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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공공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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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공공재인가?
  • 김신일 음악평론가
  • 승인 2014.12.0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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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김신일 음악평론가] 최근 삼성전자가 갤럭시 폰에서 무료료 제공되는 공짜 음악 서비스 '밀크'를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SKT도 특화 요금제를 쓰면 음악감상이 공짜라고 광고하고 있다.

한국저작권협회의 입장은 그런 공짜음악 서비스가 음악의 가치성에 대한 인식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정부참여로 여러 단체들과 협의가 진행중인 상황이지만, 중요한 것은 음악을 만드는 주체가 분명히 있으며, 그 존재가 기업이 독식하는데 필요한 이용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과 협회, 그들이 기업윤리를 잘 지키든 모종의 일괄 수주계약으로 퉁치기를 하든, 그 문제 이전에 음악은 주인이 있다는 말이고 주객전도로 소비자에게 공짜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연 음악은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공공재일까? 우리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어떤 의미일까?

 ▲ 음악은 창작자들의 노력과 열정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사진은 필자의 작업실에서 직접 녹음하고 음반 발매를 한, 듀엣 '마음과 마음'.  [사진= 김신일 제공]

인간관계에 있어서 대상성(대상을 대하는 느낌이나 태도)은 개인적 사고나 가치관으로 이뤄진다. 누군가가 슬퍼하고 있다면 그 대상 역시 슬퍼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항상 자신의 감정을 타인과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충실했을 때 '이기적이다'는 평가를 종종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음악'은 어떤 대상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물과 공기처럼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느끼는 정도의 막연함으로 음악을 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단수 되었을 때의 그 불편함을 겪지 않으면 잘 모르듯이, 음악 없는 무미건조한 세상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음악의 중심은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사상, 감정을 소리로 대체하는 표현 예술이기 때문이다.
형체가 보이지 않는 예술이기에 표현력이 남다른 특성도 가지고 있다.

창작자는 행복하거나 슬픈 감정 등을 음악에 담아서 대중들에게 표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이든 사물이든 대상성이 정해진 게 아니다. 개인 가치관에 따라 각자 다른 느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슬픈 음악'이 '웃긴 음악'으로 잘못 이해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진정성(때론 가식적으로 미화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을 최대한 담아 대중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오로지 혼자만을 위한 음악도 존재할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악은 인간들과 소통하려고 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관되게 소통하려는 음악의 특징이 예측불허인 인간관계의 대상성과는 차이가 있다고 불 수 있을 것 같다. 슬픈 음악이 웃긴 음악이 되기를 바라는 창작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소리 몇 마디가 대중을 흔드는 요인이 되는 건 아니다. 창작자들은 더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녹음을 하거나 깎고 다듬기도 하며 이를 수없이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런 수단은 일종의 대화 도구인 셈이다.

그렇게 음악은 창작자의 '감정을 통한 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며 '가치있는 인간의 대상성(소통 노력)'인 것이다.

▲ 선택은 대중의 몫이지만 창작자는 대부분 대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든다. [사진= 김신일 제공]

물론 지금 현실이 순수예술을 독립시킬 만큼의 환경이 아니고, 돈이 더 중요한 배금주의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이런 점에서는 모든 음악이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창작자와 대중은 서로 강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관계를 암묵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그런 창작자를 '비판'할 자유는 있을지언정, '왜 당신은 돈의 목적으로 음악을 만들었는가' 로 '비난'하긴 어렵다.

보이지 않는 무형예술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질지는 창작자의 자유의지에 달린 문제다. 음악이 공공재인가의 여부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사실 금전적인 문제를 우선시하는 저의(?)가 있다고 해서 창작자의 의도가 대중에게 다 어필되는 건 아니다. 그 곡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안 들으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 거래선을 잘 지켜오지 않았던가.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을 들이고 여러 번 듣게 만드는(?) 마케팅 능력을 발휘해 안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일종의 '강요'로 받아들인다면, 굳이 그 생각이 틀리다고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강요라고 하더라도 그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듣는 대중에게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린 꽤나 민주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예술이 다 그렇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음악은 휴식을 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더 큰 사랑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슬픈 사람에게 치유와 위안이 되기도 하며 행복감을 배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음악이란,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일회용이 아닌 '소중한 자산'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어떤 음악이든 '만든 주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린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 주체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정신적·육체적인 노동력을 투입했다. 공짜를 강요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이든 소비자든 음악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그 주체에 대한 가치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음악들이 나올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마련될 것이고, 창작자들이 앞으로도 소중한 문화 자산의 지킴이로서 제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kimshinil-_-@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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