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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④ '천의 얼굴' 배우 강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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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④ '천의 얼굴' 배우 강봉성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2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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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독립영화계 스타 강봉성(25)은 길지 않은 연기 경력에도 카멜레온과 같은 얼굴로 스크린을 빛낸다. 미역만 먹고 살을 뺀 어리바리한 외골수 대학생 창호(족구왕), 가출 소녀를 감금하고 성매매를 시키는 17세 소년 태성(들꽃), 여동생의 죽음 이후 무너져가는 불량기 많은 고교생 성필(못)은 한 배우가 맞을까 싶을 정도다.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받는 영광을 누린,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를 지난 18일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네 친구의 비밀 담은 독립영화 '못'에서 뜨거운 에너지 발산

11월20일 개봉한 ‘못’은 비밀을 간직한 네 친구의 이야기다. 현명, 성필, 두용, 건우는 10대 마지막 겨울방학과 성필의 여동생 경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아지트인 못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도중 마을에 잠깐 다녀오기로 한 경미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건 이후 건우는 실종되고, 나머지 세 친구들 역시 졸업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다. 4년 뒤 고향에서 재회한 현명, 성필, 두용은 잊고 싶었던 그날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못’에는 앞으로 주목해서봐야 할 젊은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호효훈, 변준석, 이바울, 김원희 등 앞으로 주목해서 봐야 할 젊은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이 가운데 강봉성의 뜨거운 에너지 발산이 두드러진다.

“엄청난 사건을 목격하고 친구들과 비밀을 공유한 채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일지,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고민이었어요. 드러내도 안 되고 너무 감춰도 안 되니까. ‘여동생이 죽었으니까’란 단서가 관객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지길 원했어요. 그래야 성필의 행동이 설득력 있을 테니까요. 관객께서 성필을 아주 나쁘게 보지는 않는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반면 너무 감성에 젖은 모습만 부각된 건 아쉬워요. 냉정하고 이성적인 면이 드러났다면 좀 더 인간적이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원래 성필 캐릭터는 더 악역이었다. 학교 친구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가하고 ‘삥’을 뜯기도 한다. 강봉성은 캐스팅된 이후 서호빈 감독에게 장문의 e-메일을 보냈다. 너무 단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다 다른 친구들 캐릭터도 죽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을 담았다. 감독은 선뜻 이를 받아들였다. 대신 ‘최후엔 가장 악인으로 남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여동생의 죽음 이후 성필이 점차 무너져가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정확히 이해해야 경미의 죽음, 비밀을 공유하는 연기가 가능하겠다 싶어서였죠. 영화 초반 여동생에 대한 오빠로서의 표현도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묻어나게만 하자고 설정했고요. 감독님이 제 의견을 잘 받아들여줘서 성필 캐릭터가 풍성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성필을 연기하면서 너무 우울했어요. 체중이 한 달 사이에 8kg이나 빠졌거든요”

◆ 화제작 '족구왕'의 어리바리 창호 캐릭터와 180도 달라 

올해 독립영화 화제작인 ‘족구왕’과는 여러모로 정반대였다. 두 영화 모두 청춘의 성장기를 다뤘지만 로맨스와 코미디가 흥건한 ‘족구왕’의 경우 주연배우 안재홍과 서로 웃음을 참아가며 연기했다면 어두운 톤의 ‘못’은 슬픔을 견뎌내며 연기해야 했다.

“두 캐릭터에 제 내면을 담아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죠. 창호는 중학교 시절 수학 말고는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않는 친구를 모티프 삼았어요. 무표정한 모습은 멍 때릴 때의 제 모습을 투영시켰고요. 저도 뭔가에 집중할 때면 다른 데 신경을 전혀 쓰질 않거든요. 성필은 저와 흡사한 면이 많아요. 친구들을 리드하고 감성적인 면이라든가 형에 대한 애정이 큰 점 등이 그래요. 연기할 때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보다 최대한 제가 가진 모습을 반영하려고 해요.”

