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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악녀 연민정' 연기한 착한 배우 이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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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악녀 연민정' 연기한 착한 배우 이유리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10.29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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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국민 악녀’. 이유리가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연기한 ‘연민정’ 역에 붙는 수식어다. 극중 민정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식을 버리고 거짓말을 일삼고, 다른 이의 죽음까지 감수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이제껏 없던 극도의 악역 연기로 시청자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유리는 ‘발암녀’라는 애칭 아닌 애칭을 얻기도 했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노민규 기자] 24일 서울 동대문에서 이유리를 만났다. 극중 연민정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까지 벌인다. 그러나 연민정을 벗어난 이유리는 표독스러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게 조용하고 여성스러웠다. 그녀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 '왔다! 장보리' 마지막회에서 '아내의 유혹' 패러디로 눈 밑에 점을 찍고 나온 연민정을 따라해 보이는 이유리.

◆ 이유리의 존재감 확실히 한 ‘왔다! 장보리’

‘왔다! 장보리’의 최대 수혜자는 이유리일 것이다. 악녀 연민정과 문지상(성혁 분)과의 팽팽한 대립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줬다. 악역이란 건 알았지만 이유리도 연민정의 도가 지나친 악행에는 놀랐다.

“연민정이 이 정도로 패륜적인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 못했어요.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 버리는 행동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해가 안 됐고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배를 끌어안고 병원도 안 가고 엄마가 직접 탯줄을 끊은 건데. 정말 독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연민정을 향해 욕을 하고 이유리 본인도 그녀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연기를 하려면 민정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민정을 마냥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게 됐다.

“드라마 초반에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겁이 났어요. 다들 ‘연민정이 나쁘다’고 말하는데 저는 나쁜 여자의 편을 들어야 하니까. (민정이 몰락하는) 51회를 보니 괴롭더라고요. 물론 민정의 악행은 나쁜 짓이지만 가정 환경같은 것도 영향을 줬을 거예요. 어릴 때 억눌리면 커서 비뚤어지잖아요.”

연민정은 아주 나쁜 인물이지만 연기를 향한 열정은 통했다. 민정 캐릭터에 대한 욕은 많았지만 이는 이유리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시장에 갔는데 어머니 아버지들이 연기로 보시더라고요. ‘저 안 미우세요?’ 여쭤보니 ‘왜? 연기잖아?’ 하시고. 물론 제가 뭘 해도 꼴보기 싫다거나 가식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욕을 먹어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니까 저에겐 욕이 칭찬이었죠. SNS에 따뜻한 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을 보면 위로가 되기도 했고요.”

 

◆ 악쓰는 연민정? 소심한 이유리! “노홍철이 부럽다”

실제 모습과 악녀 연민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이유리의 연기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연민정 연기를 정말 열심히 했나보다’라는 칭찬에 겸손하게 답한다.

“연기를 제대로 하는지 아닌지는 제 가슴이 알기 때문에. 그리고 다들 열심히 했어요. 성혁 씨는 저와 웃고 장난을 치다가도 극에 몰입하면 저를 꼴보기 싫은 사람처럼 쳐다보고, 김지훈 씨는 다른 사람들이 신을 찍고 있는데도 멀리서 혼자서 큰 소리로 대사를 연습해요.

오연서 씨는 대사 처리를 얼마나 똑소리나게 하는지. 저는 호흡이 빨라서 급한 면이 있거든요. 오창석 씨는 제 옆 대기실을 썼는데 대사를 열심히 연습해서 시끄러울 정도였어요. 그런 열정들 때문에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요.”

함께 작업한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해 가며 칭찬할 점을 꼽은 이유리는 자신의 실제 성격은 소심하다고 털어놨다.

“저는 소심한 성격이거든요. 창피해서 대사 연습도 속으로 많이 해요, 저도 노홍철 씨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자신감있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우렁차게 말하고 에너지를 끌어내는 사람이 부러워요. 지금껏 우울한 역이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이런 모습으로 웃음도 드리고 싶어요.”

 

◆ 그저 연기가 좋은 배우, “‘연민정’으로 얻은 건 좀 더 많은 연기 기회가 올 거라는 기대”

“‘왔다! 장보리’ 초반에는 제 쪽에서 먼저 ‘인터뷰 좀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찾아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한 분 한 분이 소중해요. 보통은 드라마 기자간담회 때 인기가 표가 나는데요. 저에겐 관심이 쏠리는 경우가 없어서 기자 한 분이 질문을 하시면 굉장히 반가웠어요.”

이유리는 2001년 드라마 ‘학교4’로 데뷔했다. 동그란 눈에 순정만화 캐릭터같은 외모의 신인 배우였던 그녀는 이제 30대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연기력이나 외모 등에 비해 ‘연민정’ 이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성공에 대한 조급함은 없었어요. 연기하는 걸 정말 좋아해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어요.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컸거든요.”

예전부터 그저 연기하는 게 좋았다. 여전히 일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이제는 다른 측면에서의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점이다.

“예전엔 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젠 저를 위해서 애써주시는 분들께 인간적으로 감사함이 생겼어요.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저 욕심많은 놀부처럼 보일 뿐이지. 일에 있어서는 욕심을 내지만 이득을 위해서 피곤하게는 살고 싶지 않게 됐어요. 민정이가 머리가 좋은데 그 좋은 머리를 좋지 않은 데 썼으니 나쁜 끝을 맞은 것처럼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쏟기로 한 이유리는 연기적인 면에서도 부담을 느끼기보다 이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다.

“‘악역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것 아니냐’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악역 전문 배우’도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 전국에 연민정이란 이름을 가지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이 이름으로 기억된 것에 만족해요. 하하.”

일각에서는 이유리의 열연에 대해 “연기대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상 욕심은 없어요. 이렇게 관심을 주신 것만 해도 만족해요. 다만 제가 기대하는 부분은, 연민정 연기에 관심을 주신 것에 따라 앞으로 제게 주어질 연기의 기회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는 거예요.”

 

[취재후기] 30대 중반의 배우라고 보기에는 말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천진하고 맑다. 인터뷰 중에는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틈틈이 챙긴다. 배우 황영희가 이유리를 칭찬했다는 말이 나오자 감사의 말과 함께 세 네 마디가 함께 딸려 온다. “황영희 선배님이야말로 정말 좋은 분이에요. 누군가를 미워하면 벌을 받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미운 마음이 아예 없어요. 민정이에게 애절한 마음처럼 따뜻함밖에 없는 분이에요.” 다른 이에 대한 진심어린 칭찬은 이유리 본인을 더욱 빛낸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악녀’와 착한 여자 이유리는 거리가 멀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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