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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박성현-타이스-정현 동병상련, 대체 '입스(yips)'가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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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박성현-타이스-정현 동병상련, 대체 '입스(yips)'가 뭐기에?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04.19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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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극복방안은?…최천식 인하대 감독, "입스 걸린 선수에게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 사례 1. 2016~2017시즌 V리그에서 뛴 대전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타이스는 자신의 서브 차례만 돌아오면 손이 떨리고 동공이 흔들린다. 혹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현대배구에서는 서브도 공격에 포함되기 때문에 공격수, 특히 외국인 거포에게 강한 서브가 요구된다. 그러다보니 타이스의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한 임도헌 감독은 타이스의 서브가 돌아올 때마다 원포인트 서버를 투입했다.

# 사례 2. 과거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사이드암 투수 이왕기는 2005년 당시 촉망받았던 불펜 요원이었다. 하지만 부상과 부진으로 시련을 겪으면서 심리적인 불안감이 매우 높아졌다. 마운드에 서서 포수에게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2014년 이재율로 개명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끝내 정신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위의 두 사례는 스포츠에서 멘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The soul directs the body)’는 말이 영어사전에 올라와 있을 정도다.

부상 및 실패에 대한 불안감, 주위 시선에 대한 지나친 의식 등이 원인이 되어 손과 손목 근육의 가벼운 경련, 발한 등의 신체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 바로 입스(yips)’가 타이스와 이왕기를 힘들게 했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한 박성현도 과거 드라이버 입스로 3년 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의학적으로는 뇌 속의 무의식과 의식을 각각 담당하는 편도와 해마의 균형이 깨져 편도가 과잉 활성화되고 해마가 억압될 경우 발생한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골퍼의 25% 이상이 입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고경훈의 논문 『프로골프 선수들의 입스 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한 심층적 접근』에 따르면 입스는 외부 및 환경(43.5%)에 의해 발생하기보다, 내적 원인(56.5%)으로 발생하는 비율이 좀 더 높았다. 아울러 입스의 증상은 크게 기술적 증상(38%), 심리적 증상(30%), 신체적 증상(19%), 상황적 증상(13%)으로 나뉘는데, 이 중 심리적 증상의 세부영역은 불안감(57%), 강박감(15%), 무서움(10.5%), 부정적 생각(10.5%), 자기무력감(7%)으로 나타났다.

▲ 2016~2017시즌 V리그 경기 도중 서브를 넣고 있는 타이스. 그는 서브를 할 때 토스가 불안정해 라인을 밟는 파울을 범하거나 공이 네트를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 KOVO 제공]

◆ 야구선수부터 피아니스트까지, 입스의 다양한 사례

허나 입스가 골퍼에게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많은 골프 선수들이 입스를 겪지만 야구나 농구, 배구 등의 구기 종목 선수나 피아니스트, 속기사, 작가 등 특정 근육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직군의 사람들에게도 발생한다.

야구에서는 흔히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뛴 우완 투수 스티브 블래스의 이름을 딴 병인데, 블래스는 1968년 18승 6패(승률 0.750)로 내셔널리그(NL) 승률왕을 차지했고, 3년 후엔 5차례나 완봉승을 따내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2경기 완투승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4승 3패로 꺾는 주역이 됐다. 이것도 모자라 이듬해엔 19승(평균자책점 2.49)으로 생애 최다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메이저리그(MLB) 첫 올스타전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블래스는 1973년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제구가 무너졌다. 스트라이크를 전혀 던질 수 없었다. 직전 시즌 19승을 따낸 블래스는 이때 3승 9패 평균자책점 9.85를 기록,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블래스가 리그에서 1위를 기록한 건 승률이 아닌 몸에 맞는 공이었다. 88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몸에 맞는 공 12개를 내줬다. 이후 투구폼을 고치고 명상을 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블래스는 1974년 5이닝 2피홈런 8실점(5자책) 평균자책점 9.00이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긴 채 은퇴했다.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1965년 갑자기 오른손 4번째와 5번째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통 땐 괜찮은데 연주만 하려고 하면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이에 그는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연주했다. 오래 후 손이 회복됐지만 예전 같은 연주 실력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도 입스를 겪었다. 2015년 기량이 크게 성장하며 세계랭킹 100위권 진입에 성공한 정현은 2016년에도 승승장구를 예고했지만 복부근육 부상과 함께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시즌 초 15개 대회에 참가해 1회전을 7차례밖에 통과하지 못했다.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진 정현은 그해 5월 프랑스 오픈 이후 4개월간 투어를 쉬었고 리우 올림픽에도 나가지 않았다. 포핸드 스트로크를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호흡이 빨라지고 손에 경련이 일어나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정현이 예전과 같은 기량을 회복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은 2016년 초반 입스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부진에 빠져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사진= 라코스테 제공]

◆ "입스 극복법? 선수 스스로 심리적 부담 떨쳐야"

이처럼 자기도 모르게 찾아와 선수생활을 망치게 하는 주범인 입스는 다른 사람이 도와줌으로써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인하대 배구부 감독을 맡고 있는 최천식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서브 입스가 있는 타이스의 경우, 스파이크 서브를 올릴 때 토스가 일정하지 않다. 연습 때는 (일정하게) 된다고 하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리듬감이 떨어진다. 이 리듬을 해결해야 한다. 토스 높이를 낮추고 빠르게 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같이 기술적인 보완으로 입스를 극복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궁극적인 해방이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두에 언급한 논문에 따르면 입스 극복 방법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심리적 극복(44%)이다. 환경적 극복(32.3%)과 기술적 극복(23.7%)이 뒤를 잇는다.

최천식 위원은 “나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입스가 온 선수들을 많이 봐왔지만 입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수 스스로 심리적인 부담을 떨쳐내는 수밖에 없다.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수에게 ‘힘 빼고 천천히 하라’고 하는 등 조언을 건네는 것과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밖엔 없다”면서 선수 본인의 정신력이 강해야만 입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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