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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한국 유턴' 前 오클랜드 김성민, 조용히 그리는 KBO리그 입성의 꿈독립구단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재도약 노리는 김성민…"팬들에게 인정받는 선수 되고파"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12.20 06:27 | 최종수정 2017.12.20 10: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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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s!] 199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MLB)를 호령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성공은 수많은 유망주들이 미국으로 떠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나도 박찬호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혈혈단신 미국행을 선택한 고교 유망주들은 이내 차가운 현실에 부딪치며 방황했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빅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고졸 선수는 드물었고, 아예 빅리그 무대도 밟아보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도 많았다. 2011년 계약금 51만 달러(5억5300만 원)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입은 포수 김성민(24‧성남 블루팬더스)도 마찬가지. 루키리그에서 잠재력을 터뜨렸지만 싱글A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조용히’ KBO리그 선수의 꿈을 꾸고 있다.

 

▲ 김성민이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에서 스포츠Q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남=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주현희 기자] “(김)하성(넥센 히어로즈)이가 야탑고 2년 후배인데요. 따로 연락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저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프로에 가면 만나겠죠(웃음).”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주변 동료들과 연락하고 지냈는지에 대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다. 2015년 12월 오클랜드에서 방출된 후 곧바로 군 복무를 택한 김성민은 “그냥 조용히 지냈다”고 근황을 알렸다. 그렇게 1년 9개월 동안 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제 3개월 후면 전역. 2년 전 아메리칸 드림을 접은 김성민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고 있다.

그간 김성민은 퇴근 후 홀로 웨이트 트레이닝에만 집중했다. 개인 훈련만 했기에 공을 던지거나 칠 수 없었다. 몸은 점점 좋아졌지만 ‘경기 감각’은 무뎌졌다.

 

▲ 김성민이 성남 블루팬더스 2차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포수 미트를 낀 채 공을 받고 있다.

 

야구가 고팠던 김성민은 우연히 독립구단 성남 블루팬더스 트라이아웃 소식을 들었고, ‘이곳이라면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몸이 덜 만들어졌기에 최상의 기량을 펼치는 건 무리였다. 지난 9일 2차 트라이아웃이 열린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에서 만난 김성민은 “포구, 블로킹, 타격 모두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 실전에 맞춰진 몸이 아니다. 20~30% 정도밖에 올라오지 않았다”며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게 할 줄 알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해 실망스럽다”고 멋쩍게 웃었다.

김성민은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감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사흘 뒤 발표된 트라이아웃 합격자 명단에 포함됐다. 생애 처음으로 독립야구단의 일원이 된 것. 2018년 1월 창단하는 성남 블루팬더스(감독 마해영)의 안방마님으로 뛰게 됐다.

 

▲ 포수 마스크를 쓴 김성민이 정면을 응시하며 공을 던지고 있다.

 

◆ 부상과 함께 멈춘 '아메리칸 드림', 냉혹한 현실 담담히 받아들이다

고교야구 최고 포수 유망주에서 루키리그 강타자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스물넷 김성민의 야구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김성민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건 2010년 봉황대기 고교야구 8강전. 당시 ‘초고교급 에이스’ 유창식(전 KIA 타이거즈)을 상대로 결승 투런 홈런을 친 김성민은 미국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포수를 맡으면서 4번 타자로 활약하는 그에게 매력을 느낀 오클랜드가 입단 제안을 했고,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미국 진출을 확정했다.

입단 3년차인 2014년 루키리그에서 타율 0.441(34타수 15안타) 3홈런 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360을 기록했을 때만 해도 김성민에게 탄탄대로가 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싱글A로 올라간 뒤 성적이 뚝 떨어졌다. 2014시즌 버몬트 레이크 몬스터스에서 타율 0.192(99타수 19안타)에 그쳤고, 2015년에도 타율 0.200(110타수 22안타)에 머물렀다. 싱글A 콜업 후에 입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 결국 그해 12월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부상을 입은 건 평소에 몸 관리를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니 (방출 순간) 무덤덤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으니 일단 야구를 계속하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 김성민이 타격 테스트를 받고 있다.

 

◆ "체격에 비해 날렵한 편, 하지만 프로는 만만찮은 곳"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군 복무를 시작한 김성민은 외로운 싸움을 했다. 개인 트레이너가 없는 상황에서 절제하며 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단다. 현재 188㎝ 115㎏의 체격을 갖췄는데, 주루에 자신이 있는 만큼, 체중 조절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미국에서는 ‘내가 평범한 선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순발력에는 자신 있었어요. 몸이 날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100m 달리기를 12초 후반에 끊었죠.”

포수로서 순발력이 뛰어난 건 큰 자산일 터. 김성민은 앞으로 이런 장점을 키워나가며 성장할 참이다.

하지만 KBO리그 입성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포수 자원이 귀한 건 사실이지만 프로는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 구단이면 내가 들어갈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없다. 나에게 만만한 구단은 없는 것 같다”고 고갤 저었다. 내년 8월 신인 드래프트까지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김성민은 이반 로드리게스를 롤 모델로 꼽았다.

 

◆ 롤모델은 'I-Rod',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프로의 꿈 키운다

야구를 시작한 성남 대일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포수 마스크를 쓴 김성민. 그의 롤모델은 누구일까.

예상을 깨고 국내 선수가 아닌 메이저리거의 이름이 나왔다. 바로 이반 로드리게스(46‧푸에르토리코). 텍사스 시절 7년 연속(1992~1998년)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올해 1월 ‘MLB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레전드다.

어떤 점을 닮고 싶으냐고 묻자 김성민은 “I-Rod(이반 로드리게스의 별명)는 공격과 수비, 투수 리드 모두 잘하는 포수였다. 동료들과 케미도 좋았다”면서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그처럼 나도 만능 포수가 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팬들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포수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성남 토박이라 블루팬더스에 유독 마음이 가요. 프로에 갈 때까지 이 팀에 헌신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 김성민 프로필

△ 생년월일 = 1993년 5월 12일
△ 체격 = 188㎝ 115㎏
△ 출신학교 = 성남 대일초-매송중-야탑고
△ 좌우명 = 기본에 충실하자

△ 주요 경력
- AZL 애슬레틱스(루키리그) = 2012~2014년
- 버몬트 레이크 몬스터스(싱글A) = 2014~2015년
- 성남 블루팬더스(독립구단) =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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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기자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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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성남 블루팬더스#독립구단#야탑고#김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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