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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대표팀, 평창 그 너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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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대표팀, 평창 그 너머를 바라본다
  • 권대순 기자
  • 승인 2014.03.07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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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홀든 코치, 김영오 감독, 골리 신소정이 말하는 또 다른 목표

[300자 Tip!] 딘 홀든(53 캐나다) 코치·김영오(42) 감독·골리 신소정(24).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대표팀의 이들 세 명의 지향점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염원인 평창올림픽 뿐 아니라 그 이상을 바라보는 목표다. 지난 3일 선진 아이스하키를 전수하러 온 캐나다의 홀든 코치는 다음달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까지만 대표팀을 지휘하지만, 향후 평가에 따라 평창올림픽까지 팀을 맡을 수도 있다.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전승 우승으로 이끈 김영오 감독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한국 여자아이스하키의 올림픽 이후 플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캐나다 1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대표팀의 ‘에이스’ 신소정은 최초의 캐나다 여자 프로하키리그(CWHL) 진출을 꿈꾸고 있다.

[태릉=스포츠Q 글 권대순 기자 ·사진 최대성 기자] 안근영의 사진 한 장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화제에 올랐지만, 선수들과 코치진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난 6일 태릉실내빙상장에서 훈련준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당장 9일부터 중국 하얼빈에서 아시아챌린지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9일 중국전, 10일 호주전, 12일 북한전을 치른다. 이어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오는 26일 다시 독일로 출국한다.

▲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3월 아시아챌린지컵, 4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사진은 대표팀 오른쪽 윙으로 활약하는 유망주 최지연(16).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는 지난 12월부터 실시해온 합숙의 결과를 타진하는 대회다. 지난 해 전승우승으로 승격한 한국대표팀은 올해 디비전 2 그룹A에 속해 경기한다. 현실적인 목표는 그룹A 잔류다.

이 모든 일정은 모두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든 선수들과 코치진은 동계 올림픽 출전과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훈련 또 훈련에 매진이다.

하지만 모두가 평창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스하키는 평창을 끝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딘 홀든 코치, 김영오 감독, 신소정은 평창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이스하키의 히딩크가 되고 싶다 - 딘 홀든

▲ 경력이 화려한 딘 홀든 코치. 1994~1995년, 1998년 캐나다 남자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했다.

딘 홀든 코치는 경력이 화려하다. 1986년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1994~1995년 톰레니(현 NHL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코치) 감독을 도와 캐나다대표팀 코치로 활약했다. 1998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앤디 머레이(현 NCAA 웨스트미시건대 감독) 감독이 이끄는 캐나다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캘거리대학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3년간 이끌었다.

그런 그가 아이스하키 볼모지나 다름 없는 한국을 찾은 이유는 뭘까.

“한국에 오기 전 일본 프로팀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프로팀은 한 경기 한 경기 살얼음판을 걷는다. 반면 대표팀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성장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제의가 왔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

이어 그는 “자국이든 타국이든 국가대표팀을 맡는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다. 흔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며 한국 대표팀에 인스트럭터로 합류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그가 평창올림픽까지 팀을 맡을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의 계약은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는 다음달13일까지다. 지난 3일 한국대표팀에 합류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여. 가시적인 결과를 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 슛 훈련을 하고 있는 여자대표팀. 딘 홀든 코치는 단지 한국 아이스하키의 성장은 평창올림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쭉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선수들을 바꿀 수는 없다. 기본적인 것들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생각하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선수들이 ‘왜 우리가 이 훈련을 하고 있지?’하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서는 세계선수권이 끝난 후 그와 올림픽까지 함께 갈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홀든 코치는 만약 연장계약이 된다면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성장시킬 것인지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에 집중하고, 경기를 이해할 수 있고,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대표선수들로 키워야 한다. 코치가 선수에게 소리를 지르고 지시를 하면 선수들이 코치에게 의존하게 된다.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수들의 훈련 규칙과 방식을 정해줄 뿐이다. 선수는 직접 경기를 통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다. 경기가 최고의 가르침이다”

