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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⑨ 결핍이 있기에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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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⑨ 결핍이 있기에 성장한다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2.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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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베벌리 힐스에서 열리는 자선기부 행사에 서는 등, 그렇게 나는 모델료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생 소망하던 런웨이 모델로서 LA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LA 패션위크 오디션에도 지원하게 되었다.

▲ 너는 키 작아서 런웨이 모델을 할 수 없다고? LA에서는 '키'라는 핸디캡이 장애가 되지 않았다.  2010 S/S LA 패션 위크 캐시 베츠 쿠튀르(Cassie Betts Couture) 컬렉션 드레스 패션쇼에서는 여성스러운 신부의 모습을 연출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하루하루 행복했다.

2000년도 모델라인 아카데미를 다닐 때 “넌 키가 작아서 절대 모델이 될 수 없어” 라는 말을 들었던 모델 지망생이었는데…. 모델라인 수료 후 어디서도 나를 불러주는 곳이 없었고, 동기가 장난 친 ‘길목잡지’ 에 속아서 역삼역 앞에서 두리번 거리던 어리숙한 나였는데….

나 스스로도 대견하고 뿌듯했다.

“넌 키가 작아서 절대 모델이 될 수 없어” 라는 말을 나에게 했던 동기는 그 당시 그의 부모님과 디자이너의 친분으로 SFAA 컬렉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별 노력 없이 모델로 데뷔했고, 나는 나의 결핍으로 인해 더욱 더 노력을 하게 되었으며 세상이 나를 알아 줄 때까지 무작정 덤비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좀 늦게 꿈을 이뤘지만 그 사이 내가 더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게 되었다.

유명 스타들 중  ‘엄친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오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모델이나 배우 지망생들은 그런 기사를 보며 부러워 할 것이다. ‘나도 저런 집안에 저런 얼굴로 태어났으면 더 주목 받을 수 있는데…’하고 말이다.

▲ 2010 S/S LA 패션 위크 '알렉시스 몬산토(ALEXIS MONSANTO)' 컬렉션 런웨이에 섰을 때의 모습이다. 이 무대는 내가 처음으로 오프닝 모델로 선정된 쇼였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키만 더 컸어도 잘 나가는 쇼모델이 되었을 텐데!’ ‘알아주는 집안 딸이었으면 나도 비즈니스를 크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에게 있어 ‘결핍’이라는 건 신이 주신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지금 보다 키가 10cm 더 크고 9등신에 황금 비율 몸매, 그리고 잘나가는 집안의 엄친딸 이었다면, 나는 스무 살 때 모델라인 수료 후 바로 컬렉션에 쉽게 데뷔해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고난 키와 몸매를 믿고 운동도 꾸준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브랜드 화보들을 찍고 매 시즌마다 큰 컬렉션에 서고 아주 잘나갔을 것이다. 별 다른 노력 없이, 그렇게 잘나가고 돈도 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력 없이 잘나가는 모델이 되었다면 아마 콧대만 높아지고 무개념에 인성도 바닥이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엄친딸로 태어났다면 나는 그 잘난 체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살며 나이만 먹어 모델로서는 수명을 다 하고 나이들어 가고 있을 것 같다. 모델로서 잘나가니 사업  같은 건 생각 안 했을 것이고, 내가 대박을 쳤던 쇼핑몰 사업도 남의 일처럼 봤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잘나가니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며 외국에서 살아 볼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또, 모든 게 안정적인 한국을 뒤로 한 채 외국으로 나가서 모델활동을 하는 무모한 도전도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뚜렷한 주관없이 시간을 보내고 2014년이 되었을 때 내 모습이 키 180cm 정도인 33세 여자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키만 멀쩡하게 크고 모델로서 수명은 다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 런웨이 모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적과 피부색은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았다. 2010 S/S LA 패션 위크 '로렌 엘레인(Lauren Elaine)'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는 빨강머리 백인 친구와 금세 친구가 됐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하지만, 결핍이 많았던 진짜  ‘나’ 는 그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많이 성장 했으며, 꿈을 꾸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기에 지금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 가는 게 절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아직 인생의 성공을 이루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동안 부모님의 울타리를 떠나 한 발 한 발 내딛은 내 모습이 대견하다며 가끔은 자찬을 해 본다.

2009년 가을,  LA 패션 위크가 시작되었다. 매일  오디션의 연속이었다.

LA 패션위크 참가 디자이너들에게 이메일로 프로필 사진을 보냈고 오디션과 피팅이 계속 되었다. 그 동안 런웨이 모델로 활동했던 사진들을 조합해 디자이너들을 공략했다. 모델료 없이 시작했던 활동부터 그 모든 자료가 나의 경력과 프로필이 된 것이다.

거의 백인과 흑인 모델이 많은 LA에서는 아시아인인 내가 독특하게 보였던 것 같다. 나의 결점이었던 키는 상관없이 나의 이미지만으로 캐스팅해 주었다.

다른 모델들이 옷을 하나씩 입을 때 나는 두 번씩 갈아입는 일이 많았는데, 너무 바쁜 나머지 플라워 브로치가 달린 베스트를 반대로 입는 상황도 있었다. 쇼가 끝난 후에 실수를 알게 되었는데, 디자이너는 너그럽게 괜찮다고 나를 달래 주었다.

