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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⑥ 아메리칸 드림, 셀프 카메라로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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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⑥ 아메리칸 드림, 셀프 카메라로 포착하다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1.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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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어서 한국에 수입이 안된 브랜드들이 많았는데, 미국 가기 전에도 트렌드에 민감하던 때라 유학생 친구들에게 한국 올 때 구매를 부탁하거나, 정식 수입된 제품이 아닌 OEM 제품을 구입하곤 했다.

미국에 가서는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 보다는 더 넓은 세상의 패션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아무 곳에서나 찍어도 화보사진처럼 멋진 배경이 되는 그곳에 적응이 빨리 되었다.

▲ 코트, 원피스, 슈즈를 블루계열로 통일한 코디. 리모컨을 들고 셀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미국 가기 전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LA에는 동대문과 비슷한 패션 지구(Fashion District)가 있는데 그 안에 자바시장(jobber market)이 있다고 했다.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사전조사도 없이, 그 말 한마디만 믿고 LA로 날아 갔다.

가방을 다 뺏기고 1주일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관 브로커에게 의뢰하여 3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내고 내 짐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짐을 찾는데 세금을 내고 찾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만히 본 나도 문제긴 했다.

조금씩 그곳에 적응하면서 모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어릴 적 꿈인 모델 생활을 몇 년 하다가 사업을 하다 보니 돈맛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사업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모델에 대한 미련이 없었는데, LA 도착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 모델 에이전시를 하던 친구가 런웨이 쇼에 한번 서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모델라인에 다닐 때 "넌 키가 작아서 절대 모델이 될 수 없어" 라는 동기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런웨이에 설 수 없었던 나는 잡지모델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아픈 기억 때문에 친구의 권유는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의 감정으로 다가왔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 '붐 바이 조이 한(Voom by Joy Han)'이라는 브랜드 런웨이 쇼였는데, 디자이너 또한 나의 키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디자인한 옷을 여러 벌 입게 해주었다.

여러 백인, 흑인 모델들과 함께한 쇼였고, 조금이나마 맺혔던 한을 풀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모델이라는 직업에는 전혀 미련이 없었다.

▲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사진.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셀프 화보 촬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이 스커트는 100장 이상 판매되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오로지 '미국 의류와 아이템을 한국으로 판매하면 정말 유니크하겠다'는 생각으로 쇼핑몰 운영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한국에 론칭되지 않은 미국 브랜드를 구입해서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했다. 자동차는 짐을 많이 실을 수 있고 운전하기 부담없는 작은 사이즈의 박스카를 구입했다. LA에 도착하자 마자 사진을 찍어주는 직원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삼각대를 세우고 셀프 카메라로 찍으러 다녔다.

그러나 국제 배송료와 세금, 마진을 더한 가격은 너무 높게 책정이 되었고,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 콘셉트와의 가격 차이로 인해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디자인이 유니크하기만 하면 정말 판매가 잘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점점 회원들은 탈퇴하고 매출은 하루하루 나빠졌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던 동대문 시장 같은 그곳이 생각났다.

무작정 '자바시장' 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하루 종일 시장조사를 했는데, 생각 했던 것보다 정말 기대 이하였다.

디자인이 생각보다 너무 평범하거나, 파티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야했고, 동대문시장처럼 한 장씩 구입할 수도 없었다. 또 LA는 4계절이 뚜렷하지 않고 여름이 길기 때문에 거의 1년 내내 여름 옷이 생산되고 겨울옷을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곳은 다인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사이즈가 다양하다. 그래서 의류업체에서 사입을 할 때에는 스몰, 미디움, 라지 사이즈를 각각 2장씩 구입해야만 했다.

무조건 총 6장이 들어 있는 팩(pack)을 구입해야만 했고, 청바지의 사이즈는 24부터 32까지 1~2장씩 들어있는 12장 이상의 팩을 구입해야 하는데 한 번의 사입을 위한 비용이 최소 2000~3000달러(약 200~300만 원)까지 들어갔다.

처음 한국에서는 보통 30~40만 원의 돈으로 사입하고, 여러 벌의 코디 제품을 촬영한 후 업데이트 했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구입을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해서 자본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최소 5~10배의 돈이 업데이트할 때마다 필요로 했으며, 구입해서 다 판매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팩 중에서 1장만 판매되었다고 나머지 5장을 반품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한국여성들의 체형이 미국 여성들보다 작기 때문에 6장 제품 중에서 스몰 2장만 판매되고 나머지 미디움 2장, 라지 2장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다.

