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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 박예람 '기적의 50m 금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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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 박예람 '기적의 50m 금물살'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20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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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200m서 150m까지 0.7초 뒤졌다가 3초차 대역전극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여자 자유형 200m S14(지적장애) 경기가 벌어진 19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이 들썩였다. 한 여고생이 펼친 혼신의 스퍼트에 관중들이 흥분했다. 150m까지 0.7초를 뒤졌다가 막판 50m 역영으로 2위를 무려 3초차로 따돌리고 역전했다.

금메달을 따낸 주인공은 박예람(17·청원여고). 7세에 수영을 시작한지 10년만에 아시안게임에서 당당히 따낸 금메달이었다.

이날 박예람의 역영은 한국 관중은 물론이고 경기 취재를 위해 모인 외국 취재진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았다. 한 기자는 '어메이징'을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심지어 북한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기자석 근처 관중석에 앉은 북한 임원도 박예람의 역영에 눈이 휘둥그래지며 환호성을 올렸다. 박예람의 스퍼트에 들고 있던 인공기를 흔든 북한 임원들은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자 마치 북한 선수가 우승한 것처럼 즐거워하고 박수를 보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박예람이 19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S14 200m 결선에서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 ADHD 치료 도움 위해 시작한 수영

박예람은 어렸을 때부터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어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흔히 우리가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주의력 결핍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에 부모가 직접 박예람에게 수영을 접하도록 했다. 수영이 ADHD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여러 보고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29·미국) 역시 7세 때 ADHD라는 진단을 받은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ADHD 증상이 있는 사람은 운동이나 악기 연주를 통해 재미를 느끼고 집중하면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집중력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예람도 그런 경우였다. 박예람의 어머니인 안효석(41)씨는 "ADHD 치료 목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교성이 떨어지다보니 수영을 함으로써 친구들도 사귀는 효과를 기대해 수영을 시작했다"며 "반년 정도 수영을 가르친 후에는 물에서 놀게 했다. 유독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예람이 본격적으로 선수생활로 들어서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물을 좋아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일반 학교로 보내면서 수영 선수를 시켜 학교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안효석 씨는 "ADHD 증상 때문에 초등학교 때 유난히 집단 따돌림을 많이 받았다. 이 때문에 (박)예람이가 많이 소극적이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선수로 활동하게 되면 일반 학교의 수영부로 들어갈 수도 있고 학교 생활도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박예람이 19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S14 200m 결선에서 출발 직전 기도를 하고 있다.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하면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12년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자유형에서 50m, 100m, 200m 금메달을 따냈고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자유형 50m와 100m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에게 정작 '장애'는 그의 증상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었다. 장애가 있다고 하면 수영장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하는 훈련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기록이 들쭉날쭉했다. 200m를 기준으로 했을 때 2분36초대가 나오다가도 대표팀에 소집돼 이천종합훈련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1, 2주 훈련만으로 2분32초대로 기록이 앞당겨졌다. 그러나 대표 훈련이 끝나면 다시 기록이 나빠지는 현상이 지속됐다. 박예람은 물론 그의 부모들도 속이 탔다.

◆ 첫 국제대회서 처음으로 2분28초대 주파

하지만 자신의 첫 국제대회인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을 통해 박예람은 새롭게 거듭났다. 이천종합훈련원에서 집중 훈련을 받으면서 2분32초대를 꾸준히 찍어 메달 후보로 지목됐다. 그러나 훈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금메달까지는 바라보지 못했다. 선수단 역시 박예람에게 금메달까지 기대하진 않았다.

200m 결선 출발대에 올라선 박예람은 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첫 50m는 5위로 돌았다. 경기장에서 딸의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안효석 씨는 "첫 50m까지만 하더라도 딸이 너무 긴장을 해 몸이 굳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후 좀 따라가긴 했지만 선두를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회상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박예람이 19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S14 200m 결선에서 힘차게 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100m를 지나 갑자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점점 선두와 격차가 줄어들더니 150m가 지나서는 대등하게 됐고 이후 독주를 계속했다. 150m까지 계속 선두를 달렸던 투조린(대만)은 이미 뒤에 있었다.

100m까지만 하더라도 투조린에 1초44나 뒤졌던 박예람은 150m 지점에서 차이를 0.66초로 줄이더니 마지막에는 3초14 차로 역전시켰다. 박예람은 마지막 50m 구간을 무려 36초77에 역영하는 혼신의 스퍼트였다.

박예람은 "성격이 예민해서 경기 시작할 때 엄청나게 긴장했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부지런히 쫓아갔다"며 "마지막 50m 스퍼트를 할 때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짜릿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록이 2분28초81이라는 사실에도 놀라워했다. 박예람은 "평소 2분32초대를 꾸준히 찍긴 했지만 단 한번도 2분30초대 안쪽으로 들어와본 적이 없다"며 "아직 얼떨떨하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예람은 공부와 훈련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박예람은 "훈련을 하다보니까 아무래도 학교 가기가 힘드고 그래서 공부가 어렵다"며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 뭘 해야 할지는 계획을 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로봇다리 수영선수'로 유명한 김세진(17)과 친하게 지낸다는 박예람은 "함께 훈련도 하고 경기를 할 때면 응원도 해준다. 오늘도 세진이가 응원을 와줬다"며 "너무 착한 친구다. 세진이가 경기할 때는 내가 응원을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대회 첫날 박태환수영장을 들썩이게 했던 박예람은 평영 100m 종목에도 출전한다. 박예람은 "주종목이 자유형이라서 평영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예람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와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박예람이 19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S14 200m 결선에서 자신이 1위임을 확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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