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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진단] WBC '고척 참사' 한국야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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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진단] WBC '고척 참사' 한국야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03.13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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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WBC 실패로 돌아본 한국야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上)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불과 1년 4개월 전 ‘프리미어 12’ 우승의 영광은 온데 간데 사라진 듯하다. 한국 야구가 2회 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하자 ‘김인식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2006년 초대 대회에서 4강까지 진출한 뒤 3년 뒤엔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두 대회에선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3년에는 2승 1패를 거두고도 점수 득실에서 아깝게 뒤져 탈락했지만 이번엔 1승 2패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마지막 대만전도 ‘끝판왕’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없었다면 내줄 수도 있었다. 대표팀의 졸전을 지켜본 많은 팬들은 “한국 야구의 ‘거품’을 확인한 대회”라며 집중 성토하는 분위기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몸값에 비해 선수들의 실력은 뒤처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투수들 중에 시속 140㎞ 후반 대 속구를 던진 이는 오승환이 유일했으며 타자들은 강속구 투수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야구는 팬들로부터 ‘우물 안 개구리’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들린다.

최정예 멤버를 꾸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1라운드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치렀기에 구장 어드밴티지까지도 기대됐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2017년 제4회 WBC에서 한국 야구는 대체 왜 실패한 걸까. 그리고 한국 야구는 이번 WBC의 실패를 계기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일까.

◆ "최고의 몸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다"

한국 야구의 문제점을 찾아보기에 앞서 이번 WBC에서 왜 실패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상대를 꼼꼼하게 분석하지 못하거나 세계 야구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것, 정예 멤버가 소집되지 않은 것 등 다양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게 바로 ‘준비 부족’이다. 선수들이 몸을 만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서로 호흡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 코치 출신 임호균(61)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감독은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선수들이 각자 기량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특히 올해는 단체훈련이 2월 1일로 늦춰지면서 선수 개인이 준비해야할 몫이 큰 시즌이었다. 비 활동기간 후반기인 1월은 개인 몫으로 돌아갔다. 선수들이 나름 대회 개막에 맞춰 몸을 만들었겠지만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오진 못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덕수고, 신일고, 천안북일고 사령탑을 역임한 최주현(70) 야구학교 감독 역시 “고등학교 선수들도 대회를 앞두고 한두 달 간 호흡을 맞추는데, 프로 선수들에게 합을 맞추도록 주어진 시간이 적었다”며 “오히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는 안정된 전력을 갖춤과 동시에 한국을 면밀히 연구하고 이를 실전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한국 선발 투수(장원준, 우규민, 양현종)들은 상대에게 공략 당했지만 우리는 제이슨 마키(이스라엘)와 릭 밴덴헐크(네덜란드)로부터 한 점도 뽑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국제대회가 거의 매년 열리는 만큼,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기 위해 ‘전임 감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임호균 감독과 최주현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임 감독은 “프로팀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 자기 팀을 돌봐야하므로 대표 사령탑을 맡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은퇴 선수나 팀을 맡고 있지 않은 감독 중 리더십이 뛰어나면서도 한국 야구의 미래가 될 아마 선수들까지 챙길 수 있는 사람에게 지휘봉을 맡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우승팀 감독에게 억지로 감독직을 맡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전임 감독이 오랫동안 선수들을 관찰하며 대표팀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 "번외경기라는 인식 있어…대회 도중에 입은 부상에 대한 '제도적 장치' 필요"

많은 팬들과 미디어는 대표팀 선수들의 정신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병역 특례 등 ‘당근책’이 없다 보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절실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 몇몇 선수들은 경기를 지고 있을 때 웃거나 애국가가 나올 때 장난스런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임호균 감독은 “70~80년대와 요즘 세대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갖는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물론 ‘김인식호’ 선수들 역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겠지만 몸값들이 비싸기 때문에 번외경기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또,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는 부상 때문에 대범한 플레이를 펼칠 수 없고 병역 특례가 없는 대회라는 점에서 절실함도 적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임 감독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당한 부상에 대해 시즌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앞서 김동주(은퇴)가 2006년 WBC 대회 도중 큰 부상을 당해 그 시즌을 통째로 날렸는데, 이에 대한 보상이 없었다”며 “선수들이 위험 부담을 안고 대회에 나가는 만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야구 롱런하려면?…"중학교 팀 창단-혹사방지 제도로 선수 손실 막아야"

지붕을 올려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기둥이 튼튼해야 하는데, 기둥이 허약하면 집이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완성되더라도 금방 무너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집이 한국 야구고 지붕이 프로야구라면 기둥은 유소년 야구에 비교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주현 감독은 적지 않은 선수들이 외부 환경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최 감독은 “한국 유소년 야구는 리틀야구를 포함해 300여 팀이다. 그런데 막상 그 아이들이 진학할 중학교 팀은 3분의 1도 안 된다. 때문에 야구를 하고 싶어도 중간에 그만 두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 야구가 기초를 튼튼히 다지기 위해서는 중학교 팀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서 “고등학교 역시 야구부가 수도권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지방에도 많은 야구부가 생겨야 하는데, 행정적으로 받쳐줄 제도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 임호균 감독은 "프로 구단이 유소년 야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스포츠Q DB]

임호균 감독 역시 “투수의 경우 아마 쪽으로 눈을 돌리면 좋은 자원이 많지만 적지 않은 아이들이 부상으로 그만 둔다”고 지적했다.

유소년 선수들은 의외로 신체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프로 선수들도 12월부터 1월까지 쉬지만 아이들은 휴식기 없이 훈련과 경기를 소화한다. 성장 판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운동을 하다 보니 부상이 발생해 아까운 재목들이 야구를 그만두고 있다.

임 감독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든 교육부든 어린 선수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유능한 자원이 다치지 않고 성장해야 장차 한국 야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혹사를 방지할 규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돋웠다.

현재 일본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메디컬 닥터가 부상이 있는 특정 선수에게 대회 참가를 불허하면 학교 측에서 해당 선수를 출전시킬 수 없는 제도가 있다. 임 감독은 “야구인 출신인 김응용 전 감독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으로 새롭게 선임됐으니 이런 부분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그렇다면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협회만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프로 구단들도 풀뿌리 야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임호균 감독은 “프로 선수들이 과연 얼마만큼 유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메이저리그(MLB)는 스타플레이어도 구단 방침에 따라 지역 주민들과 밀착된 마케팅에 익숙하다. 반면 우리나라 프로 선수들 중 진심을 가지고 어린이들에게 다가갈 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유소년 선수들은 저마다 꿈을 키워나가려 한다. TV에서만 봤던 선수가 관심을 보여주면 한 아이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이번 WBC 실패는 한국 야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 소리쳐 봤자 메아리다”며 체념한 한 아마야구 지도자의 토로처럼 야구인끼리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 야구는 답보 또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이번에야말로 야구인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중) 편으로 이어집니다. [SQ진단] WBC '고척 참사'에는 또 다른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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