과거 단편영화를 촬영할 당시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하다보니 연기가 기계적으로 나왔던 경험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연기를 다소 못하더라도 자신이 출연하는 장면의 대사는 확실히 이해한 뒤 하자고 다짐했다. 감독과 많이 얘기를 나누다보면 자신과 배역의 맞닿은 면을 찾아낼 수 있음도 깨달았다. 여기에 쌍꺼풀 없는 동양적 마스크는 헤어스타일 하나만 바꿔도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보이게끔 한다는 것도 간파했다.

 

◆ 형 강도용 따라 안양예고-한예종 입학…용준형·이제훈이 동기 

충북 진천 태생인 강봉성에게 있어 친형인 배우이자 개그맨 강도용은 늘 영감의 원천이다. 형이 안양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입시에 떨어진 뒤 그곳에 진학했다. 안양예고 동기는 인기그룹 비스트의 용준형이다. 한예종 동기는 배우 이제훈이다. 요즘 맹활약하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변요한을 비롯해 박정민, 김고은, 이유영은 과 후배들이다.

“형은 제게 이런저런 것들을 조언해주고 대리만족을 느껴요. 평소엔 연기 얘기를 주로 나눠요. 심심하면 영화 보러 다니고 절친과 같은 사이에요. 각자의 연기를 평가해주고 깊게 공유하곤 하죠. 늘 고맙죠.”

한예종 시절 연극 ‘루트64’ ‘밤으로의 긴 여로’ ‘인류 최초의 키스’에 출연하며 연기력과 현장 감각을 연마했다. 그러던 중 휴학을 하고 단편영화 출연을 위해 무작정 지방 곳곳을 전전했다. 공주의 찜질방에서 자면서 기회를 노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영화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연극만 할 땐 몰랐던 영상연기를 알게 됐고 단편, 장편, 독립영화를 하면서 성장했어요.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죠. 무엇보다 좋은 감독님과 배우들을 만났다는 게 가장 큰 자산이죠. 독립영화가 좋아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계속 하려고요. 자본과 관객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 비해 더욱 뚝심 있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상업영화도 잘 해내고 싶지만 독립영화의 자유롭고 비타협적인 작업방식이 매력적이에요. 흔치 않은 기회니까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 "배우로서 자리잡은 뒤 고향인 연극무대 다시 서고파" 

연이어 고등학생 역할을 맡았다. 다소 민망한 눈치다. ‘들꽃’의 박석영 감독으로부터 “이게 당신의 마지막 청춘영화가 될 테니 원 없이 해보라”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이젠 본격적인 성인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뒤 여유가 생겼을 때 연기의 출발점이었던 연극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영상예술과 무대예술은 연기결이 너무 달라서 아직은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에요. 무대에 서는 순간 만큼은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서 희열을 느끼고, 영화는 오래 남아서 좋은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형과도 공연해보고 싶어요.”

이달 중 촬영에 들어가는 MBC 새 드라마 ‘킬 미 힐 미’에서 의사인 여주인공 팀 내 레지던트 역할을 맡아 관련 서적 탐독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드라마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얼마 전에는 배우에 대한 꿈을 접고 보험회사에 입사한 친구를 위해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탈고, 친구와 함께 출연함으로써 추억 어린 선물을 해줬다.

 

[취재후기] 새로운 캐릭터를 맡으면 청량리 영풍문고로 달려가 독서에 탐닉한다. 평소엔 철학, 인문학 서적을 많이 본다.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근엔 강신주 교수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세계 문학을 묶어서 인간적인 부분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서술해 놓은 이 책의 ‘평가에 앞선 이해의 중요성’이란 주제가 마음을 움직였다. “배우에게 좋은 책이더라고요. 캐릭터가 다 좋을 순 없잖아요. 그럼에도 배우는 캐릭터를 먼저 이해해야 하니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잘 사는 배우가 연기도 잘 하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배우의 연기 질감은 풍성할 수밖에 없다. 젊은 배우가 영특하게도 그 논리를 꿰뚫고 있는 듯 보였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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