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최대성 기자] 상대는 키가 곱절이나 커 보였다.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들어 혼내기라도 하면 배시시 웃어버리던 성격 좋은 그 녀석도 눈앞의 뚱뚱한 남자아이를 보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심판의 손이 허공을 가르고 품띠가 걸린 태권도 승급 심사가 시작됐다.
또래에 비해 큰 키 때문에 비슷한 체격의 남자아이와 태권도 겨루기를 하게 된 녀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둔탁한 파열음과 가열찬 기합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녀석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나의 두 눈은 한 순간도 깜박일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게 빠졌다가 돌려 차야지!' 속으로 크게 외쳤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상대가 남자인지라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적으로 밀리는 기세가 보였다. '힘들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녀석의 발이 허공에 원을 그리며 상대의 얼굴을 정확히 강타했다.
절묘한 뒤후리기였다. 녀석의 유연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상대는 코피가 터졌고 전세는 역전됐다. 무엇보다 지켜보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가슴이 벅차 올랐다.
겨루기가 끝나고 땀으로 범벅이 된 녀석이 상기된 얼굴로 날 보던 모습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흰띠를 둘러메고 장난만 치던 13살 꼬마가 어느새 이만큼 커서 남자아이 코피를 터뜨리며 승급 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10여 년 전 태권도 사범시절,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이렇게 장황하게 끄집어낸 이유는 이번 포토 포커스의 주제인 '부모님 같은 감독님 표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사연 많은 표정을 어떻게 단 한마디로 표현할 것인가!
누구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하고 그 책임 또한 온전히 져야 하는 감독이라는 위치는 대단한 스트레스가 뒤따른다.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 있다고 해도 감독의 역량에 따라 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은 최근 울산의 수장이 된 윤정환 감독의 '사간도스 매직'만 봐도 알 수 있다.
좋은 감독은 부모님 같다고 생각한다. 때론 매서운 회초리로 다스리다가도 찬바람에 감기라도 들까 밤잠도 설치며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처럼 감독 역시 선수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팀이 하나가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지난날 잠시 느꼈던 가슴 벅찬 그 마음이 경기의 시작과 동시에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이 땅의 '감독님 표정'과 같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