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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가 외설인가...재연된 '제한상영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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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가 외설인가...재연된 '제한상영가' 논란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14 0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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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국민 정서 보호 vs 창작자의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해묵은 논란이 연말 극장가의 화두로 떠올랐다.

영화 ‘헤멜’(감독 사샤 폴락)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고 재심의를 거쳐 11월 개봉이 확정됐다. 영화는 엄마 없이 자신을 기른 아빠만이 이 세상의 전부였던 소녀 헤멜(해나 혹스트라) 앞에 아빠의 애인이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 2012 베를린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네덜란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헤멜' '미조' '님포매니악'(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등위는 헤멜의 성기 일부가 노출된 장면, 목을 조르고 얼굴을 뭉개면서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섹스하는 장면, 목욕 장면 중 아버지의 성기 노출 등을 지적하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렸다. 결국 수입사 측은 장면 편집과 블러 처리를 통한 재심의 끝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앞서 올해 개봉한 거장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과 한국영화 ‘미조’ 또한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제한상영가를 받아 논란이 됐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실제 정사신 등 선정적 장면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던 ‘님포매니악’은 ‘남녀 성행위 장면에서의 신체 노출이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등 표현의 정도가 매우 높아 성인일지라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영화’라며 제한상영가를 받았고, 노골적인 성행위 부분을 블러 처리한 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미조’는 ‘부녀의 성행위가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등 일반적인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돼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정서를 현저히 손상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를 받았다.

▲ '봄'의 이유영(오른쪽)

현재 국내에는 제한상영가 전용관이 없는 만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경우, 재편집을 거치지 않으면 상영이 불가능하다. 정작 개봉할 상영관이 없는데 제한상영가 등급을 주는 건 해당 장면을 수정, 편집하고 재심의를 받으라는 암묵적 압박인 셈이다.

‘헤멜’의 수입사 AVA엔터테인먼트 측은 “영등위로부터 지적받은 장면들은 질투심으로 혼란스러운 헤멜의 심리를 표현해주고, 아빠와의 친밀한 관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임에도 반윤리적인 영상 표현 평가를 받았다”며 “한국 관객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온전히 담겨있지 못한 편집본을 보게 됐다”고 주장한다.

정지영 감독을 비롯한 대다수 영화인들은 “창작자의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영등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정해진 기준에 따르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영화인들은 ‘정해진 기준’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기준 적용마저 일관적이지 않기에 당혹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삶과 예술을 통찰해 해외 영화제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을 휩쓴 한국영화 ‘봄’은 여주인공 민경(이유영)이 조각가 준구(박용우)의 모델을 서며 헤어누드 등 전라 노출을 감행한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오는 20일 개봉된다. 개봉일이 확정되지 않은 임권택 감독의 신작 ‘화장’에서도 암투병 중인 아내(김호정)의 파격적인 전라 노출이 스크린에 담긴다.

▲ '피아노'의 하비 케이틀과 홀리 헌터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피아노’가 오는 12월24일 재개봉을 확정지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시 국내 관객과 만나는 ‘피아노’는 1993년 국내 개봉 당시 격정적 사랑을 나누는 하비 케이틀과 홀리 헌터의 전라 노출로 화제를 일으켰으나 결국 케이틀의 성기는 모자이크 처리된 채 상영됐다.

실어증 여성의 심리를 밀도 높게 묘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조연상 등을 석권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명작 ‘피아노’가 이번에는 모자이크가 아닌 오리지널 영상으로 공개될 수 있을까. 논란의 중심에 선 영등위 심의에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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