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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송구' 양의지 향한 비난이 가혹한 이유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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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송구' 양의지 향한 비난이 가혹한 이유 [기자의 눈]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10.28 0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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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지난 2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KIA(기아) 타이거즈의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이날 두산의 0-1 패배의 가장 큰 지분이 포수 양의지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할 야구팬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KIA는 양 팀이 0-0으로 맞선 8회말 선두 김주찬의 2루타와 로저 버나디나의 희생번트, 최형우의 볼넷으로 1사 1, 3루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지완이 두산 투수 김강률로부터 3루 땅볼을 쳤다. 홈으로 뛰던 김주찬은 런다운에 걸렸다.

▲ 두산 투수 김강률(27번)이 26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는 양의지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그런데 이때 양의지의 실수가 나왔다. 양의지는 3루와 홈 사이에 있는 주자를 내버려두고 2루에서 3루로 들어가는 주자를 잡기 위해 3루(유격수 김재호)로 송구했다.

3루 주자의 발을 묶은 뒤 2루 주자를 잡고 다시 3루 주자를 아웃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양의지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홈에서 3루로 향하던 김주찬은 양의지가 3루로 던지는 틈을 노려 재빨리 홈으로 파고들었다. 이 점수는 고스란히 결승점이 됐고, 양의지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물론 3루 주자 김주찬을 협살하려는 상황에서 양의지가 조금만 더 침착하게 대처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김주찬을 계속 3루로 몰았다면 3루로 들어가던 최형우와 김주찬이 겹쳐 2사 1, 3루가 될 수 있었다.

경기 종료 후 많은 야구팬들은 포털사이트와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양의지의 ‘본헤드 플레이’ 하나가 승부를 갈랐다며 양의지가 두산 패배의 원흉이라고 했다. 일부 팬들은 도를 넘은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 3루 주자 협살 과정에서 3루 커버를 들어간 유격수 김재호에게 송구하고 있는 양의지(오른쪽). 이때 김주찬이 재빨리 브레이크를 걸고 반대 방향인 홈으로 파고들었다. 결과는 세이프. [사진=KBS2TV 중계화면 캡처]

그러나 필자는 양의지가 3루로 송구한 것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수라 생각한다.

당시 중계화면을 돌려보면 3루 주자 김주찬이 3루와 홈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때 양의지가 최형우를 아웃시키기 위해 3루로 던지는데, 양의지 입장에서는 김주찬이 런다운을 당한 지점이 3루와 홈 중간지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홈에서 달려온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최형우를 잡은 뒤에 김주찬마저 아웃시킬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양의지가 최형우를 아웃시키려고 3루로 송구할 때 김주찬은 3루로 되돌아가는 척 하면서 홈으로 쇄도한다. 이 대목만 보면 양의지가 잘못했다기보다 김주찬이 재치 있는 주루를 했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2000년 프로 데뷔 후 우승 반지가 없는 김주찬의 ‘인생 주루’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양의지가 3루 커버를 들어간 김재호에게 송구하는 순간, 김주찬은 3루보다 홈 쪽에 더 가까이 있었다.

허나 양의지의 이날 플레이는 누구든지 착각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3루 주자가 런다운에 걸린 그 긴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홈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 있는지 인지할 수 있는 포수는 몇 안 될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고개를 뒤로 돌려 홈과 거리를 짐작할 수도 없는 노릇. 런다운 상황에서 양의지는 자신의 판단에 맡겼고, 결과적으로 주자는 살았다. 물론 최상의 시나리오가 있긴 했다. 하지만 양의지의 판단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 붉은색 원 안에 있는 선수가 김주찬. 사진은 양의지(오른쪽 두번째)가 김재호에게 송구하려는 순간인데, 이때 김주찬이 홈쪽에 더 치우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2TV 중계화면 캡처]

통한의 실점을 한 양의지는 0-1로 뒤진 9회초 2사 1루에서 KIA 투수 양현종과 역사적인 명승부를 펼친다. 양현종의 초구(볼)를 지켜본 그는 2구째부터 배트를 돌렸다. 파울, 파울, 파울…. 7개의 파울볼을 양의지는 연거푸 쳤다. 그 가운데에는 좌측과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파울 홈런이 2개나 있었다. KIA 팬들의 안도의 한숨과 두산 팬들의 안타까움의 탄식이 장내를 뒤덮었다. 양의지는 결자해지 하고 싶었다. 한 방이면 2-1로 역전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11구까지 간 승부 끝에 양의지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경기도 마무리됐다. 비록 ‘새드 엔딩’이었지만 양의지는 야구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프로의 자세도 보여줬다.

경기 후 김태형 두산 감독은 “양의지가 욕심을 내려다 실수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원정에서 1승 1패를 했다”며 자책감에 빠질 수 있는 제자를 다독였다.

4선승제의 시리즈다.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아있다. 프로 12년차 양의지가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신 있게 플레이하면 된다. 양현종의 공 7개를 연거푸 커트한 2차전 마지막 타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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