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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④ 쇼핑몰에서 인생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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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④ 쇼핑몰에서 인생을 배우다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0.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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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 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유료 광고가 아닌 잡지나 나의 미니 홈페이지를 보고 자연스럽게 모인 회원들은 나를 중심으로 서로 친목을 다지기도 하며 단순 의류쇼핑몰이 아닌 커뮤니티 같은 쇼핑몰이 되어 갔다.

“이 쇼핑몰은 모델인 너의 팬 카페이자 옷 가게야.” 이렇게 말했던, 처음에 동업한 친구의 말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회원들끼리도 서로 친해지며 후기를 공유하고, 더욱 더 판매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 당시 "러브베베"는 제품을 사지 않아도 쇼핑몰 홈페이지에 로그인해서 수다를 떨다가 갈 수 있는, 그렇게 20대 여자들의 편안한 놀이터가 되었다.

▲ 그린 컬러 블라우스 착용 사진. 예뻤던 20대 '리즈 시절' 모습이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그러던 중 하루는 'BEBE STYLE'의 코디 상품인 티셔츠와 스커트가 하루에 15장씩이나 주문이 들어왔다. 동대문에 전화를 해서 주문을 넣었는데, 그렇게 한 번에 많이 필요하냐며 좀 당혹스러워 했다.며칠 걸려서 물량이 입고 되었고,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무시하던 동대문 상인들에게도 입소문이 금세 퍼졌다. 대단하다는 듯,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어떤 제품이든 많이 나갈 거라고 생각한 아이템이 반응이 없을 경우가 있고, 안 나갈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제품이 대박을 칠 때도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처음부터 재고를 많이 쌓아 놓을 수가 없었다.

한번은 튀는 바비인형 콘셉트의 실버 컬러 클러치백을 세 개 정도 구입해서 업로드했는데, 수십 개의 주문이 들어왔다. 계속 주문이 가능하다 해서 사입을 해온 제품인데, 재주문을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대량 생산을 해야한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제품이 없어서 발송이 불가하다"는 전화를 고객에게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 제품을 구입한 고객 중, 제일 가까이 사는 고객에게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고객이 구입한 제품을 다시 빌려오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나는 디자인에도 욕심이 있었다. 할리우드 여배우 '니콜리치'가 신고 나온 실버 컬러 리본 플랫슈즈의 모티브를 따서 기본 실버 플랫슈즈를 사입한 후 비즈 리본을 손바느질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가게만의 아이템을 팔기도 했다. 희소성 있는 아이템을 판매하니 반응도 좋았고 가격 비교가 없어서 마진률도 좋았다.

디자인에만 치중한 나머지 예상치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인디언 걸 콘셉트로 레인부츠 끝단에 깃털을 본드로 붙여서 착용한 후 사진을 찍었는데 고객에게서 구입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 수작업으로 깃털을 붙여 판매하게 되었다. 그런데 구입한 고객들은 비오는 날 깃털이 다 떨어졌다며 반품 요청이 이어졌다.

그때 또 깨닫게 되었다. ‘보기에 예쁜 것과 판매하는 제품은 차이가 있구나!’

옷을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된다는 고객의 문의가 있을 때면, 나는 "단번에 꽂히지 않는다면 사지 마세요. 그 제품은 옷장 속에서 나올 일이 없을 거예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렇다. 당시 나는 제품 판매에만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내 스타일을 공유하려 했고, 진심으로 고객들과 패션에 대해 소통하고자 했다.

혼자 운영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애로사항도 적지 않았다. 안정되지 않은 매출로 직원을 구하지도 못하고 혼자 낑낑 거리곤 했었다.

그 당시 곁에서 도와주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 친구가 일이 있어 못 도와주는 날에는 혼자 수 백장의 의류, 액세서리, 슈즈를 포장하고, 백 개 가까이 되는 박스를 혼자 포장하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나 혼자 끝이 없는 산더미 같은 옷을 보며 울면서 일을 하곤 했었다.

▲ KBS '세상의 아침'의 '20대 사장 성공 스토리'에 출연했을 때의 모습.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그때까지만 해도 서초동의 복층으로 된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윗층을 사무실로 쓰며 쇼핑몰을 운영했다. 여름이면 아랫층에 있는 에어컨의 찬바람은 아래로 가고, 더운 공기가 복층으로 올라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곤 했다.

