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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세' 문정희 "생활·코믹연기 첫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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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세' 문정희 "생활·코믹연기 첫 도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2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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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배우 문정희(38)가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아니 올 한해가 바빴다. 독립영화 ‘60만번의 트라이’ 내레이션, 드라마 ‘마마’ 그리고 2편의 영화 개봉. 하지만 여유가 넘친다. 차분한 성정 덕분일까. 관조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서일까. 이른 아침 삼청동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했다. 잘 내린 커피향이 은은했다.

1주일 간격으로 영화를 출산했다. 13일엔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룬 ‘카트’(감독 부지영), 20일엔 휴먼코미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감독 김덕수)이다. ‘카트’는 외화 ‘인터스텔라’ 열풍 속에서도 사회 각계각층에 파장을 일으키며 70만명을 모으고 있다. ‘아빠...’ 역시 힘겨운 결전을 치르는 중이다. 스크린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카트’에서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계산원이자 싱글맘 혜미를, ‘아빠...’에선 서울대 출신의 백수 남편 태만(김상경)을 둔 생활력 강한 슈퍼맘 미용사 지수를 연기했다. 공통점은 가족을 위해 억척스레 일하는 엄마다.

▲ 주말마다 쑥쑥 관객 수를 찍었던 영화 ‘연가시’와 ‘숨바꼭질’ 때가 좋았던 거구나, 흔한 일이 아니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많은 분들이 ‘카트’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그들의 뜨거운 진심이 느껴져 행복하다.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에 공감을 형성한 분들이 많음을 확인했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이 시대 아빠의 이야기이자 가족 이야기인데 부모로 인해 우리가 위로받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올해를 가볍고 따뜻한 영화로 마무리해서 행복하다. 한편으론 두 영화가 이렇게 같이 걸려도 좋은 걸까 싶다. 다른 장르이며 색깔이 다르긴 해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다다익선이면 좋은데. 한국영화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김상경이 코미디 연기를 주로 구사하는데 문정희 배우는 현실감 있는 연기로 무게중심을 잡으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간간히 터뜨려 신선하다.

▲ ‘숨바꼭질’을 마친 뒤 “한 번 쉬어가자” 싶어서 가볍고 따뜻하고, 관객이 봤을 때 힘들지 않은 작품을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상경 오빠의 이미지가 진중했는데 그런 코믹한 모습이 의외였고, 나 역시 생활연기와 코믹한 요소는 새로웠다. 코믹함과 현실성의 밸런스를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안했던 장르를 선택해서 신선했던 것 같다. 또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완성도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 가정에서 아빠가 돈벌어 오는 사람으로만 인식되는 시대에 가족의 중요성을 다룬 홍부용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원작을 읽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의아해한 적이 있다.

▲ 소설에서 다룬 부성은 엉뚱함에도 큰 울림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경우 연기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원작을 읽지 않는다. 방영되는 자신의 드라마를 보지 않을 때와 마찬가지다. 나도 ‘마마’를 찍을 때 아예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이번엔 아이디어를 궁리하는 차원에서 부담 없이 원작을 읽었다. 소설에 비해 영화가 요소요소에 귀여움을 잘 살려내면서 닭살스러운 부분은 좀 덜어냈고, 가족애를 부각시켰다.

- '나의 독재자’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국제시장’ 등 요즘 한국영화가 아버지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의 방증이 아닐까 싶다.

▲ ‘아빠’ 하면 가장이자 돈 벌어오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영화 속 태만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아빠다. 한편으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아빠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듯싶다.(웃음) 아버지는 존재만으로도 따뜻하고 힘을 준다. 어찌 보면 남자들이 불쌍하다. 나이 들면 아빠 역할을 강요당하고,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기본 역할을 하지 못해도 아빠는 아빠다. 나의 경우도 나이가 드니 아빠랑 더 친해졌다. 보통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서먹서먹해졌다가 성인이 되면 다시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나. 짠한 감정이 밀려들고. 아버지가 늘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맙다. 영화에서 딸 아영(최다인)이 태만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때 눈물이 났다. 가족의 역할보다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가족끼리 보기 좋은 연말 영화다.

