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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김영환 버저비터-레스터시티 동화', 스포츠는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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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김영환 버저비터-레스터시티 동화', 스포츠는 스토리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7.04.17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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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슈퍼매치 골-서건창 200안타 등 스토리가 있어 더욱 매력적인 스포츠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김영환(창원 LG)의 ‘미라클 버저비터’, 레스터 시티 기적의 우승과 ‘인간 승리’ 제이미 바디, 이상호(FC서울)의 슈퍼매치 골, 서건창(넥센 히어로즈)의 200안타 등등.

만화 또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더해져 감동을 배가시켜준 사례들이다. 스포츠 마니아들은 이 장면들을 보며 열광했다.

스토리가 강조되는 시대다. 자기 소개서에도 나름의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스포츠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성적 만능주의에 빠져있던 스포츠에서도 스토리가 뒷받침되는 선수와 팀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 부산 kt 김영환(왼쪽에서 2번째)은 지난달 24일 창원 LG전에서 '기적의 버저비터' 한 방으로 조성민과 트레이드된 후 냉소적이었던 팬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사진=KBL 제공]

◆ 9회말 역전 만루홈런 같은 짜릿함, 예상 뒤엎은 ‘식스센스’급 반전 스토리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센스.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충격적 반전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이다. 스포츠에서도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결과를 보기 좋게 깨버린 경우들이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 시티와 소속팀 골잡이 제이미 바디(30)가 대표적이다. 1884년 창단한 레스터는 2014~2015시즌 챔피언십(2부)에서 승격해 EPL 무대를 밟는다. 가까스로 강등권에서 벗어나 리그 잔류에 성공한 레스터는 다음 시즌 파란을 일으킨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리버풀의 부진 속에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등을 꺾고 창단 132년 만에 우승을 이뤄냈다. 레스터의 ‘동화’ 같은 스토리는 전 세계 축구팬들을 감동시켰다. 만년 하위권에만 처져 있는 팀들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 중심에 바디가 있었다. 바디는 오전에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8부 리그 팀에서 뛰면서도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갔다. 2011년 5부 리그 팀으로, 2012년 챔피언십(2부) 레스터의 유니폼을 입은 바디는 지난 시즌 EPL에서 22골 6도움으로 날아올랐다. 포기를 몰랐던 공장 노동자는 모두가 꿈에 그리는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국가대표로 거듭났다.

국내 프로농구에도 바디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서울 SK의 김준성(25)이다. 그는 명지대 졸업반 시절이던 2014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아 당장 생업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었고 장례식장에 정식으로 입사해 매니저로 일했다. 1년 이상 농구공은 손도 대지 못했다.

다시 농구를 시작한 것은 부모님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 실업팀 놀레벤트에 들어간 김준성은 체육관과 숙소, 심지어 부상 방지를 위한 테이핑 도구도 넉넉지 않은 팀에서 이를 갈았다. 전국체전 8강에서 연세대를 꺾는데 선봉에 선 김준성은 지난해 10월 다시 도전한 드래프트에서 문경은 감독에게 지명을 받고는 눈물을 흘렸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회 대회의 짜릿한 기억도 있다. 대회 전 일본의 간판 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도발했다. 실력으로 일본의 콧대를 꺾어 놓으면 될 일이지만 큰 기대를 갖기는 어려웠다. 메이저리그(MLB)에서 전성기를 이어가던 이치로와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이 주축으로 나선 일본 대표팀에 비해 한국은 객관적 전력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한일전은 전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치로의 발언은 무색해졌다. 도쿄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일본에 3-2 역전승을 거둔 한국은 2라운드에서도 2-1로 이겨 4강에 진출했다.

경기 후 서재응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장면은 국민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치로는 한국에 2연패를 당한 뒤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드래프트 탈락, 아버지의 병환으로 마음 고생을 했던 김준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 SK의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사진=KBL 제공]

◆ ‘전화위복’, 변화 속 더욱 강해지는 오뚝이들

지난 2월 24일 창원체육관에서는 KBL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탄생했다. 부산 kt 김영환(33)은 팀이 74-76으로 뒤진 경기 종료 직전 3점 라인 밖에서 훅슛을 던졌다. 수비 2명이 뛰어올랐지만 손을 떠난 공은 그대로 림을 통과했고 극적인 역전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마음고생을 털어낸 완벽한 버저비터였다. 지난 1월 31일 김영환은 조성민과 맞트레이드로 kt의 유니폼을 입었다. 김영환이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트레이드 상대가 리그 최고의 3점 슈터 조성민이라는 점이었다. kt팬들은 트레이드를 단행한 구단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김영환 또한 환대를 받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조성민이 있는 친정팀 LG와 경기에서 김영환이 가장 극적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기적을 쐈다. 김영환은 감격에 겨워하며 림에 매달리는 덩크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 슛 한방으로 자신을 향한 농구팬들의 시선을 180도 바꿔놓았다. 김영환은 시즌 종료 후 KBL 시상식에서 샷오브더시즌을 수상했다.

