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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수식어 무게, 이승엽이기에 극복 가능했다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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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수식어 무게, 이승엽이기에 극복 가능했다 [SQ포커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10.04 0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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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승엽, 이제는 말할 수 있다…"유명인으로 사는 게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다"

[대구=스포츠Q(큐) 글 이세영 기자‧사진 주현희 기자] “유명인으로 사는 것이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다.”

천하의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도 ‘국민타자’라는 수식어 앞에서는 부담감이 많았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타자이기에 영광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따랐다. 방송인 유재석이 ‘국민 MC’라는 칭호를 얻은 후 더 모범적인 삶은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이승엽이 3일 대구 넥센전에서 1회말 투런 홈런을 친 뒤 베이스를 돌고 있다. 이날 연타석 홈런을 친 그는 팀의 10-9 승리에 일조했다.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은퇴식을 마친 이승엽은 국민타자로 사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말 힘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승엽의 이름 앞에 국민타자라는 말이 붙은 건 KBO리그(프로야구)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을 친 1999년 무렵이다. 당시 기록적인 홈런 행진을 이어간 이승엽은 54홈런을 쳐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지는 못했지만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이 같은 수식어를 얻었다.

20여 년 전을 떠올린 이승엽은 “정말 힘들었다. 프로야구 선수는 공인은 아니지만 유명인이다. 유명인으로 사는 게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다. ‘국민타자’라는 단어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정말 기분 좋고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민타자로서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

▲ 이승엽(오른쪽)이 3일 은퇴식에서 아내 이송정 씨(가운데)를 다독이고 있다.

보통의 선수라면 이런 상황에서 심리적인 압박감이 밀려와 야구가 잘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승엽은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과 싸움을 이겨냈다. 타격이 잘 되지 않을 땐 경기가 끝나고 실내 연습장에서 새벽까지 배트를 휘둘렀으며, 타격폼을 바꾸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기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시도하려 애썼다.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술과 담배, 탄산음료 등을 멀리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2002년까지 6년 연속 30홈런을 때린 이승엽은 2003년 마침내 56홈런을 때리며 당시 아시아 최다 기록인 55홈런을 넘어섰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홈런으로 아시아 ‘톱’이 된 것. 한국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그는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다.

이승엽은 “국민타자라는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이 수식어가 나를 성장으로 이끌고 성숙하게 했다”고 별명을 지어준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이승엽이 은퇴식에서 고별사를 전하고 있다.

한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만약 이승엽이 멘탈이 약했다면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기에 국민타자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프로 선수로 뛰며 단 한순간도 만족하지 않은 이승엽의 모습은 프로야구에서 최고를 꿈꾸는 많은 어린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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