▲ 딘 홀든 코치는 "코치는 입을 닫고 있어햐 한다"고 말했다. 코치는 훈련에 있어 중요한 규칙들만 설명해줄 뿐 나머지는 선수들이 알아서 생각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힐든 코치는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는 4년 후, 아니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많은 한국 선수들과 코치들이 나로 인해 배우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떠났을 때 그들이 내 자리를 메우고, 계속해서 한국 아이스하키가 성장했으면 좋겠다. 캐나다(등록선수 65만 명·인구 3200만 명) 와 비교 했을 때 한국의 등록 선수 숫자(203명·인구 4800만 명)는 말도 안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아이스하키 프로젝트는 올림픽까지 4년을 보고 계획됐지만 사실 성장에는 끝이 없다. 한국 아이스하키가 20세, 18세 이하 팀 등이 생겨 꾸준히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 “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연상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인 거스 히딩크(68) 감독.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여러 방면에서 성장했다. 히딩크가 가져온 선진 축구문화는 월드컵 4강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힐든 코치에게 히딩크의 얘기를 전하며 아이스하키계의 히딩크가 되어보라는 덕담을 전했다. 그 역시 매우 좋아하면서 “올림픽까지 가게 되다면, 나도 올림픽을 앞두고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라고 말하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 열악한 인프라 개선되야 - 김영오 감독

▲ 지난 3년간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지난해 한국을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A로 승격시킨 김영오 감독.

한국은 지난해 스페인 세계선수권 디비전 2 그룹B에서 전승 우승을 달성, 디비전2 그룹A로 승격했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성과다. 한국대표팀이 공식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한 것은 불과 2011년. 이듬해 폴란드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전에서 전패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을 달성하며 여자 아이스하키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랭킹도 지난해 28위에서 24위로 4계단 상승했다. 그 중심에는 팀을 3년 째 이끌어온 김영오 감독이 있었다.

“올림픽 예선전에서 유럽 팀들을 상대하면서 아쉽게 진 경기들이 많았다.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것에 우리가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다. 그때의 자신감과 경기 경험이 어우러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궈낸 우승. 그 비결은 바로 혹독한 훈련이었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12월부터 4월까지 합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4월 세계선수권대회에 맞춘 훈련 일정이다. 우리가 힘에서는 외국 선수들에 밀리지만 체력에서만큼은 밀리지 않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우승을 통해 세계와의 격차가 그렇게 크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이어 김 감독은 “선수들이 진학할 대학만 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 했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현재 대학팀이나 실업팀이 전무하다. 한마디로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으면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신세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부모가 딸을 아이스하키 시키려고 하고, 저변이 확대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대학과 실업팀이 없다는 것.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온 선수들은 갈 곳 없는 미아신세가 된다.

“(안)근영이가 대학을 갔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진학한 선수는 없다. 아직 우리나라 중·고·대학교에서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만들 생각이 없는 것같다. 대학 진학만 가능해도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고 성적도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3년 기준 등록된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선수는 203명. 이는 유치부나 초등부 선수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다. 실질적으로 국가대표팀에 뽑을 수 인원은 극히 한정돼 있다.

“공부와 운동이 병행이 되는 외국과 달리 아직 우리나라는 공부·운동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 무조건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김 감독은 지금부터 올림픽 이후를 더 걱정했다. 아이스하키 선배로서, 그리고 스포츠 인으로서.

“그나마 지금은 (평창)올림픽 때문에 외국인 인스트럭터도 뽑고, 귀화선수도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가 더 걱정된다.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 미래는 꿈을 닮는다 - 신소정

▲ 스스로 자신의 동영상을 편집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등 개인적인 노력 끝에 StFX 대학에 스카우트되어 캐나다 대학 1부리그에 진출한 신소정이 포부를 밝히고 있다.

캐나다 대학 1부리그(CIS)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르(StFX) 대학의 주전 골리(Goalie·수문장) 신소정. 숙명여대 에 재학 중이던 2013년 9월 장학금 등을 보장받는 대우를 받으며 스카우트됐다.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캐나다 대학에 스카우트됐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홀든 코치가 언급했듯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저변은 한국과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캐나다 최고 인기 스포츠가 바로 아이스하키다.

