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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제시장' 김윤진 "한·미 무대로 차별화된 배우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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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제시장' 김윤진 "한·미 무대로 차별화된 배우 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07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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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배우에게 극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미션을 여전사처럼 수행해온 할리우드 스타 김윤진(41)의 얼굴에 충만감이 가득 퍼졌다. 충무로와 할리우드, 한국영화와 미드를 오가며 지내온 10년을 결산하는 작품을 만났기 때문일까.

한파가 몰아닥친 12월 첫째 주, 삼청동의 갤러리 카페 2725에서 마주한 그로부터 흥분, 기대, 뿌듯함 등 긍정의 에너지가 솔솔 흘러 나왔다.

 

◆ 헌신적 아내 영자 맡아 20대부터 70대 연기…독어 부산말 구사 ‘멘붕’

한국전쟁부터 201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살아온 덕수(황정민)의 일대기를 그린 ‘국제시장’(12월17일 개봉)에서 김윤진은 덕수의 첫사랑이자 동반자 출연한다. 20대 파독 간호사부터 70대 할머니, 60여 년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연기했다. 불굴의 여전사, 독립적인 도시여성, 강인한 모성을 주로 소화해온 그로선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다.

“첫사랑 연기를 해본 적도 없었고 며느리나 지고지순한 아내 역에 캐스팅돼본 적이 없어요. 유부녀 역할을 맡았더라도 남편의 존재가 미약해서 제가 오히려 능동적이었죠.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모든 게 새롭고 재밌었어요.”

영자는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다. 60년대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파독 간호사로 돈을 벌고, 광부로 온 덕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덕수와 함께 부산 국제시장 수입잡화점 ‘꽃분이네’를 운영하는 가운데 시어머니와 시동생, 자식들을 거둔다. 옆집 상인과 머리채를 잡고 시장바닥을 뒹구는 억척스러움을 불사한다. 이런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한 미션 역시 혹독했다. 독일어와 부산말 구사가 베테랑 연기자 김윤진에게도 가장 큰 난관이었다.

 

“독일어는 듣자마자 멘붕이었어요. 한글로 표기할 수없을 정도로 발음이 어렵더라고요. 독일어 선생님과 만나 교정을 받고 죽어라 외우고 연습했어요. 특히 탄광이 붕괴돼 덕수가 갇힌 상황에서 책임자에게 항의하는 긴박한 장면에선 빠르고 많은 대사량, 감정연기를 해야 하니까 툭 치면 독일어가 줄줄 나올 정도로 준비해야 했죠. 부산말도 제겐 외국어나 다름없더라고요. 윤제균 감독님은 ‘교양 있는 곱고 매서운 부산 할머니 말투’를 원하셔서 신인배우처럼 배웠어요. 하이톤 보다는 약간 눌린 목소리가 나와야 해서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대사를 쳤어요.”

◆ 뉴욕 이민시절 잡화가게 장사수완 경험 스크린에 녹여내

영자를 연기하며 자연스레 부모님이 떠올랐다. 10세 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간 김윤진의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잡화가게를 운영했다. 김윤진은 청소년 시절 엄마를 도와 가게일을 봤고, 보스턴 대학에 진학해서도 손님에게 하나 살 물건을 두 개나 사게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덕수처럼 아버지 역시 이북에서 내려와 한때 이국만리 쿠웨이트 건설현장에서 근무를 하셨다.

“촬영 내내 아버지가 생각났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나니 더욱 생각나더라고요. 어렸을 때 마냥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어요. 나이가 들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까 짠하고 엄마와는 또 다른 먹먹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엄마와 아빠도 젊은 시절엔 꿈이 있었을텐데 자식들은 부모의 꿈과 욕망을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우리를 위해 당연히 희생하는 존재로만 여기고. 극중 덕수가 자신의 꿈을 토로할 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이었어요. 직업이 배우라 나름 인간, 삶에 대해 고민해왔다고 자부했는데...스스로 반성하고 성찰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가 ‘국제시장’을 많이 봐줬으면 해요.”

 

◆ “덕수 자체인 황정민 지금도 남편같아...김윤석과 공연 기대”

부모님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 일은 반면 소소한 재미도 만끽했다. 일본 특수촬영업체의 ‘에이징 리덕션’ 기술로 20대의 얼굴이 나왔기 때문이다. 화장품 CF를 찍은 듯 얼굴형을 V라인으로 만들어주고 탱탱하게 펴주는 마술을 경험했다. “과학의 힘을 빌려 호강을 누렸다”고 흐뭇해한다.

