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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호날두의 '7'과 메시의 '10', 등번호가 전하는 축구의 변화와 인물사강제 규정에서 시작한 등번호, 이제는 선수 개성 드러내는 수단으로
  • 이희찬 기자
  • 승인 2017.03.25 12:20 | 최종수정 2017.03.25 12: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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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희찬 기자] 2017년 3월 24일은 세계 축구의 대변혁을 이끈 ‘그라운드의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의 사망 1주기였다. 크루이프는 고정화됐던 축구의 포메이션 개념을 깨뜨리고 전원공격-전원수비의 ‘토털사커’를 유행시켰던 스타플레이어. 그의 등번호 ‘14’ 역시 크루이프만의 상징과도 같은 숫자였다.

때로는 숫자가 사람의 대명사가 되곤 한다. 갓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들은 이름이 아닌 ‘훈련번호’로 불리고, 벌어들이는 연봉의 숫자가 그 사람을 설명하기도 한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7번, 리오넬 메시의 10번은 그들을 상징하는 '고유 번호'로 자리잡았다. [사진=뉴시스]

축구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의 명성만큼 유명한 것은 그들의 ‘숫자’, 등번호다. 스피드와 개인기를 겸비한 호날두의 등번호 ‘7’과, 그 자체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메시의 등번호 ‘10’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등번호에 의미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 '구분만 하면 된다'? 등번호(백넘버)의 초창기 용도

없으면 서운할 것만 같은 등번호지만 선수 유니폼에 숫자가 새겨진 것은 축구가 생긴 이래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잉글랜드의 축구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나단 윌슨은 저서 ‘축구철학의 역사 : 위대한 전술과 인물들’을 통해 등번호가 도입된 배경을 설명했다. 등번호를 필요로 한 이유는 ‘선수들을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축구 경기 소식이 신문과 초창기 TV를 통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경기에서 뛰는 선수를 분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영국축구협회(FA)는 1939년에 처음으로 유니폼 상의 번호 표시를 의무화했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번호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없었다.

FA는 당시 ‘대세 전술’이었던 2-3-5 포메이션에 맞춰 골키퍼는 1번, 2명의 수비수는 2번과 3번, 3명의 미드필더가 4번부터 6번, 5명의 공격수는 7번부터 11번을 사용할 것을 규칙으로 정했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등번호가 매겨졌다.

◆ 포메이션의 변화, 등번호에 의미를 불어넣다

시간이 흘러 2-3-5가 아닌 색다른 포메이션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감독과 팀들이 늘어났다. 대표주자는 잉글랜드 출신의 허버트 채프먼 감독이었다. 채프먼은 아스날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미드필더였던 ‘5번’을 수비로 이동시켰고 공격수였던 ‘8번’과 ‘10번’을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놓으면서 변화를 꾀했다. 이른바 ‘W-M(3-2-2-3)’ 포메이션의 탄생이었다.

이에 따라 8번과 10번 선수는 최전방이 아니라 미드필드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시에 7번과 11번은 측면 공격수, 9번은 중앙 공격수를 의미하게 됐다. 조직력을 중시했던 잉글랜드에선 8번이 팀의 야전 사령관이 됐고, 개인기와 창의성을 중시한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에선 10번이 공격의 지휘자 역할을 맡으며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 프랭크 램파드는 첼시의 등번호 8번을 달고 648경기에서 211골을 기록했다. [사진= 신화통신/뉴시스]

잉글랜드 출신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가 주로 등번호 ‘8번’을, ‘축구황제’ 펠레와 ‘축구의 신’ 마라도나가 등번호 ‘10번’을 달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이해하기 쉽다.

◆ 크루이프의 등장, 깨지기 시작한 등번호의 틀

1965년 경기 중 선수 교체가 규칙으로 정해지며 11번 이후의 등번호가 등장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의 등번호는 주로 11번까지로 한정됐다. 12번 이후의 숫자들은 후보 선수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 요한 크루이프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등번호 14번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 AP/뉴시스]

이 고정관념을 깨뜨린 이가 크루이프였다. 그동안의 통념에 따른다면 크루이프 등번호는 ‘당연히’ 11번 안쪽이어야 했다. 자로 잰 듯한 패스와 예측 불가능한 창의적 플레이,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했던 크루이프는 그 자체로 팀 상징이자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루이프는 당시로는 파격적이게도 14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영국 일간지 미러는 크루이프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다룬 특집 기사에서 “크루이프는 부상으로 쉬는 동안 동료가 그의 등번호를 사용하자 아무도 쓰지 않던 14번을 골라 자신만의 번호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며 14번 선택 이유를 밝혔다.

어찌 보면 대단치 않은 이유였지만, 크루이프의 14번 선택은 주전, 비주전 간 등번호의 벽을 허물게 된 시초가 됐다. 이후 그를 동경하는 수많은 선수들이 크루이프와 같은 번호를 고르거나 자신만의 등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티에리 앙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날로 이적하며 크루이프를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아 14번을 등번호로 선택하기도 했다.

◆ 등번호, 이제는 선수를 말한다

프로축구 무대에선 사용할 수 있는 등번호 범위가 비교적 넓다. K리그는 1번부터 99번까지 중 등번호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등번호 사용은 아직 제한적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들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1번부터 23번까지의 등번호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축구 전술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중이고 등번호만으로 선수의 포지션과 역할을 완벽히 구분할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등번호에 대한 선수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다. 자신만의 정체성 혹은 특별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등번호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맨체스터 시티 공격수 가브리엘 제수스는 프로 무대 데뷔 이후 줄곧 33번의 등번호를 고집하고 있다. [사진=맨체스터 시티 공식 홈페이지 캡처]

지난 1월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은 ‘브라질 신성’ 가브리엘 제수스는 등번호 33번을 선택했다. 영국 더 선은 지난달 4일 “제수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33살을 의미하는 33번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제수스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Jesus)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동료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등번호를 선택한 선수도 있다. K리그 포항 스틸러스의 미드필더 무랄랴는 자신의 등번호로 88번을 선택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옛 동료의 등번호를 추모하는 뜻에서였다. K리그에선 1번부터 99번까지의 등번호를 사용할 수 있다.

이제 축구에서 등번호는 선수개인의 생각과 개성을 담는다. 향후 등번호 관련 어떤 스토리가 이어질지 흥미를 돋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이희찬 기자  chansmaking@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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