K리그 클래식 FC서울 이상호도 지난달 5일 친정팀을 상대로 날아올랐다. 2006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에 입문한 이상호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원 삼성에서 뛰며 라이벌 FC서울과 ‘슈퍼매치’에서 4골을 넣었다. 당시 서울 팬들을 자극해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이상호가 동점골로 친정팀에 비수를 꽂자 서울 팬들은 통쾌함을 느끼며 목이 터져라 이상호를 연호했다.

▲ 이상호(왼쪽에서 2번째)는 지난달 5일 친정팀 수원 삼성과 슈퍼매치에서 동점골을 넣어 홈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사진=스포츠Q DB]

야구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건창은 2008년 LG 트윈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했지만 가능성을 보이지 못해 이듬해 방출됐다. 한화 이글스 입단테스트에서도 탈락했고 경찰야구단에는 지원 자격조차 되지 않아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결국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넥센 히어로즈에서 육성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서건창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첫 시즌에 주전을 꿰찬 서건창은 신인왕을 차지하더니 2014년에는 이종범의 단일 시즌 196안타 기록을 넘어 201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KBO리그 최초 200안타 고지를 넘어섰다. 시즌 최우수선수(MVP)도 당연히 그의 몫. 서건창은 리그 최고의 2루수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MLB에 진출한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를 비롯해 서동욱(KIA 타이거즈), 박경수(kt 위즈) 등도 팀을 옮긴 뒤 전성기를 맞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기존 팀에서 오랜 시간 주전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고전했지만 이적이라는 변화를 계기로 성공, 박수를 받고 있는 선수들이다.

◆ 드라마 같은 장면이 전달해주는 힘, 대리만족으로 쾌감을 얻는다

승, 무, 패. 스포츠처럼 결과가 명확히 나타나는 것도 없다. 점수를 많이 내면 이기고 가장 많은 기록을 쌓은 선수가 수훈갑이 되는 게 스포츠다. 그럼에도 기록지에 나타나지 않는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한만정 MBC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 또한 스토리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실업팀 선수로 활약했던 한만정 위원은 야구를 그만둔 뒤 자동차 세일즈맨으로서 ‘영업 왕’까지 경험했다. 이후 이화여대, 대우자동차 소프트볼 팀에서 감독을 지냈다. 소프트볼 해설을 하던 도중 우연한 계기로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야구를 중계하게 됐고 이후 20년이 넘도록 야구 해설위원으로 맹활약 중이다.

▲ 서건창은 2014년 육성선수 신화를 쓰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 200안타와 함께 시즌 MVP를 차지했다. [사진=스포츠Q DB]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일까. 스포츠에서 스토리가 가지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한 위원은 “스포츠는 럭비공과 같다.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이 쉽지 않다”며 “1위팀이 10위팀에 잡히는 게 야구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승환은 고등학교 때 팔꿈치와 허리 부상으로 인해 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다. 단국대에서도 3학년이 돼서야 투수로 나섰고 삼성 라이온즈에 가까스로 들어갔다”며 “그런데 지금 오승환을 봐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진출했고 MLB에서도 주목받는 마무리 투수가 되지 않았나. 스포츠팬들은 이러한 반전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꿈같은 일들이 스포츠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 위원은 “NC 다이노스 이재학, 김태군도 이전 팀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이들이 성공할 줄 누가 알았겠나”라며 “성실함이 밑바탕 되기 때문에 이뤄지는 결과다. 팬들은 선수들의 열정과 땀이 보상받는 게 스포츠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시대다. 젊은 세대들은 연애, 결혼,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채 힘겹게 살고 있다. 이른바 ‘3포 세대’ ‘5포세대’라고 불린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는 스포츠는 팬들에게 한줄기 빛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스포츠 세계와 같이 노력하는 만큼 반드시 보상이 따르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 스토리 있는 스포츠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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