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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故 신해철, 그는 '실험'과 '비판'의 전위 뮤지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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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故 신해철, 그는 '실험'과 '비판'의 전위 뮤지션이었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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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실험’과 ‘비판’이 그의 짧고도 긴 음악인생을 지배했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록밴드 무한궤도의 리드보컬로 '그대에게'를 불러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서강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신해철은 꽃미남 마스크, 결 고운 미성과 어울리지 않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댄스와 발라드가 주류이던 당시 대중음악계에 록 음악을 알렸다.

이듬해 무한궤도의 첫 앨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하며 활동했으나 멤버 간의 입장차이로 인해 결국 해체됐으며 설상가상 신해철은 그해 10월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 무대 위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신해철[사진=뉴시스 제공]

일찌감치 '음악천재'로 추앙받던 그는 90년대 들어 록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그러면서도 록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했다. 록에서 출발한 그의 음악적 촉수는 전자음악, 인더스트리얼 뮤직, 재즈, 클래식, 국악 등 광범위한 영역으로 뻗쳤다.

90년 솔로 1집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안녕' 등은 가요 순위프로그램 1위를 휩쓰는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아이돌 스타의 유혹을 뿌리치고 철학적이고 도회적 가사와 세련된 멜로디의 '재즈카페'가 담긴 2집 '마이셀프'를 발표해 싱어송라이터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92년에는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음악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넥스트를 이끌던 시절 넥스트 활동과는 별도로 전람회 등 동료 후배 음악인들의 앨범 프로듀싱, 객원 보컬 참여, 영화 ‘정글스토리’ OST 제작, 발라드 뮤지션 윤상과 결성한 프로젝트 ‘노 댄스’ 음반 출시 등 전방위 활동을 펼쳤다. 특히 ‘노 댄스’는 춤추기 위한 테크노가 아닌 본질에 충실한 '감상용' 테크노 음악을 선보여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멤버들과의 호흡이 관건인 밴드 출신임에도 신해철은 '나홀로' 진행하는 컴퓨터 음악작업에 공을 들였다. 솔로 시절부터 시작된 컴퓨터 작업은 디지털 엔지니어링에 기반한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믹싱, 마스터링 등 원맨밴드의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

▲ 생전의 신해철 모습[사진=뉴시스 제공]

92년 국내 음반 사상 처음으로 전곡을 미디(MIDI)로 제작한 2집을 비롯해 97년 넥스트 4집 발매 이후 해체를 선언한 뒤 떠난 영국유학 도중 발표한 ‘크롬스 테크노 웍스’(98)에서 드러난 복잡하고도 정교한 사운드 설계, 크리스 샹그리디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99) 앨범에서 창과 구음, 국악기 사운드와 기타, 베이스, 드럼, 신시사이저를 직조한 성취는 그를 '사운드의 마술사' 칭호를 얻게 했다.

2000년대 들어 활동량은 줄었지만 여전히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키보디스트 임형빈, 재미동포 기타리스트 데빈 리와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조직하는가 하면 2003년 프로젝트 앨범 '프로젝트 X' 발매, 2004년 넥스트 재결성 5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III: 대한민국'을 발매했다. 2007년에는 재즈음악으로만 채운 솔로앨범 '더 송스 포 더 원'을 내놓았고, 올해 6월 솔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출시했다.

그는 일류대 출신 주류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 저항의 록 스피릿에 충실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논리정연한 독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사회적 통념을 통렬히 비판한 ‘나에게 쓰는 편지’(1991),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삶과 죽음을 경험한 소년의 충격을 노래한 ‘날아라 병아리’(1994), 물신주의에 물음표를 던진 ‘세계의 문’(1995), 동성동본 결혼을 선택한 이들을 응원하는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1995), 사회적 불구를 양산하는 교육시스템에 돌직구를 날린 ‘매미의 꿈’(1998)을 통해 당당히 제 목소리를 냈다.

▲ 올해 발표한 신보 '리부트 유어셀프' 투어 포스터[사진=뉴시스 제공]

노래를 빌어서만 행동하지 않았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노무현 후보 선거유세에 이어 이듬해 이라크전 파병반대를 위한 동료 연예인들과의 결의대회 및 1인 시위에 참여했다.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 간통죄 반대 및 폐지, 학생 체벌 금지, 영어 공교육 정책 반대 등 사회의 민감한 사안에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2009년에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로켓 발사를 축하한다는 글을 올려 정치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 그에겐 ‘독설가’ ‘마왕’이란 수식어가 붙여졌으며 두터운 팬덤이 형성됐다.

정교하고도 웅장한 사운드에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실어내고 부조리와 통념에 대한 저항을 속삭여주던 전위 싱어송라이터를 우리는 상실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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