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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포트] 국내 가요계 '제2의 서태지'는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박영웅의 가요포커스 서태지 25주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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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포트] 국내 가요계 '제2의 서태지'는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박영웅의 가요포커스 서태지 25주년 특집)
  • 박영웅 기자
  • 승인 2017.02.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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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박영웅 기자] '문화 대통령' 서태지(45)가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처럼 90년대 가요계 흐름을 바꿔 놓은 것은 물론 국내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서태지였다. 현재 최고 아이돌 그룹의 인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다소 '실례'일 만큼 서태지는 뮤지션 이상의 의미를 지닌 슈퍼스타였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발동한다. 90년대 서태지와 같은 가요계를 뛰어 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뮤지션이 왜 아직 등장하고 있지 못한 것일까?

◆상상 초월의 영향력, 모든 것이 서태지로 통했다

우선 서태지의 활동 당시 남긴 족적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서태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 양현석 이주노)이라는 댄스그룹을 만들어 정식 데뷔했다. 첫 무대는 순탄치 못했다. 발라드와 트로트 중심의 가요계에서 '아직 랩은 이르다'는 기존 작곡가들의 혹평을 받으며 반짝 사라질 '건방진 녀석'들 정도로 평가절하 됐다.

서태지 [사진=스포츠Q DB]

당시 음악인들이 혹평을 날릴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 댄스그룹을 기반으로 한 아이돌 열풍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요시장은 견고할 정도로 발라드와 트로트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누구도 이런 구도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은 미국 스타일에 충실한 랩과 댄스 음악을 통해 가요사의 흐름과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이돌 댄스그룹 중심 가요시장의 초석을 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대권을 잡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을 위해 충전한다는 새로운 패턴의 앨범 발매 방식을 보여줬고 작곡가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개념을 대중가요 시장에 확립 시키는 등 이전 가수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팬들은 열광했고 가요계에서는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한 예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음반 발매를 하는 시점에는 대한민국 유명가수들의 음반발매가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향력은 더 확대되면서 가요계의 경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음악을 통해 대북문제, 청소년 문제, 가요심의 문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 공론화에 불을 지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듣고 가출 청소년이 집으로 돌아오거나 '시대 유감'이라는 곡을 계기로 가요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것 등은 좋은 예다.

[사진=스포츠Q DB]

◆ 제2의 서태지가 나오지 않는 첫 번째 이유, '아이돌 시스템'

하지만 그가 1996년 은퇴를 선언하고 번복한 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2의 서태지는 가요계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 뒤 H.O.T GOD 신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EXO 등 걸출한 아이돌 그룹과 싸이 등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가수들이 등장했지만 ‘서태지의 의미’를 넘지는 못했다. 10대를 열광시키는 스타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전성기 시절 서태지 정도의 영향력을 갖춘 뮤지션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기획사 중심의 시장 재편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무렵은 현재와 같이 아이돌을 다량 생산하는 초대형기획사들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서태지는 독립레이블 형태로 음악을 만들며 음원 발매와 기획 등을 직접 관리했고 남들과는 다른 음악과 패션, 마케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팬들에게 서태지만의 음악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이었던 셈이다.

현재 아이돌들은 대형소속사 시스템 아래 만들어진 상품과 같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음악 세계관이나 철학,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이나 마케팅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오직 소속사의 컬러에 맞는 아이돌 그룹이 탄생할 뿐이다. 쉽게 말해 대형 소속사의 타이틀이 뮤지션의 음악이나 개성을 틀 안에 가두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지적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요즘 아이돌은 소속사의 기획대로 모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카리스마 있는 뮤지션이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서태지는 자신 음악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90년대와 현재의 큰 차이점 같다"면서 "서태지 자신은 기획사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는 트레이닝을 받아야 아이돌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서태지처럼 자유롭게 음악을 혁신하고 파괴하는 뮤지션이 나오는 게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사진=스포츠Q DB]

◆ 두 번째 이유 ‘음악 혁명이 어려운 시대’ 그리고 ‘퍼포먼스 중심의 시대’

제2의 서태지가 나오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화 된 시대에 장르의 혁신을 가져오는, 새로운 음악의 창조가 과거에 비해 쉽지 않게 됐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사실 서태지는 90년대 국내에서는 듣기 힘든 미국 음악들을 먼저 도입하거나 새로운 장르의 도전을 시도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샘플링 기법을 활용해 미국 음악과 가장 흡사한 댄스곡들을 완성했고 국내에서 생소했던 랩을 도입했다. 2집의 경우 랩과 국악을 혼합하며 기존에 없던 장르의 곡인 '하여가'를 선보였다. 3집에서는 메탈과 댄스를 접목했으며 4집에는 국내 첫 갱스터 랩으로 평가받는 '컴백홈'을 수록했다.

이렇게 서태지는 음악 선진국인 미국의 인기 장르를 남들보다 먼저 끌어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면서 '가요계 톱'의 자리를 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뮤지션들은 90년대 서태지가 보여준 혁신적 음악을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미국과 유럽 등의 최신음악과 새로운 작곡 기법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움과 참신함을 창조하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재근 평론가는 "서태지가 나올 때는 외국 음악의 최신 조류를 수입만 해도 문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며 "하지만 현재는 외국에서 인기 있는 음악을 먼저 가져온다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누구나 다 듣고 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대부분 소속사 시스템 안에 있는 뮤지션들이 실험주의에 근거해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특히 아이돌 가수들의 군무나 비주얼 등에 기반을 둔 퍼포먼스 중심의 음악이 주요 전략으로 부각되면서 그런 기대는 더욱 힘들어진 형국이다. 당연히 새로운 음악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제2의 서태지는 나오기 힘든 구조일 수밖에 없다.

[사진=스포츠Q DB]

◆ 제2의 서태지 등장은 단지 꿈일까?

이 때문에 아이돌 스타나 뮤지션에게 서태지의 영향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재근 평론가는 "기획사의 손에서 정형화되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문제다. 자신이 선호하는 기획사 음악만을 좋아하며 다른 뮤지션 등장에 거부감을 느끼는 팬들의 열려있지 않은 자세도 문제다. 이렇게 가면 K-POP은 획일화되고 기존 것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경쟁력이 사라질 것"이라며 "가요계 혁신과 다양화를 위해 기획사와 방송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음악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은 뮤지션에게는 매우 필요한 일이다. 국내 가요계의 진화를 담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또 '가요 한류'의 기반이 된 아이돌 음악이 획일화 하며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에서 제2의 서태지 찾기는 중요하다. 이런 노력과 움직임 하나하나가 국내 가요계를 다양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2, 제3의 서태지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

(*더 많은 가요, 인디신의 소식은 스폐셜 연재기사 '인디레이블탐방' 이외에도 박영웅 기자의 '밴드포커스', '밴드신SQ현장', '가요포커스', '가요초점'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박영웅 밴드전문 기자의 개인 이메일은 dxhero@hanmail.ne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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