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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커쇼는 컵스의 타선이 아닌 시차에 무너졌다? 야구에 등장한 시차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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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커쇼는 컵스의 타선이 아닌 시차에 무너졌다? 야구에 등장한 시차의 과학
  • 이희찬 기자
  • 승인 2017.02.09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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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비행과 시차 증후군 겪는 투수, 장타 허용률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

[스포츠Q(큐) 이희찬 기자] 해외여행이 잦은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불청객 시차 증후군. 그런데 이 시차 증후군이 전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저주를 깨뜨린 숨은 원인이라면?

2016년 10월 23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에서 펼쳐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NL)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시리즈 합계 2승 3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LA 다저스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선발 마운드에 올리며 반격을 꾀했다.  

시카고 컵스는 71년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단 1승만 남기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상대 부동의 에이스 커쇼가 주는 위압감과 염소의 저주에 대한 부담감이 컵스의 라커룸을 휘감았다.

하지만 이날 커쇼는 5이닝 5실점하며 무너졌다. 안타 7개, 홈런 2개를 허용했다. 컵스의 저주 탈출의 희생양이 되며 2016시즌 마지막 피칭을 마쳤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컵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악명 높았던 염소의 저주를 108년 만에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LA 다저스의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는 이날 왜 컵스 타선에 맥을 추지 못한 걸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시차 증후군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라비 알라다 교수가 4만여 차례의 MLB 경기 통계를 바탕으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커쇼는 시차 때문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며 본인의 리듬을 찾지 못했을 확률이 적지 않다.  

알라다 교수는 지난달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논문에서 "신체적으로 격렬한 활동이 요구되는 야구선수들이 시차 증후군으로 고생하기가 더 쉽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을 때 시차로 인한 경기력 저하가 더 큰 폭으로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우리 몸이 기억하는 '생체 시계'가 해돋이와 해넘이 시간의 변화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해가 길어지는 서쪽 여행보다 해가 짧아지는 동쪽 여행이 시차 증후군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분석이다.        

시차 증후군으로 인해 나타나는 경기력 저하는 야구 경기의 여러 분야로 나타난다. 공격에서는 도루가 감소하고 병살타가 증가하는 한편 수비에선 투수의 장타와 홈런 허용이 늘어난다. 특히 연구 결과는 타자보다 투수들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에 심리적인 면도 작용한다. 원정길에 나선 선수들은 아무래도 빡빡한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홈에 돌아오면 그런 일정에 덜 집중하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며 생체리듬의 조절도 용이해진다.  

커쇼는 당시 10월 21일 LA에서 홈경기를 치른 후 시카고로 이동한 뒤 23일에 곧바로 선발 등판했다. LA와 시카고의 시차는 2시간. 생체 리듬을 회복할 틈 없이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강판이었다. 

커쇼는 시차 증후군의 피해를 봤지만, 반대로 시카고 컵스의 타선은 '보이지 않는' 시차의 덕을 보며 다저스의 에이스를 두들기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MLB 팀들의 경기력을 좌우하는 복병으로 등장한 '시차',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알라다 교수는 선발 투수들을 전체 선수단보다 일찍 이동시켜 컨디션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제 곧 메이저리그도 2017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를 개막한다. 메이저리거들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정규시즌에 임하기 위해 몸만들기에 들어간다. 커쇼를 비롯한 메이저리거들은 올해도 '보이지 않는 시차'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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