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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WBC 참사에도, '국민감독' 김인식 업적은 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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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WBC 참사에도, '국민감독' 김인식 업적은 길이 남는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7.03.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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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김인식(70) 감독이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대만 전을 끝으로 퇴장한다. 천만 다행으로 한국 선수들은 10일 연장 11회 접전 끝에 대만을 11-8로 눌렀다. 비록 끝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부터 2015 프리미어12에 이르기까지 숱한 명장면을 연출한 ‘국민 감독’이었다.

2017 WBC는 김인식 감독이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치른 5번째 국제대회였다. 추신수(텍사스) 강정호(피츠버그) 김현수(볼티모어) 박병호(미네소타) 김광현(SK) 강민호(롯데) 등 주축들이 소속팀의 반대, 부상 등을 이유로 대거 제외됐고 결국 네덜란드, 이스라엘에 덜미를 잡혀 1라운드 탈락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김인식 감독의 유일한 흠이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006 WBC, 2009 WBC, 2015 프리미어12까지 이전 4개 대회에서 그는 우승 2회(2002, 2015), 준우승 1회(2009), 4강 1회(2006)의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 5개 대회 김인식 감독이 승률은 무려 0.758(25승 8패)다. 역대 최약체란 평가 속에도 한국 야구대표팀에 기대를 걸어봤던 이유가 바로 김인식 감독 덕분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칭송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다수가 꺼려했던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은 데 있다. 2009 WBC 대표팀 출범 기자회견에서는 “나라가 있어 야구가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병역 면제 등의 가시적인 혜택이 없는 국가대항전. 구단들의 협조가 미미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는 ‘독이 든 성배’를 들기 거부하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은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2006 WBC 사령탑도 한국시리즈 우승, 준우승 팀 감독이 거절 의사를 내비쳐 고심 끝에 수락한 자리였다. 2009 WBC도, 2015 프리미어12도 그런 식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없었던 2013 WBC에서 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자 김인식 감독을 그리워한 이들이 많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믿음의 야구. 김인식 감독은 참모를 십분 활용, 단기전에서 전력 이상의 힘을 냈던 진짜 명장이었다. 2006 WBC 한일전 마운드 태극기 세리머니, 2009 WBC 한일전 결승 연장 명승부, 2015 프리미어12 도쿄돔 9회 대역전 등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하이라이트가 김인식 체제에서 나왔다.

김인식 감독은 9일 대만전 승리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야에 젊은 지도자가 있지만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15년에 걸쳐 감독을 하게 됐다. 감독을 맡을 수 있는 지도자가 많이 있다. 하지만 부담이 되니 안하려고 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제대회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나보다 젊은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면 한다.”

'국민 감독'의 마지막 바람을 새겨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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