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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오스카씨! '노예 12년'에 작품상 안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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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오스카씨! '노예 12년'에 작품상 안긴 이유
  • 조원희 편집위원
  • 승인 2014.03.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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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조원희 편집위원] 198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아직도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 8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을 위시한 주요 부문에 그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촬영상을 명장 비토리오 스트라로가 받았고 사운드 부문에서 수상했을 뿐, 주요 부문에서는 하나도 상을 거머쥐지 못했다. 대신 받은 작품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아주 잘 만들어진 홈 드라마로 기억되긴 하지만 아직도 어디선가 끊임 없이 재상영되고 있는 걸작 '지옥의 묵시록'과 비교해 볼 때 '게임이 안 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감독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도 프란시스 코폴라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훨씬 많다.

'지옥의 묵시록'이 지나치게 무겁고 사회 비판적이며 정치적 색채를 띤 영화였기 때문에 대중적인 영화상을 추구하는 오스카에 걸맞지 않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으나, 3년 후의 시상식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1983년에는 9개 부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흥행작 'E.T.'가 후보로 올랐다. 역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등 주요 부문에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간디'의 압승이었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이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 주연상 등 총 8개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 갔다.

'간디'는 총 5천만달러의 미국 흥행을 기록했고, 'E.T.'는 재개봉 매출을 뺀 당시 매출액만 3억5천만달러의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당시, 역사상 최고의 박스 오피스 성적이었다. '간디'는 분명히 위대한 인물을 그린 영화이긴 했지만 정치색이 강한 영화였고, 'E.T.'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었다. 이 두 번의 결과만으로 분석할 수 없는 취향을 지닌 영화상이 바로 아카데미 영화상이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아카데미 영화상은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라는 단체에서 수여하는 상이다. 6000여 명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심사 위원들의 보수성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 미국의 중산층 이상, 높은 교육 수준을 지닌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계급의 입맛에 맞는 영화들과 영화인들에게만 상을 준다는 비판은 해마다 있어 왔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라는 곳이 이제는 그렇게 자신들만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은 변했다. 오스카도 변화했다. 흑인에게 아카데미 트로피를 주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그런 스스로의 변화는 이 '아카데미 영화상'이라는 4시간짜리 쇼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매년 봄에 열리는 '오스카 시상식'은 올해 4천만달러 정도의 예산이 들어갔다. 한국 돈으로는 5백억원 정도로 대충 계산할 수 있는 이 금액은 웬만한 수준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의 예산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시상식으로 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TV 중계권료와 광고료, 그리고 각종 스폰서쉽을 따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삼성이 후원해 사회자 엘렌 디제네러스가 갤럭시 노트로 셀카를 찍는 장면이 노출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오스카 위크'는 LA의 모든 호텔에 비상이 걸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연중 가장 높은 숙박료를 지불하게 되며, 전 세계의 기자들과 영화 관계자들이 방을 잡기 위해 애쓰게 된다. 이런 부가가치 높은 시상식을 '미국 중산층의 보편적 보수성'으로 계속 지켜오기에는 현재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사상적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그리하여, 몇 년 전부터 이들은 노골적인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절대로 '거대 흥행작'을 거부하는 딱딱한 시상식이 아니며, 그렇다고 상업주의에만 찌든 영화상도 아님을 내세운다. 또한 일부 인종들에게만 상을 주며 편협한 정치성을 지닌 시상식이 아니라는 식으로 '오스카의 권위'를 지탱하고 있다. 올해의 시상식은 그런 '어떤 영화에 상을 주느냐로 자신들의 포지션을 굳히는' 모습이 정면으로 드러난 시상식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은 바로 '그래비티'였다. 감독상과 촬영상, 편집상을 비롯한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엄청난 흥행과 동시에 테크놀러지의 발전을 불러온 작품에 대한 정당한 예우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아카데미상의 주인공은 '그래비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각색상, 여우조연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작품상을 차지한 작품은 '노예 12년'이었다.

물론 '노예 12년'이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할만한 가치가 없는 작품이냐는 질문에는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작품이며 그들 스스로 감독상까지 상신한 '그래비티'보다 위대한 작품일까에 대한 질문에는 어렵지 않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명민한 안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번 시상식의 오프닝에서, 사회자 엘렌 디제네러스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졌다. "과연 오늘 '노예 12년'이 작품상을 받게 될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노예 12년'은 미국의 흑역사인 노예 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그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한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엔 나쁜 주인과 선한 주인이 등장하며 또한 예수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모두를 구원하는 백인 역시 등장한다. 게다가 감독 역시 영국 출신 흑인인 스티브 맥퀸이 맡고 있다. 모든 면에서 이 영화에 상을 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 과학 아카데미'가 이 영화에 상을 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 역시 있다. 수상자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건네는 중요한 기준 중에는 '미국 영화의 발전을 위한 공헌'에 대한 부분이 있다. (역시 아직도 차별받고 있는) 장르 영화에 주로 출연해 오스카 트로피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신의 영화사도 가지고 있고, 오랫동안 미국 영화계에 공헌을 한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영화라는 점이다. '자신들이 인종 차별주의자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인 동시에 미국 영화계의 공헌자에게 상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아카데미 회원들은 놓치지 않았다.

▲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한 장면

그러나 '타이타닉'을 위시해 아주 오랫동안 미국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신이 직접 제작까지 나서며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다섯 번째로 오스카 트로피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 이유는 뭘까? 이것 역시 아카데미 회원들은 정치적인 안배를 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알려진 바대로 주식 브로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범죄를 일으켜 수감됐던 실존 인물 조단 벨포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단 벨포트는 어떻게 보면 최악의 상황에서 인생을 역전한 입지전적 인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미국 경제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치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논란의 대상이 될만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흥행 성공 이후 언론에 노출되면서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보여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디카프리오가 눈부신 연기를 했지만, 아카데미 회원들에게는 그의 그림자 뒤에 숨어 있는 정치적 불건전함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인물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매커너히였다. 매튜 매커너히는 체중을 20Kg이나 감량해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감행하는 배우들에게 주목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성향에 딱 맞았으며 '1980년대의 미국 남부에서 HIV 바이러스와 싸우는 소외자'를 연기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 회원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과시할 수 있는 적역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매커너히

일찍이 앤디워홀은 말했다. "브루조아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브루조아적인 행위는 없다." 권위를 찾기 위해 '명분'있는 영화와 영화인에게 상을 주는 패턴이 또 한번 '오스카는 그저 상업적인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ow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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