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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육상 유병훈이 못넘은 만리장성, 그보다 더 높은 현실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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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육상 유병훈이 못넘은 만리장성, 그보다 더 높은 현실의 벽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24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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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시안게임] 중국, 장애인 스포츠에도 정책 지원·적극 투자…합숙훈련 기간도 한국보다 길어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역시 중국은 세계 1위네요. 이번에도 중국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국 장애인 육상의 에이스이자 주장인 유병훈(42·경북장애인체육회)가 다시 한번 중국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유병훈은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육상 800m T53 종목과 1600m 계주 T53/54 종목에 나란히 출전했지만 다시 한번 중국에 금메달을 내줬다. 800m에서는 은메달, 1600m 계주에서는 태국과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2002년까지 휠체어농구를 했던 유병훈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육상에 입문했다. 한국 남자 육상은 유병훈과 함께 정동호(39·경북장애인체육회), 김규대(30)의 '트로이카 체제'로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세 선수는 트랙 종목은 물론이고 마라톤도 함께 뛰며 한국 육상의 삼총사가 됐다.

서울시북부장애인복지관 마라톤 팀에서 함께 뛰기도 했던 세 선수가 흩어진 것은 올해 초. 대기업 금융사의 지원이 끊기면서 팀도 해체됐다. 이후 김규대는 자신이 공부하고 싶었던 천문학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유병훈과 정동호는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유병훈이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1600m 계주 T53/54 결승 시작 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좌절의 순간에서 유병훈과 정동호는 경북장애인체육회 육상팀이 생기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만을 보고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중국의 벽은 언제나 높은 것이었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도 이들은 중국의 벽에 막혀 금메달의 꿈을 이뤄내지 못했다.

중국은 당시 패럴림픽 육상에 걸린 170개의 금메달 가운데 33개를 휩쓸며 1위에 올랐다. 2위 러시아(금19), 영국(금11), 미국, 튀니지(이상 금9)보다도 훨씬 많았다.

유병훈이 속한 T53 종목의 최강자 역시 중국의 리후자오다. 리후자오는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은 물론 런던 패럴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낸 세계 1인자다.

이에 대해 유병훈은 "그래도 내심 800m 종목은 기대했다. 기록도 그렇고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병훈이 23일 오전 치른 800m 종목에서 거둔 기록은 1분45초34. 리후자오는 유병훈보다 0.18초 빨리 들어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과 몇 m차로 다 잡았던 금메달을 놓쳤다. 동료 정동호도 1분47초12로 좋은 기록을 냈지만 6위에 머물렀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유병훈(오른쪽)이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1600m 계주 T53/54 결승전에서 홍석만의 바통 터치를 받고 출발하고 있다.

유병훈은 정동호, 홍석만(39), 이기학(43)과 함께 1600m 계주에 출전했다. 홍석만과 유병훈, 정동호, 이기학의 순서로 돌았다. 첫 400m 구간에서는 홍석만이 선두로 치고 나가는 듯 했지만 유병훈과 바통 터치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추월을 허용했다. 이후 줄곧 2위 자리를 지켰지만 막판 태국의 스퍼트에 다시 한 순위가 내려갔고 기대했던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유병훈은 경기를 모두 마친 뒤 "장애인 스포츠 특히 육상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몇몇 장애인 스포츠 종목은 TV를 통해 중계되지만 육상은 전혀 그런 것이 없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우리의 경기 모습을 TV를 통해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유병훈은 중국 장애인 스포츠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유병훈은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지원 정책이 확실하다"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한편 합숙 훈련도 우리보다 더 길다. 중국 선수로부터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3개월을 준비했다고 한다. 우리는 60일을 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합숙훈련의 기간은 한달 정도밖에 차가 나지 않지만 이런 차이들이 쌓이고 쌓여 중국과 한국의 장애인 스포츠 수준차가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유병훈의 시각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유병훈(왼쪽)이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1600m 계주 T53/54 결승전에서 정동호와 바통 터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유병훈은 2년 뒤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이다.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김규대가 함께 하지 못했지만 패럴림픽에서는 다시 삼총사가 뭉칠 날만을 기다린다.

유병훈은 "아마 규대도 인터넷 등을 통해 우리 기록을 찾아봤을 것이다. 규대도 이번 대회에 뛰고 싶어했는데 안타깝다"며 "그래도 2년 뒤가 기대된다. 그때가 되면 규대도 합류한다. 리우에서 중국을 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장애인 스포츠도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이번 장애인아시안게임이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업팀이 없어 투잡을 해야 하는 선수, 그리고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 부족, 정책적인 지원 부재 등은 스포츠를 향유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싶은 장애인 선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입상하면 주어지는 연금도 장애인 대회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유병훈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 선수들에게 중국이 높은 벽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현실의 벽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중국을 뛰어넘는 것이 당장 힘들지 몰라도 현실의 벽을 허무는 것은 충분히 우리들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가능한 일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기학(왼쪽)과 정동호가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1600m 계주 T53/54 결승전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퇴장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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