패션쇼에서 제일 처음과 끝에 나오는 모델이 메인 모델이다. 2001년 모델라인 수료 후 컬렉션에서 장윤주 선배가 음악과 함께 처음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 버렸고 정말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누가 서더라도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런웨이의 첫 모델과 마지막 모델은 아주 중요하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키 큰 모델들과 나란히 패션쇼에 서게 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 런웨이 모델은 디자이너의 콘셉트를 정확히 파악한 뒤 최적의 포즈를 연출해야 한다. 2010 S/S LA 패션 위크 '필립 로드리게스(PHILIP RODRIGUEZ)' 컬렉션 때는 허리를 휘어지게 연습해서 하이패션 포즈를 취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그런데 LA 패션 위크 때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주어졌다. LA 다운타운에 있는 비비아나(Vibiana) 성당에서 열린 성대하고 화려한 쇼였다. 두 번의 컬렉션 쇼에 서게 되었는데, 그 중 알렉시스 몬산토(Alexis Monsanto) 디자이너 쇼에 오프닝 모델로 서게 되었다.

리조트룩 콘셉트였는데, 디자이너가 나에게 주문한 이미지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는 듯’한 이미지의 워킹이었다.

컬렉션 전 연습을 하며 최대한 의상을 돋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첫 오프닝 모델로 서는 무대라서 긴장한 나머지, 스텝이 신호를 주기 전에 일찍 출발하긴 했지만 상당히 매력 있는 경험이었다.

암전 후 조명이 켜지고 모든 관중들의 눈과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집중 되는 그 희열은 말 할 수 없이 경이로웠다.

또 다른 필립 로드리게스(PHILIP RODRIGUEZ) 컬렉션에서는 허리를 뒤로 휘게 하는 하이패션 포즈를 하고 싶었다. 정말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지만 수없이 연습한 결과 잘 해낼 수 있었다.

두 쇼가 끝나고 할리우드에 있는 프리미엄 데님 컬렉션에 007 작전처럼 서는 기회를 얻었다. 다운타운에서 두 곳의 컬렉션 스케줄이 이미 확정 되어 있었는데, 프리미엄 데님 컬렉션 디자이너가 나를 꼭 무대에 세우고 싶어 했다. 일정상 ‘어쩌면 못 갈 수도 있다’고 며칠 전부터 통보했지만, 다운타운 쇼 틈틈이 계속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행사 당일이 다가왔다. 다운타운에서 쇼가 끝나자 마자 직접 운전해서 할리우드까지 정신없이 달려갔다. 겨우겨우 도착하니 그곳 컬렉션 스태프들은 나를 보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바에가 드디어 왔다! 브라보!”  나를 기다려 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 유명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았을 때만큼 모델에게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2010 LA 패션위크 때 할리우드 프리미엄 데님 컬렉션에서 나를 기다려준 디자이너와 쇼가 끝난 뒤 사진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분이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내가 대체 뭐라고 저러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에서 유명 모델도 아니었고 이제 막 활동 하고 있는 키 작은 동양인 모델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 곳 관계자 말을 들어보니 너무 의외였다. 오디션 후 디자이너가 여태껏 내가 활동했던 자료들을 다 본 뒤 꼭 나를 무대에 세우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안 모델로 단 한 명, 나를 세웠다고 했다. 정말 내가 꿈꿔오던 그런 느낌이었다.

다 같은 모델이 아니라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하는 모델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전율은 정말 짜릿했다. 그래서 더욱 더 멋진 포즈를 취했고 스포트라이트도 만끽할 수 있었다.

LA 패션위크는 LA 만의 자유로움 속에서 진행되고 언론에 많이 노출된다. 그런 만큼 더욱 더 모델로서 자부심이 생겼다.

배우 겸 디자이너인 ‘로렌 엘레인(Lauren Elaine)’ 컬렉션과 뉴욕을 본거지로 미국 백화점 전역에 입점 되어 있는 ‘보이 미츠 걸(Boy Meets Girl)’ 컬렉션 등 여러 패션쇼에 서게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해 도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런웨이 모델에 대한 미련이 남아 평생을 ‘그때 도전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며 후회 속에 살았을 것이다.

▲ 지금 봐도 내 얼굴에 소녀같은 행복감이 넘쳐났던 것 같다. 2010 S/S LA 패션 위크 '로렌 엘레인(Lauren Elaine)'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 소녀풍의 원피스를 입고 금발머리 친구와 어깨동무를 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2010 S/S LA 패션위크를 마무리 하며 조금 한가해졌을 때 우연히 서점에 들리게 되었다. 서점에는 온갖 패션위크 책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패션위크 책들을 서둘러 넘기면서 정신없이 내 모습을 찾아 보았다.

‘청천벽력’ 이었다.

런웨이 모델로 LA에서 내 꿈을 이뤘나 싶었는데, 그 패션위크 책에는 세계 3대 패션위크 사진만 나와 있었다. (참고로, 세계 3대 패션위크는 ‘뉴욕, 밀라노, 파리’ 순으로 진행된다.)

그런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 왔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LA에 있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처럼, LA 패션 위크에서 활동하면 나도 뭔가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 순간 ‘나도 저 책에 나오고 싶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싶다’ 라는 생각이 불쑥 솟아 났다.

“뉴욕에서 활동해야겠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다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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