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0:36 (금)
[SQ현장] 초봄의 V리그 명승부, 승자도 패자도 목놓아 울었다
상태바
[SQ현장] 초봄의 V리그 명승부, 승자도 패자도 목놓아 울었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04.03 23: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주현희 기자] 눈물바다였다. 아직은 쌀쌀한 초봄이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한여름 못지않았다. 야속하게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일전에서 모두가 목 놓아 울었다.

3일 천안 현대캐피탈의 V리그 챔피언결정 5차전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인천 계양체육관 한쪽을 가득 메운 현대캐피탈 원정 팬들은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서로를 끌어안으며 흐느껴 울었다. 지난 10년간의 한을 모두 털어내 후련한 듯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팬들도 많았다.

▲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3일 대한항공과 V리그 챔피언결정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경기 후 서로 얼싸안으며 우는 선수들.

반면 안방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대한항공 팬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승자 현대캐피탈을 축하하며 우승 세리머니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중석에 앉은 채 눈물을 훔쳤다.

선수들도 울음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최태웅 감독과 여오현 플레잉코치를 제외하고는 프로에서 우승 경험이 없는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펑펑 울었다. 독일에서 한국 무대로 온 이후 한 번도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주장 문성민(시리즈 MVP)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 현대캐피탈 원정 팬들이 3일 대한항공전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시상식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문성민은 “선수들이 시즌을 준비하면서 많이 희생했다. 서로 배려했기 때문에 경기를 거듭하면서 조그만 게 모여 큰 힘이 생긴 것 같다. 챔프전 1차전에서 내가 부진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것 때문에 선수들에게 미안했는데 우승한 순간 그 대목이 생각나 울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어릴 때 눈물이 많았다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강해지고 남들에게 강해보이기 위해 참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감수성이 예민해진 것 같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나오더라. 오늘 흘린 눈물은 감동의 눈물이다”고 덧붙였다.

우승을 확정한 뒤 가장 먼저 최태웅 감독에게 달려간 대목에 대해서는 “올 시즌을 보내면서 감독님이 내가 잘할 때도 못할 때도 믿음을 주셨다. 하지만 난 내가 감독님께 못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을 때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팀에서 제일 고생하신 분이 감독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독님께 달려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최석기(오른쪽 두번째) 등 대한항공 선수들이 3일 현대캐피탈에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령탑 부임 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최태웅 감독은 경기 전에 예고했던 대로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울컥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최 감독은 “아까 대니의 발목이 돌아가는 걸 봤는데, 본인이 끝까지 참고 하려는 모습을 보였을 때 울컥했다. 눈물이 나올 뻔 했지만 참았다”고 머쓱해했다.

패자인 대한항공도 눈물을 쏟았다. 정지석을 비롯해 진상헌, 최석기 등 주축 선수들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를 계속 유니폼으로 훔쳤다. 곁에 있는 다른 선수들이 애써 위로해줬지만 준우승의 아쉬움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V리그 4번째 준우승을 달성한 대한항공은 첫 우승의 꿈을 다음으로 미뤘다.

▲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3일 V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포효하고 있다.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챔프전에서는 현대캐피탈의 실력이 우리보다 나았기 때문에 우승한 것 같다”며 “내가 감독을 맡아서 준비한 노력보다 팀이 리그를 잘 치른 것 같다. 배구인생 40년 중에 이번이 가장 짧았던 리그라고 생각될 만큼 선수들과 즐겼다. 올해 못했던 것을 내년에 할 수 있도록 빨리 준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거의 매 세트 듀스까지 갈 정도로 치열했던 명승부가 현대캐피탈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어느 봄날 연출된 눈물의 드라마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훗날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