 

- 실제 남편이 극중 태만처럼 바깥일을 작파한 뒤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을 전담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 난 오케이다. 대부분 남자들이 직장에 15~20년 이상 다니기 힘들지 않나. 태만과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나라면 “그래 쉬어, 젊음과 인생도 짧은데 내가 벌면 되니까”라고 말할 거다. 역지사지로 내가 인기가 떨어져서 놀고 있을 때 남편이 “넌 그 좋은 직업 두고 왜 일을 안해?”라고 한다면 섭섭하지 않겠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안아줘야 하지 않을까. 지수는 미용실 임대료 인상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남편에게 말하지 않는다. 짐 지우기, 기죽이기 싫어서 그런 거다. 나 역시 그래서 지수 캐릭터에 동의가 됐다.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남편과 일하는 아내 조합은 선입견에만 휘둘리지 않는다면, 사회적 시선과 싸울 수만 있다면 좋다. 서로 보완해주며 행복하면 되지 않나.

- 극중 직업이 미용사라 준비한 부분도 있겠다.

▲ 고데와 파마, 커트 등의 미용기술은 단골 미용실 선생님한테 1개월 정도 배웠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머리를 해주는 장면은 직접 했다.

- 김상경과는 첫 호흡이다.

▲ 오빠가 워낙 상대 배우가 불편해하는 걸 못 본다. 어떻게든 상대의 에너지를 끌어 올려준다. 여배우에 대한 배려심도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런 덕분에 지수가 남편 앞에서 방귀를 트는 장면이나 침대장면은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너무 고맙다. 능구렁이 같은 태만을 내공있는 연기로 소화했다. 전에 봤던 에너지와 너무 달라서 더욱 좋았다.

 

- 예능프로 ‘택시’에 출연했을 때 ‘프랑스 유학 2년’ 사실이 공개돼 궁금했다. 연기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났던 건가?

▲ 소리 체계에 끌렸다. 캐릭터에 따라 호흡과 발성,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잘 들리게끔 하는 테크닉이 필요한데 국내에선 이를 전문적으로 트레이닝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닐 땐 교수님한테 이를 배웠는데 졸업하고 나니 더 이상 배울 데가 없었다. 배우들을 위한 보컬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다. 특히 노래와 판소리를 공부해보니까 후두에서 나오는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 소리는 굉장히 멀리 나간다. 유학 가서 프랑스어 공부만 하다가 도중에 연기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져 그냥 돌아왔다.

- 한예종 연극원 1기다. 요즘 영화계에서 맹활약하는 신진 배우군단(변요한 박정민 김고은 한예리 임지연 이유영 박소담)이 모두 후배들이다. 원년 멤버라 프런티어 정신이 대단했을 것 같다.

▲ 독보적인 커리큘럼과 내실을 철저히 꾀하는 학교다. 학생들이 ‘호흡은 자극과 감정에 대한 들이쉼’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근육을 인식하며 4년 내내 사는 학교는 거기밖에 없다. 동기들과 함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인문학적 물음을 쏟아내며 캠퍼스 생활을 했다. 당시의 배움과 물음이 졸업 후 연기활동을 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줬다. 학교에서 배운 걸로 지금까지 버텨오는 거다. 요즘 좋은 후배 연기자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입학 때부터 개성과 매력, 눈 뒤의 내면을 보고 발탁한 뒤 탄탄한 커리큘럼을 통해 온전한 배우로 성장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 동기인 장동건, 이선균, 오만석은 당시 어땠나.

▲ 동건 오빠는 정말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중퇴한 게 안타깝지만 우리 모두 오빠의 상황을 이해했고, 선택을 격려해줬다. 만석이와는 같은 A반, 선균이는 B반이었다. 만석인 학창시절에도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와 끼를 발산했다. 선균이는 예민하고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파고들어가는 집중력이 뛰어난 친구였다. 그들은 지금 내게 단순한 동료 배우가 아니라 ‘동지’다. 서로에게 위안을 받고 힘을 얻는다. 후후.

[취재후기] 무한 긍정의 에너자이저인줄 알았는데 뜻밖에 여고생 시절엔 염세적인 아이였다고 해서 의외. 삶을 달갑지 않게, 공부를 유치하게 바라봤다. 연기를 하면서야 힐링이 됐고 사람이 됐다. 그런 모든 과정이 지금의 ‘배우 문정희’를 만든 자양분이 된 듯하다. 화술이 너무 좋은 것과 아울러 논리가 똑 부러지는 배우다. 김상경은 이런 재능을 썩히기 아까우니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하라고 권유했단다. 지난해부터 모교 한예종에서 ‘오디션 클래스’ 강의를 하고 있으니 ‘재능’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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