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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짜리 딸의 만점짜리 라이딩, ‘철의 여인’ 이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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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짜리 딸의 만점짜리 라이딩, ‘철의 여인’ 이도연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10.22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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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팀 하나 없는 현실 안타까움 토로, 류민호 감독 향한 고마움 전해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적수가 없다. ‘철의 라이더’ 이도연(42)의 질주는 멈출 줄을 모른다.

이도연은 22일 인천 송도 사이클 도로코스에서 열린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핸드사이클 여자 개인전 16㎞ H 1-5 타임 트라이얼에서 27분44초1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위 이승미와는 5분4초, 3위 김정미보다는 8분11초나 먼저 들어온 압도적인 라이딩이었다.

그는 지난 5월 핸드사이클 입문 1년만에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인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도로독주 금메달과 개인도로 동메달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7월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도로독주, 개인도로 2관왕을 차지했다.

▲ 이도연이 22일 송도 사이클 도로코스에서 열린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핸드사이클 여자 개인전 16㎞ H 1-5 타임 트라이얼에서 1위로 들어온 후 환호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펼쳐진 국제사이클연맹(UCI) 장애인 세계사이클선수권대회 도로독주에서 금메달, 개인도로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이도연은 세계 대회에서의 연이은 입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보였다.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이도연에게 좁은 무대였다.

◆ 칩거 15년, 핸드사이클은 내 운명 

“핸드사이클을 만나면서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 자신을 찾았다고 할까요.”

인생에 꽃을 피울 19세 때 이도연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참담한 일을 겪고 말았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그러하듯 이도연 또한 세상과 등졌다.

“다치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운동? 그런게 있다는 것을 몰랐죠. 장애인이면 집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애기 아빠 만나서도 살림만 하고 지냈습니다.”

15년간의 움츠림 끝에 어머니의 권유로 탁구 라켓을 잡았다. 6년간 탁구 선수로 활동하다보니 태극마크를 달아보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래서 육상 필드 종목인 창과 원반, 투포환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러나 녹록지 않았다. 국내 무대는 정복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 장애인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도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기록에는 만족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국가대표를 향한 꿈을 위해 다른 종목을 찾다가 핸드사이클을 찾았다. 투포환을 가장 멀리 던지던 그에게 핸드사이클은 안성맞춤이었다.

이도연은 “하루 6시간 이상 훈련해도 좋다. 내 적성에 맞는다. 운동으로는 타고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이번 대회 직전 훈련에서 나왔던 기록보다 0.11초 뒤진 기록으로 레이스를 마쳤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비가 와서 이틀을 쉬었고 선수촌에서 너무 편히 있었나보다”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도연은 핸드사이클과 함께라면 그저 행복하다. 그는 “달릴 때 속도감이 정말 좋다. 컨디션이 좋으면 속도가 많이 나는데 그 상쾌함과 스피드가 좋다”며 “가슴이 답답할 때도 그것이 풀어지는 것 같아 좋다”고 웃었다.

그는 23일 개인도로 부문에 나서 2관왕에 도전한다. 이도연의 금메달은 확실시 된다.

◆ 모두에게 미안해, ‘빵점 딸-빵점 엄마’ 

“아빠, 엄마, 우리 딸들. 가족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습니다.”

세계선수권 3연패에 이어 아시아 정상에 오르기까지.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는 이도연은 이 모든 것의 가족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아빠가 계셔서 더욱 힘을 냈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잘 했다고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시는데 직접 보시는 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서 정말 기쁘다”며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앞으로도 건강 유지하시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셔야만 한다”고 말했다.

▲ 아버지 이민형(오른쪽) 씨는 이도연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는 이도연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1년간 밖에 나가지 않으며 딸을 돌봤다.

이를 들은 아버지 이민형(68) 씨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한마디 한다.

“욕봤다. 앞으로도 열심히 허고. 나 너 운동하는 거 안 말릴랑게 내 신경쓰지 말고 운동해라이.”

이도연은 “장애가 닥치고 부모님이 뒤에서 많이 우신 것을 알고 있다. 이제는 딸 걱정 안 하셔도 된다”며 “이제야 안심시켜드리는 과정인 것 같다. 자랑스런 딸 되도록 노력하고 있고 꼭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사랑스런 딸이 사고를 당하자 1년간 밖에 나가지 않으며 병 간호를 했다. 이도연은 극도로 고통스러웠던 나날을 아버지 때문에 버텼다. 그는 “내일은 가족이 총출동한다. 어머니까지 오시니 더 자신 있게 달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야 점차 점수를 따기 시작한 ‘빵점 딸’이지만 엄마로서는 여전히 빵점이다. 부모님 이야기가 끝나자 곧바로 세 딸 이야기로 화제를 넘겼다.

이도연은 “딸들한테 미안하다. 큰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게다가 고2, 고3 동생들까지 돌본다”며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셋이서 엄마가 운동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내가 표현력이 약한데 다들 정말 사랑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 이도연은 "류민호 감독이 그만두면 핸드사이클 안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 이도연에게는 ‘공동 운명체’ 류민호 감독이 있다 

“류 감독님 그만두시면 핸드사이클 안 할 겁니다.”

류민호(47) 감독은 이도연에게는 '귀인'이다. 탁구와 육상으로는 한국 대표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이도연은 지난해 5월 다짜고짜 류 감독을 찾아 핸드사이클에 입문했다.

“내가 핸들을 잡은 이상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분이다. 감독님께 선언했다. 그만두시면 나도 핸드사이클 놓겠다고.”

이도연은 “처음이자 마지막 지도자시다. 운동을 하면서 전문적인 지도에 너무 목말라 있었다”며 “내게 꼭 맞는 분이다. 다른 지도자를 굳이 원하지 않는다. 감독님 지시라면 모두 소화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핸드사이클 1년만에 세계를 평정한 비결에 대해 “감독님의 지도 덕이다. 나는 핸드사이클을 잘 모른다”며 “감독님이 어떤 방법으로 얼만큼 스피드를 내는지, 컨디션은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가르쳐주신다. 그렇게 안하는 순간 처진다”고 강한 믿음을 전했다.

류 감독은 “이도연은 체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타고났다. 지도하기에 편한 선수”라며 “금메달은 땄지만 기록이 불만족스럽다. 이번 대회는 2016 리우 패럴림픽에 대비하는 전지훈련 개념이다. 이도연과 함께 패럴림픽 2관왕을 노려보겠다”는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 류민호 감독은 "이도연은 체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타고난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도연과 함께 2년 후 리우 패럴림픽 2관왕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 단 하나의 소원, 실업팀 창단 

“어렵게 생활해요. 딸들이 학원도 안 다니고 첫째가 장학금 타니까 살아가요. 내가 우리 집안 생활비 다 깎아먹고 적자 내고 있어요. (웃음)”

세계선수권 우승자, 장애인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지만 이도연은 소속팀이 없다. 한국에는 핸드사이클 실업팀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도연은 “실업팀이 한 팀만이라도 생겨준다면 집안 살림도, 장비 구입도 걱정 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실업팀이 꼭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이도연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는 “기회가 있는 한 나는 어떤 훈련도 감당해낼 자신이 있다”면서 “2년 뒤의 일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리우 패럴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감독님을 웃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UCI 세계 랭킹 3위 ‘백수’ 라이더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 창, 원반, 투포환을 했던 이도연에게 핸드사이클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입문 1년만에 세계 대회를 싹쓸이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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