나는 스몰 두 장을 팔기 위해서 6장을 구입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며, 점점 재고만 쌓이고 있었다.

액세서리는 사입 한 번에 최소한 150달러(약 15만 원) 어치씩 구입해야 했으며, 슈즈는 225mm부터 270mm 사이즈까지 들어 있는 12족 1박스를 구입해야만 했다.

또, 의류를 비롯해 액세서리, 가방류 등에 붙어 있는 라벨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대부분이었다.

▲ 성조기 프린트의 수영복. 여름을 대비해 비치에서 셀프카메라로 촬영한 수영복 화보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그것은 당연했다.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서 간단한 티셔츠나 원피스류는 미국내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디테일이 들어간 디자인은 중국 및 남미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한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라고 적혀 있어야 미국제품이라고 인식했고, 그 외 제3국이 적혀 있으면 반품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나는 디자인은 미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고객들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했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들도 미국에서 디자인한 뒤 생산은 대부분 제3국에서 한다는 점과, 미국의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라벨지에 적힌 제조국에서 생산한다는 점을 고객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애썼다.

처음 갔을 때 영어를 못하던 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자바시장은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했고, 거기서 일하는 멕시코 출신 근로자들도 간단한 한국말을 하고 있어서 쉽게 거래처를 개척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처음 쇼핑몰을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자바시장에 가서 디자인을 고르고, LA 곳곳을 돌아다니며 거리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또 오후에는 그 전날 주문 들어온 택배를 포장하고 발송하는 시스템으로 혼자 1인 비즈니스 운영체계를 이어나갔다.

한국에 있었다면 셀프카메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다. 하지만 자유로운 그곳에서 셀프카메라로 찍는 피팅사진은 정말 재미있었다.

길거리에 사람 많은 곳에서 혼자 포즈를 취하고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다 해도 그 누구 하나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와 친근하게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타이머로 사진을 찍었지만, 리모컨을 구입해서 더 쉽고 자연스러운 피팅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름철에는 비치에 가서 혼자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으며, 파티 시즌에는 파티 원피스를 입고 할리우드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키우던 개도 함께 다니며 미국스러운 자유로운 사진을 찍었다. 점점 사진의 볼거리가 다양해지고 여러 유니크한 디자인이 많이 입고되면서 매출도 점점 늘어갔다.

▲ LA에서 키운 강아지와 처음 찍은 사진이다. 역시 셀프카메라로 촬영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하지만 풀어야 할 최대 과제가 남아 있었다. 스몰사이즈만 다 판매되다 보니 미디움, 라지의 재고를 어떻게 하면 처분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냈다.

미국에서는 통통한 여자들도 미니스커트를 잘 입고 다니는데, 한국은 통통하면 거의 루즈한 핏의 옷을 많이 선호한다.

통통한 여자들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여자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한국의 옷은 거의 단일 형태로 55사이즈에 패턴을 맞춘 옷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대문에서 제작되는 의류들은 대부분 55사이즈이고, 여자들은 조금 통통해도 55사이즈의 옷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한다.

여자는 50㎏이 넘으면 통통하고, 55사이즈보다 크게 입으면 뚱뚱하다는 남자들의 인식도 한몫했던 것 같다.

나는 66~77 사이즈 여자들도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통통족들이 입을 수 있는  예쁜 디자인의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고 광고했다.

미디움, 라지 사이즈의 옷들은 10~20%씩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했으며, 재고를 많이 소진시키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한 노력 때문이었는지, 한국에 거주하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주 또는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여성들의 구매가 이어졌으며, 점점 매출은 증가했다.

66~77 사이즈의 고객들의 구매로 인해 재고는 빠르게 소진되어 갔고, 스몰 사이즈를 구입하고 싶은 고객들을 위해 인기가 많은 제품들은 10팩이상씩 입고되었다.

그러자 자바시장의 거래처는 나에게 샘플을 제공해 주었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돈 들여 사입하지 않고 제품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신상품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높은 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나에게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려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패션 인생 스토리⑦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도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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