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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포트] '택시운전사'·'군함도', 만들어진 관객수? '천만영화'는 스크린수가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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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포트] '택시운전사'·'군함도', 만들어진 관객수? '천만영화'는 스크린수가 좌우한다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7.08.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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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경의중앙선 배차 간격보다 영화 '군함도' 상영이 훨씬 많다.”

SNS에서 화제를 모은 한 누리꾼의 '군함도' 스크린(상영관) 독과점에 대한 비판 글이다. '군함도'는 영화 자체가 아닌 외적인 문제로 화제를 모았다. '군함도'의 개봉일 스크린 수가 2,100개를 넘어서며 역대 최다 스크린 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국내에 있는 전체 스크린이 2,600여개, '군함도'의 개봉일 스크린 수가 2,100여 개"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는 '군함도'의 교차상영관을 포함한 스크린 숫자다. 그동안 스크린 수 2,000개는 '불문율'이었다. 아무리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한 영화여도 2,000개의 스크린 수를 넘기지는 않았다.

[사진 = 영화 '군함도' 포스터]

사실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는 '군함도'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겪곤 했다. 그렇다면 멀티플렉스와 대형 배급사의 배급 영화의 '독과점 논란'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 스크린 독과점, '도둑들'과 '명량'도?

'군함도'로 인해 재 점화됐지만 한국 영화 시장에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도둑들'의 경우 최초로 개봉 첫 주 1,300개 스크린 수를 돌파해 독과점 논란을 낳았다. '명량'의 경우 1,500개 스크린 수를 넘어서 개봉 당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명량'은 현재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인 1,700만 관객 수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 대형 영화들은 개봉 첫 주 1,000개의 스크린 수를 기본으로 여긴다. 과거에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대다수 대형 영화들이 당연한 듯 도가 넘은 상영관 수를 점유하고 있다.  '택시운전사'의 경우 개봉 첫 주 스크린 수 1,400개로 과도한 스크린 점유율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함도'의 2,100개 스크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착한 영화'(?)라는 칭찬을 얻기도 했다.

외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는 1,991여개의 상영관 수를 기록했다. '마의 숫자'인 2,0000개 스크린 수를 넘지는 않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의 독과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생겨났다. 지난 7월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 커밍' 역시 1,965개 상영관을 차지했다. 역대 국내 개봉 영화 상영관수에서도 마블 영화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처럼 이미 국내 영화계 내 스크린 독과점은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놓고 보면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던 '군함도'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일일 수 있다. 그동안 특별한 제재 없이 스크린 수를 늘려오던 배급사와 멀티플렉스들이 스크린 점유 개수 2,000개가 넘는 '괴물 영화'들을 탄생시켰다는 주장이다.

# 해외의 경우는? 배급사가 영화관 못 가져… 대형 영화도 스크린 점유율 30% 이하

1,900여개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비판을 받은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사진 = '스파이더맨 홈커밍',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포스터]

국내 영화 시장에서 독과점 논란이 유독 잦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영화 시장의 구조 탓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대형 멀티플렉스인 CGV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같은 경우에도 롯데시네마를 보유하고 있다. 멀티플렉스들이 자사 배급사의 영화에 더 많은 상영관을 내준다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과거 유명 영화 배급사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배급사가 극장을 가질 수 없는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큰 영화라고 해도 30% 이하의 스크린 점유율에 그칠 뿐이다. 

물론 세계 제 1의 영화 시장 규모인 미국과 내수 시장이 작은 한국의 경우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한국 영화 시장이 최근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멀티플렉스들의 확장으로 영화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인구 6,000만 국가인 한국에서 1,000만 영화가 이토록 많다는 것은 독과점이 빚어낸 씁쓸한 초상이라는 분석 또한 있다. 관객 스스로가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닌 배급사와 영화관이 일방적으로 걸어놓는 영화들을 관객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스크린 독과점에 작은 영화들은 '울상', 관객의 영화 선택권 침해해

몇몇 영화들의 상영관 독과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이유는 영화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대형 영화가 아닌 소규모 예술영화·독립영화의 경우에는 멀티플렉스에서 거의 상영관을 내주지 않는다. 예술영화 전용 영화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형편이다.

한국 영화계에 '천만 관객 시대'가 열린지는 오래라지만 독립·예술영화 시장은 그렇지 않다. 독립영화계에서는 "1만 관객이면 대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영화인들 역시 작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작으로 호평받은 '플립'은 적은 상영관 수로 영화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사진 = 영화 '플립' 스틸컷]

실제 '군함도', '택시운전사'와 조금 이른 시기 개봉한 영화 '플립'은 7년 만의 국내 개봉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2010년 북미 개봉한 영화 '플립'은 영화 팬들 사이에 '꼭 봐야 할 인생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런 팬들의 성원에 뒤늦게 2017년에 개봉했다.

그러나 '플립'에 대한 영화 팬들의 관심과는 다르게 상영관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에 사는 관객들의 경우 '플립'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원정을 와야 하는 판국이다. 영화 '재꽃' 역시 충무로의 기대주 정하담의 주연 작품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적은 상영관 수로 높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지 못했다.

#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행태, 영화 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지양돼야!

스크린 독과점 문제의 본질은 국내 영화 시장의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영화계에 르네상스를 불러왔던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영화를 극장가에서 볼 수 있던 당시의 환경과 맞아떨어진다. 당시에는 외화의 한국영화 시장 점령을 막기 위한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을 정도로 영화 시장 내의 생태계 보호에 정부 역시 적극적이었다.

몇몇 영화 팬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극장가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법적 제재와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을 제한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영화 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영화들이 유수한 국제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스크린 독과점, 편중된 장르 등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극장가에서 '쌍끌이 흥행'을 하고 있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이 같은 순항이 스크린 독과점 덕택이라는 비판에 부딪히며 '천만 영화'라는 수식어 뒤에 숨어있는 한국 영화 시장의 짙은 그늘을 조명하고 있다. '군함도'의 감독 류승완은 "'군함도' 이후 영화들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기비판적인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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