 당한 뒤 여전히 에로영화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 '레드카펫'의 오정세 조달환 윤계상

뒤늦게 정우가 에로영화 감독임을 알게 된 은수는 소속사에 알리지 않은 채 정우의 독립영화 ‘사관과 간호사’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이 언론에 알려져 곤혹을 겪게 되며 정우와 은수는 다시금 위기를 맞게 된다.

현실은 밑바닥이나 언젠간 당당히 레드카펫에 오르고자 하는 에로영화 감독과 아역배우 출신 여자의 사랑 이야기인 '레드카펫'은 에로영화라는 소재를 상업영화로 경쾌하게 변주해낸 점이 흥미롭다.

관객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장르 영화’임에도 방안에서 은밀하게 감상해야 하는 숙명, 이에 탐닉하면서도 손가락질하는 남자들의 위선, 성공의 논리와 표절이 횡행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업계의 추악한 현실, 열악한 현장을 지키는 에로인생들의 애환은 박범수 연출의 실제 경험에 기초해 생생하게 펼쳐진다.

활어처럼 팔딱이는 주조연 캐릭터 설정부터 순조롭게 출발한 영화는 풍성한 에피소드와 차진 대사에 힘입어 꽤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로 질주한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군만두 신을 패러디한 장면을 비롯해 ‘공공의 젖’ 등 에로영화 제목과 ‘앵두’ ‘딸기’ ‘수박’ 등 배우 예명을 활용한 대사는 폭소를 유발한다.

‘공사’를 한 배우들의 살색 연기가 이뤄지는 촬영 현장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청룡영화제가 열리는 국립극장을 내려다보는 남산의 야경신이나 일제히 차창 밖으로 손을 내미는 대교 신 등 인상적인 장면들 역시 인상적이다.

▲ 극중 남산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국립극장을 바라보는 윤계상과 고준희.

박범수 감독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10년차 베테랑 에로감독 정우를 연기한 윤계상은 천진난만한 얼굴부터 밝음과 어두움에 이르기까지 굴곡 있는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그려내 배우로서 물이 올랐음을 입증한다.

미녀스타 고준희의 예상치 못했던 호연이라든가 발군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 오정세를 비롯해 조달환, 황찬성, 이미도, 성지루, 실제 에로배우들의 활약상도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는 레드카펫 위를 불안하게 서성대는 듯하다. 신선하게 이야기 전개가 이뤄지다 익숙한 설정의 결말로 정리되고, 도발적으로 치고 나오다가 슬그머니 장르의 관습에 안주해 버리는 대목에서 ‘19금’ ‘15세 이상 관람가’를 두고 이뤄졌을 제작진의 고민이 묻어난다.

비주류 인생의 열정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조금은 더 깊은 통찰, 통쾌한 전복을 원했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미덕이 많은 로맨틱 코미디임에도 신선한 착상과 유의미한 메시지가 십분 살아나지 못한 점에선 안타깝다. 10월23일 개봉.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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