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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버지를 위한 헌사 '나의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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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버지를 위한 헌사 '나의 독재자'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2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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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7.4남북공동성명 여파로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1972년. 단역을 전전하던 연극배우 성근(설경구)은 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 오디션에 합격한다. 생애 첫 주연을 맡아 김일성 캐릭터에 필사적으로 몰입하지만 정상회담은 무산된다. 존재조차 비밀인 성근은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역할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22년이 흘러 1994년. 장성한 성근의 아들 태식(박해일)은 대부업자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요양소에 있던 성근을 재개발에 들어간 옛집으로 모신다. 헤어스타일부터 옷차림, ‘혁명과업’ ‘자급자족’을 부르짖는 말투까지 여전히 독재자 수령마냥 행동하는 아버지와 조용할 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전 대역과 함께 리허설을 했다’는 신문기사 한 줄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나의 독재자’는 격랑의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부자(父子)의 뜨거운 서사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자 했던 욕망과 자신의 인생을 지배해버린 '독재자'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정치적 격변기이자 남북 화해·대립이 교차하던 72년과 94년을 배경으로, 김일성 대역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빌어 팽팽하게 맞서고 침투한다. 먼저 한걸음 다가가 이해하고 화해하는 데 서툴렀던 역사의 비극은 붕괴된 가정 내 부자 관계에도 그대로 관통된다.

▲ 성근 역의 설경구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성 소수자 아들과 폭력적인 아버지의 관계를 설핏 보여준 바 있는 이해준 감독은 ‘나의 독재자’에선 이를 전면화한다. 점차 수령 동지의 이면에 감춰진 성근의 민낯을 보기 시작하는 태식, 고집불통 독재자가 아닌 진심을 숨긴 평범한 아버지로 돌아서는 성근의 변화는 긴 여운을 남긴다. 광인이 돼 지난날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리어왕’의 독백이 영화 도입부와 마지막을 장식함으로써 여운을 더욱 짙게 만든다.

설경구와 박해일은 근래 접하기 힘들 정도의 역연을 펼친다. 극중 성근이 김일성 캐릭터에 몰입한 메소드 연기의 화신이 되듯 연극배우 출신 설경구는 삶이 연극이 돼버린 성근으로 동화해 스크린을 장악한다.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양아치 태식을 소화한 박해일은 선악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십분 살려 격렬한 날숨의 설경구에 유연한 들숨으로 호흡을 맞춘다.

유일한 관객인 아들 앞에서 대통령을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 정상회담 리허설을 하는 노년의 성근, 아버지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자신의 어린 시절 딱지를 뒤늦게 발견한 뒤 오열하는 태식의 모습 그리고 두 배우의 연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독립영화계 샛별 류혜영(여정 역)의 유쾌하고 깔끔한 연기 역시 주목할 만하다.

▲ '나의 독재자' 류혜영(왼쪽)과 박해일

이해준 감독은 ‘끝까지 간다’ ‘남극일기’ ‘아라한 장풍대작전’ ‘품행제로’의 각색,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표류기’의 감독을 맡아 신선한 발상과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나의 독재자'가 전하는 감동의 무게는 만만치 않으나 긴 호흡의 무거운 드라마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해진다. 오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2시간7분.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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