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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⑧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런웨이 모델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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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⑧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런웨이 모델 데뷔!)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1.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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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2009년, 런웨이 모델의 꿈을 키우며 나의 하루 일과는 운동 후 구글링으로 모델 구인 광고를 찾는 일이었다.

모델을 구한다는 곳 수십 군데에 이메일로 프로필 사진을 보내 오디션에 지원했다. 프로필 사진은 쇼핑몰 운영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한국에서 잡지모델을 한 사진들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 LA에서 포토그래퍼들과 작업한 내 초상 사진이다. 벌키한 상의와 스키니 진, 내추럴한 헤어, 플로피 햇으로 자유분방한 포즈를 연출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에이전시 소속 모델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품 팔아서 오디션을 보고 일을 따는 수밖에 없었다.

모델의 신체 사이즈와 사진을 인쇄한 컴포지트 카드를 오디션이 끝난 후 디자이너에게 제출해야 하는데, 사진 전공과 쇼핑몰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포토샵을 직접 해 만들 수 있었다.

모델들이 오디션에 들고 가야 하는 ‘포트폴리오 북’은 잡지모델을 했던 자료들로 채워 넣었다.

내 키는 런웨이 모델을 하기에 작다는 결점을 알고 있었기에 할리우드에서 최대한 높은 하이힐을 구입해서 신고 다녔고, 여러 켤레의 하이힐을 각 디자이너의 쇼에 맞게 리폼해서 착용하기도 했다.

일단 1차 프로필 심사를 통과해야 2차 실물 오디션 기회가 주워지므로 프로필상의 키는 좀 크게 기재했다.

나의 영문 이름은 ‘SUN YOUNG BAE’ 인데, 미국에서는 ‘SUN BAE’ 라고 부른다. ‘SUN’이라는 흔한 이름이 싫어서 ‘BAE’를 소리나는 그대로 ‘BA-E 바에’ 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집에서 워킹과 포즈 연습을 매일 하면서 런웨이에 설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준비했다. 오디션을 여러 번 본 후 드디어 첫 캐스팅이 되었다.

첫 런웨이 쇼에 섰다.

여러 가수들의 공연이 있었고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쇼가 이어지는 행사였다. 첫 쇼인 만큼 긴장도 되었지만 프로페셔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최선을 다했다.

▲ LA에서 포토그래퍼들과 작업한 또 한 장의 초상 사진이다. 부시시한 헤어와 표정없는 얼굴, 블랙 톤의 피부, 그리고 소매 없는 화이트 플리츠 원피스로 슬림하고 강인한 인상을 연출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함께 무대에 선 모델들과 백스테이지 사진도 찍으며 그날은 정말 행복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돈으로 받은 모델료는 없었지만, 정식으로 오디션을 본 후 서게 된 나의 데뷔 무대였고 너무 행복했다.

‘런웨이 모델로서,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구나….’

하늘에 감사했다.

두 번째 런웨이 쇼 일정이 잡혔다. LA에 있는 ‘리틀도쿄’ 에서 해마다 열리는 일본인들의 축제였다. 큰 런웨이 쇼였으나, 무대에 선 대가는 그 쇼에 참여했던 일본 디자이너들의 의류들이었다.

쇼를 기획하는 회사에서 나에게 물었다.

“바에, 당신은 한국에서의 경력이 많은 모델인데 혹시 잘못 알고 오디션을 지원한 것 아닌가요? 이 쇼는 페이(모델료)가 디자이너들의 제품으로 지급 됩니다.”

그 쇼 기획자는 내가 오디션 지원을 잘못했을 거라 추측했다. 여러 경력이 있음에도 왜 페이가 없는 쇼에 서려고 하는지 말이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돈을 벌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런웨이 쇼에 서고 싶다는 그 꿈의 목마름 밖에 없었다.

나는 페이가 없는 런웨이 쇼를 어러번 서게 되면서 ‘나도 할 수 있다’ 는 희망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아직 꿈을 향해 달려가기에 늦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요즘 흔히 취업준비생들이 말하는 '열정페이'로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LA는 할리우드와 베벌리 힐스가 있어서, 세계적인 스타들과 부유층들이 있고  LA만의 자유롭고 독특한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디자이너들은 패션위크 기간 외에도 갤러리나 자신의 쇼룸에서 작은 런웨이 쇼를 열었고,  모델들을 많이 고용했다.

▲ 베벌리 힐스에서 열린 기부행사 패션쇼의 백스테이지 모습이다. 처음 만난 모델들이었지만 오랜 친구처럼 금세 친근함을 느꼈다. 참가자들은 이날 우리가 입었던 드레스를 1~2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고 구매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여러 쇼에 서게 되면서 그 쇼의 경력을 바탕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의 쇼에 지원해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의 패션쇼나 스틸 촬영으로 인맥을 맺은 디자이너 및 포토그래퍼들은 그 다음 기회가 있으면 꼭 오디션에 참여하라고 알려주곤 했다.

LA에서 런웨이 모델을 시작할 때부터 페이스북에 런웨이 사진 및 백스테이지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쇼마다 만나는 모델들, 디자이너들과 SNS 인맥을 형성해 자주 안부를 묻고 교류했다.