서초동에서 동대문까지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단축 시키고자, 2005년, 동대문 L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 아파트에서 동대문을 왔다갔다 하게 되었는데, 교통이 복잡해 4륜 오토바이를 구입해 타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통경찰에게 걸린 적도 있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적받았지만, 4륜 오토바이가 도로교통법에 걸리지 않고 농기구에 포함 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냥 보내준 적도 있다.

그 후 헬멧을 구입해 언제나 쓰고 다녔고, 그 4륜 오토바이는 교통체증이 심각한 동대문에서 시간을 절약해 주는 요긴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도매시장에 가고, 옷을 스타일링 하고 사진 촬영을 한 뒤 포토샵을 해 제품을 업로드 하고, 고객 문의를 받으며 게시판 및 전화 상담을 하고 포장 후 택배 발송까지 친구와  친동생의 도움을 받아가며 운영했다.

쇼핑몰 운영을 하면서도 틈틈이 다른 활동도 했다. 광고촬영도 하고 모 케이블 방송에서 제안한 DMB 방송도 맡게 되었다. ‘베베의 패션 다이어리’ 라는, 내 이름을 걸고 패션 방송 진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 스타일리스트가 있었지만, 나와 콘셉트가 맞지 않아 내 쇼핑몰 제품을 입겠다고 제안했다. 그 대신 자막에 ‘협찬:러브베베’ 라고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매주 촬영하며 패션방송을 진행했다. 그 케이블 방송 PD님과 대표님께서는 이 방송으로 책을 내자고도 제안하셨다.

매주 촬영이 끝나면 성우 분과 함께 틈틈이 나의 목소리를 넣는 내레이션 작업도 함께하며 프로그램을 예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10회 가까이 방송되고 출연료가 입금이 되었는데 처음 제작사에서 말했던 출연료보다 조금 적게 들어 왔다.

당시는 쇼핑몰 매출이 좋았던 때였다. 돈을 벌자고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촬영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적은 액수를 준다고 했어도 그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처음 출연료의 액수와 차이가 나서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나이가 어리고 매니저 없이 진행한 구두계약이라서 나를 너무 쉽게 보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촬영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끝내기에 아쉬운 일이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심어린 따뜻한 대화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 정당치 않은 방법을 쓸 때면 몹시 화가 나곤 한다.

▲ 2010 LA 패션위크 무대에 섰을 때의 모습.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그 후 쇼핑몰 운영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방송 매체에서 연락이 오곤 했다.

함께 촬영했던 DMB 방송의 작가 언니가 KBS로 이직하면서 취재 요청이 왔다. 2005년 겨울, KBS '세상의 아침'의 '20대 사장 성공 스토리'에 나오면서 조금 더 매출은 좋아졌다. 집과 사무실을 분리해, 살고 있는 L아파트 22층에 넓은 평수의 사무실로 입주하게 되었다.

매출이 늘어날수록 모델일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쇼핑몰이 유명해 질수록 잡지나 광고 모델로서 내 이미지는 하락하는 듯했다.

나는 긴머리의 모델에서 단발머리 스타일로 바뀌었고, 본업인 모델의 이미지보다는 쇼핑몰 사진에 더 잘 어울리는 것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아마 광고주였어도, 개인 쇼핑몰에 나오는 모델을 고용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 달 빼곡히 잡혀 있던 모델일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촬영장보다 동대문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삶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쇼핑몰의 매출로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해 모든 일을 분담하게 되었다.

나는 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류 사입과 스타일링, 모델을 맡게 되었고 고객응대, 사진촬영, 포토샵, 포장, 제품 재주문 입고, 택배 발송 등의 업무를 분담했다.

나는 지금도 직원을 채용할 때 학벌이나 전공 상관없이 뽑는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렇듯 학벌과 잘하는 분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학벌이나 전공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이 사회가 정해 놓은 사람 평가 기준에 매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델일이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쇼핑몰 운영에 재미를 느꼈고, 하루에 2~3 시간씩만 자고 쇼핑몰을 운영했다. 말 그대로 젊은 20대 사장이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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