체코 프라하에서 촬영한 파독 간호사 시절, 덕수와의 데이트 장면에서는 “나 잡아 봐라” 신 등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를 원 없이 누렸다. 황정민이라는 걸출한 연기 파트너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최근 들어 여주인공 위주의 작품을 자주 하다 보니 남자배우들과 호흡 맞출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정민 오빠는 베테랑이다보니 제가 컨디션이 나빠도 커버가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덕수 같았고 지금도 제 남편 같아요.(웃음) 배우는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하다가도 현장에선 다 버리고 감정이 움직이는대로 임해야 하는데 마음 맞는 배우와 연기를 하면 상상치 못한 리액션과 애드리브,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럴 땐 너무 행복하죠. 정민 오빠와 호흡이 그랬죠. 아직 공연해보지 못한 김윤석 선배도 궁금해요. 어떠실지.”

▲ 미드 '미스트리스'와 영화 '국제시장'(오른쪽)의 김윤진

◆ 내년 2월부터 미드 ‘미스트리스’ 시즌3 촬영…욕먹는 화제 캐릭터 카렌 만족

2004년 미드 ‘로스트’의 선화로 출연하며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2010년까지 무려 전 세계 210개국서 방영된 이 드라마로 인해 김윤진은 ‘할리우드 스타’ ‘첫 동양인 주연’ 타이틀을 당당히 달았다. 멋진 20대 금발 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시청률이 나오는, 동양배우가 무술을 하지 않아도 주목받는 역사를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LA의 30대 커리어우먼 4명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미스트리스’에서 골드미스 정신과 의사 카렌 킴으로 출연, 시즌2까지 마쳤다.

국내 여성 시청자들은 카렌의 모던하고 화려한 패션에 열광하고, 미국 여성 시청자들은 타인에게는 현명한 조언을 화수분처럼 쏟아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애정사에선 어리바리하기 짝이 없는 카렌에게 분통을 터뜨린다. 그만큼 화제의 중심에 선 캐릭터다. 내년 2월부터 장소를 캐나다 밴쿠버로 옮겨 시즌3 촬영에 들어간다.

“유능한 의사인데 하는 선택은 바보 같으니까 TV를 향해 베개 던지며 볼 정도로 욕얻어 먹는 캐릭터예요. 화제성 캐릭터라 전 좋아요. 극중에서 예쁘게 나와야 하니 의상비용도 출연진 가운데 제일 많이 들어요. 칙칙했던 ‘로스트’의 선희와 달리 카렌은 아름답게 보여야 해서 공들여 헤어, 메이크업을 하니 재밌죠. 후후.”

 

◆ “유능한 한국감독들, 모국 배우 캐스팅으로 美진출 이끌어야”

초창기 할리우드에서 외로운 프런티어로 활동했다면 지금은 배우 이병헌 비, 감독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한국 영화인의 활약으로 인해 든든하다. 특히 한국 영화시장의 ‘캐파’가 커지면서 미국 영화인들이 주목하게 된 것도 그에겐 뿌듯한 일이다.

“배우 스스로는 한계가 많으니까 좀 더 많은 감독들이 진출하셨으면 해요. 그러면서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그들의 진출을 도왔으면 하죠. 중국의 오우삼 감독이 할리우드에 와서 주윤발, 양자경을 자연스럽게 데뷔시켰듯이. 한국 영화시장의 힘이 커졌을 때 한국에서 로케이션도 이뤄지면 우리나라 홍보도 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이 시기를 잘 활용했으면 해요.”

김윤진이 완벽하게 세팅된 할리우드 활동에 ‘올인’하지 않고 시간을 쪼개 국내 영화에 출연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배우인생을 시작하고 인정받은 건 대한민국이잖아요. 그동안 쌓아올린 진정성으로 인해 미국 진출도 이뤄진 거라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크죠. 또 한국에서 영향력이 있어야 미국에서도 만만하게 보지 않고 인정받아요. 저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달라지죠. 양쪽 무대가 있어야 차별화된 배우 김윤진이 되는 거고요.”

그는 솔직했다. ‘국제시장’이 자신의 첫 1000만 영화가 돼줬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따뜻하고 소중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함께해 영광”이라고 시상식 스타일 소감을 전했다.

 

[취재후기] 1999년 ‘쉬리’는 그의 영화인생에 있어 선연한 터닝 포인트다. 그 이후 ‘독립적이고 강한 여자’의 표상이 됐다. 틀에 갇힌 답답함은 없었을까. 시원시원한 대답 ‘No!’가 날아왔다. 그 시절에도 남자에게 기대거나 상처받고 우는 캐릭터엔 관심이 없었단다. 오히려 ‘쉬리’로 출발해서 얻은 게 많고 취향껏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고 자부했다. 이제 40대. 연기톤은 변하지 않겠지만 ‘국제시장’ 이후 호흡은 변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리 낀 창밖을 일별했다. 할리우드의 높은 벽을 뚫어낸 한국 여전사의 호기와 여유가 동시에 느껴졌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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