모델들은 다른 쇼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고, 같은 꿈을 향해 한 발씩 같이 나아가고 있다는 공통점은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었다.

아직도 그때 그 시절 모델들과 함께 찍은 백스테이지 사진을 보면,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가진 친구들과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LA에서 런웨이 모델 활동을 하면서, '디자이너들이 참 건강한 모델을 고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는 모델이라면 키 크고 마른 체형의 소유자를 떠올리지만, LA에서는 마른 체형 보다는 조금 통통해도 탄력 있고 건강한 체형의 모델을 선호한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따뜻함과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들도 자유로운 마인드였으며, 딱딱한 워킹보다 옷의 느낌을 살려주기를 원했다.

▲ 베벌리 힐스에서 열린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또 다른 사진이다. 이날 나는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가장 높은 하이힐을 신었다. 난생처음 미국 상류사회의 화려한 저택과 기부 문화를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우리나라는 모델이 되고 싶으면, 모델학원이나 모델학과에 입학해서 워킹과 여러 수업을 받은 후 시작을 하지만, 미국은 워킹을 전문적으로 배운 모델들이 없을 정도로 스왜그(SWAG, 젊은이들의 멋, 일명 '간지')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

모델들마다 개성이 특이해서 옷을 입혀주는 디자이너들도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할 때 ‘긴머리를 유지하고 타투를 하지 말아라’라는 틀에 맞춰야만 했다. 그래야만 무난하게 여러 콘셉트의 모델을 다 할 수 있다고 배웠다.

맞는 말이다. 튀는 모델보다 무난한 평균 모델이면 여러 콘셉트의 오디션을 볼 수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색깔이 없어져 대중들에게 쉽게 기억 되지도 않았다.

LA에서는 모델들이 여러 인종이므로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나와 비슷한 개성을 가진 모델들은 없었다.

연기자의 꿈을 향해 할리우드로 달려가고 있는 공주님 같은 예쁜 모델도 있었고, 새하얀 피부의 빨강머리 주근깨 소녀, 흑인처럼 생겼지만 새하얀 피부의 백반증 모델, 곱슬머리라서 폭탄머리인 흑인 소녀 모델, 타투 투성이인 미모의 삭발 백인 여자모델 등등….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모델 친구들이 많았다.

할리우드에는 영화의 본고장인 만큼 유명 스타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레드 카펫 이벤트도 많아서 화려한 드레스 디자이너들도 많이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여자 스타들이 즐겨 입는다는 드레스 숍에서 모델 오디션이 있었는데, 여러 드레스를 피팅한 후 모델로 선발이 되었다. 베벌리 힐스의 산 꼭대기에 있는 넓은 저택에서 열린 쇼였다.

그 쇼는 해마다 베벌리 힐스에서 열리는 자선기부 행사로, 알코올과 마약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을 위해 수많은 스타들과 유명 인사들이 기부를 하는 행사였다.

저택의 대문 앞에는 보안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저택으로 들어서니 놀이공원에서 보던 공중 관람차가 돌아가고 있었으며, 저택의 앞마당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넓은 수영장이 두 개나 있었다.

▲ LA 패션위크 백스테이지 모습이다. 모델들은 다민족 국가인 미국을 상징하듯 다양한 피부색깔과 외모를 지니고 있다. 당시 나는 발머리 가발과 화려한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준 메이크업을 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화장실을 찾아 다니던 중 잘못 들어선 건물에서는 온갖 슈퍼카들이 세워져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곳이었다.

호텔에서 초빙된 셰프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큰 캠핑카 안에는 모델들을 위한 할리우드의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디자이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초대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비롯해 스타들, 갑부들이 레드 카펫에 들어서고 포토타임을 가질 때 나를 비롯한 모델들은 쇼를 앞두고 분주했다.

나는 두 가지의 드레스를 착용했는데 가장 키가 작아서 가장 높은 하이힐을 준비했고, 무겁고 긴 드레스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런웨이 쇼 후 유명 인사들은 모델들이 입고 나온 드레스를 1~2만 달러(약 1000~2000만 원대)에 구입하며 기부를 했다.

미국에서 여러 런웨이 쇼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모델에 대한 행사 측의 세심한 배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런웨이 쇼가 있기 전 하루 종일 여러 번의 리허설을 거치고, 끼니뿐만 아니라 페이와 여러 면에서 모델 대우를 잘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런웨이 쇼가 시작되기 최소한의 시간 전에 한 번의 리허설만을 갖고, 모델들의 식단을 고려해 샐러드와 과일 등 골라먹을 수 있는 뷔페를 제공해 준다.

또한 페이도 한국과 다르게 상업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만큼 대우를 잘 해준다.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내 주변 모델 후배들을 보면, 3~4개월 전 런웨이에 섰던 페이도 못받는 경우가 다반사고, 리허설은 새벽부터 시작되며 식사는 도시락으로 때운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뉴욕으로 꿈을 향해 떠나는 후배가 있다. 나는 내가 겪은 과정들을 조언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하는데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샘이 난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크고…. 지금 당장 뉴욕으로 도전하러 떠나는 후배를 보면서 나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패션 인생 스토리⑦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도 함께 보세요^^

패션 인생 스토리⑨ 결핍이 있기에 성장한다 도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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