이런 캐나다에서도 우수 선수들이 스카우트되는 곳이 미국 NCAA 1부리그와 캐나다 1부리그다. 신소정은 캐나다 선수나 미국 선수들도 하기 힘든 것을 해낸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 캐나다에 진출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당시 캘거리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트라이아웃을 받고, 입학 허가까지 받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다른 사정들 때문에 입학하지 못했거든요. 대학 입학 후에도 그 꿈을 버리지 않았고 항상 준비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서 입학할 수 있었죠.”

지난달 끝난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우승팀이 바로 캐나다다. 배워도 뭔가 배우고, 달라도 뭔가 다르지 않았을까.

“훈련방식이 완전히 달랐어요. 기본적인 것은 같지만 코칭 스타일이나 훈련하는 방식이 달랐어요. 저는 골리이기 때문에 슛을 막아야 하는데, 캐나다 애들은 어디서 퍽을 잡아도 골대 구석으로 슛을 쏘는게 습관이 되어 있더라구요. 또 팁샷(같은 편이 쏜 슛을 골대 앞에서 스틱으로 방향만 바꾸는 것) 시도를 많이 해서 이런 부분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기본적인 수준도 훨씬 높았고요.”

 

▲ 신소저은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던 해외진출을 해냈다. 이번엔 프로다. 신소정이 캐나다 여자프로리그까지 진출한다면 한국 스포츠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다.

1학기 때 팀 동료와 경기를 절반씩 나눠서 뛰었던 신소정은 2학기 들어 감독에게 직접 ‘네가 우리팀 첫 번째 골리(First Goalie)다’라는 말을 들었고, 주전으로 출장하고 있다.

신소정은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2018년 평창올림픽을 목표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바로 ‘프로 진출’이다.

“캐나다 대학리그에서는 5년을 뛸 수 있어요. 당연히 평창 올림픽은 어렸을 때부터 최종 목표죠. 현재 2학년인데 캐나다에서 뛰면서 프로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포부는 당찼다. 현재 캐나다 여자 프로하키리그에는 몬트리올, 보스턴, 토론토, 캘거리, 브램튼의 5개의 팀이 있다.

“프로에 진출해도 돈을 받는 건 아니예요. 대신 잘 하는 선수들은 나이키, 캐내디언 타이어 등에서 연봉 1~2억 원 정도되는 개인 스폰서를 받아요. 중간 이하 선수들은 투잡이예요. 아이스하키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선수로 뛰는 거죠.”

▲ 딘 홀든 코치, 김영오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세계선수권뿐 아니라 올림픽까지 내다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신소정의 해외 진출은 한 번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자신은 된다고 믿고 꾸준히 준비를 해왔기에 지금의 신소정이 있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박세리가 LPGA에서 그랬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그 뒤를 이어 다수의 선수들이 해외 무대를 누빌 수 있었다.

지금 신소정의 위치는 그들과 몇 걸음밖에 차가 나지 않는다. 신소정이 프로에 진출한다면 한국 스포츠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또 후배들이 북미 무대를 누빌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신소정의 어깨에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미래가 걸려 있다.

그런 신소정을 보고 꿈을 키우는 선수가 있다. 그 주인공은 16살의 특급 유망주 최지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국가대표에 뽑힌 오른쪽 윙 최지연은 그동안 나이 제한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데뷔한다. 러시아 출신으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센터 파벨 다숙(Pavel Datsyuk)이 롤모델이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드리블 등 개인기와 그의 빠른 상황판단이 닮고 싶다는 그는 평창뿐 아니라 그 다음 올림픽을 바라볼 수 있는 유망주이다.  

[취재후기] 딘 홀든 코치는 인터뷰 중 '코칭은 나눔(Coaching is about sharing)'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본인이 한국 코치들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한국 코치들도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얻어가며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홀든 코치와 한국 코치진이 시너지를 창출한다면 한국대표팀의 전력은 몇배 더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iversoon@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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