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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66년 정열의 서울대 미식축구 "풋볼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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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66년 정열의 서울대 미식축구 "풋볼로 인생을 배운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12.10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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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식축구의 산역사, '문무 겸비' 서울대에서 드문 '이기는 운동부'

[스포츠Q 민기홍 기자]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것만큼 멋진 것이 없다. 여기 정확히 그에 부합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서울대 미식축구부다.

‘흩어져도 산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을만큼 슈퍼엘리트만 모인 곳이 서울대다.

여러 아마추어 운동부가 있지만 이들은 대개 다른 대학들의 승리 제물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미식축구부만큼은 크게 다르다. 1947년 한국에 풋볼을 전파하기 시작한 이들은 빼어난 기량으로 '운동도 잡는' 클럽이다.

감독부터 주장, 선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풋볼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목소리다. 그들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희생정신을 기를 수 있는 미식축구를 ‘강력 추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미식축구부 66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들은 편찬위원회를 통해 미식축구부 66년사라는 책까지 발간했다.

◆ 실명을 밝히기를 거부한 사령탑, “풋불로 인생을 배웠습니다” 

“주변에서 알면 큰일나는데... 하하하.”

허 모 감독은 실명을 알릴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여자친구를 비롯한 주위에서 미식축구에 시간을 쏟아붓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하는데도 불구하고 개인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를 묻자 “선배로서, 선생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밝게 웃어보였다.

대학원생인 그는 6년째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허 감독은 “후배들이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뜨겁게 살기가 쉽지 않지 않다”며 “대학 생활 동안 풋볼을 통해 정열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서울대 미식축구부 선수들은 "풋볼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닌 팀으로, 개인 능력이 아닌 희생과 헌신으로 성과물을 냈을 때의 희열을 잘 알고 있다. [사진=서울대 미식축구부 제공]

허 감독은 “나이를 먹으며 내가 조금씩 성장해온 것이 있다면 그건 모두 미식축구 덕”이라며 “아이들과 함께 한 지난 세월 동안 특히나 질 때마다 배우는 것이 있었다. 풋볼을 하면서 희생이 부족한 것을 느껴 개인주의를 버렸고, 무언가에 쏟아붓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서울대생이 으레 그렇듯 이원일(21·경제학과)은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하느라 땀 흘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공부를 제외한 분야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생긴 건 미식축구 덕”이라며 “이젠 어떤 일이든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과 열정을 바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왜소한 체격의 박웅기(23·조경학과)는 “나같은 사람도 해낼 수 잇는 포지션이 있다. 작고 빠르다면 러닝백을 하면 된다”며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면 풋볼에 유리한 건 맞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이것이 풋볼이 재밌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서울대 미식축구부에 들겠다던 고교생,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유강환(오른쪽) 서울대 현역 선수로는 유일하게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이승노는 주장으로 서울대 미식축구부를 이끌고 있다.

“아는 분께서 SNS에 계속 풋볼하는 사진을 올리셨어요. 서울대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유강환(24·지역시스템공학과)은 고교 시절 서울대 미식축구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욱 학습에 매진하게 됐다. 그는 “바깥에서 보면 더욱 색다르고 멋지게 느껴지는 종목이라 큰 동기 부여가 됐다”고 털어놨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주전 쿼터백으로 자리잡아 두각을 나타낸 그는 서울대 재학생으로는 유일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돼 지난 4월 서울 목동구장에서 펼쳐진 2015 스웨덴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쿠웨이트전에도 참가해 본선행의 기쁨을 맛봤다.

유강환은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은 큰 영광이었다. 모두가 어떠한 대가도 없이 사비를 들여 훈련을 하고 경기에 참가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나도 하나가 됐다. 형들께 배운 것이 많았던 시간”이라고 그 때 느낀 감동을 전달하려 애썼다.

그는 아쉽게도 내년 3월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 7월 개최되는 월드컵에는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유강환은 “큰 무대에 나서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군 문제로 연습조차 소화하지 못할 내가 나가면 안된다”며 “나 말고도 더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고 동료들을 성원했다.

◆ 이기는 운동부, 서울의 강자

“느슨해지면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이게 무슨 동아리인줄 알아?”

▲ 서울대 미식축구부는 '이기는 운동부'다. 이번 시즌 추계대회에서 우승한 후 단체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선수들. [사진=서울대 미식축구부 제공]

박웅기가 서울대 미식축구부 특징을 늘어놓았다. 그는 “우리는 결코 장난으로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체육교육과에서 관리하는 정식 운동부”라며 “1주일에 3번, 한 번에 3~4시간씩 모여 체계적인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이 팀은 서울대에서는 드문 ‘이기는 운동부’다. 대외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야구부의 경우 콜드게임을 당하지 않고 9이닝 경기를 하는 것이 목표다. 축구, 럭비, 하키, 핸드볼부 등은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 미식축구부는 전국을 통틀어서도 다크호스로 평가받고 있다.

주장 이승노(23·지역시스템공학과)는 “전국 무대에서도 메달을 척척 따내는 복싱부가 있어 ‘이기는 운동부’라는 칭호를 갖다 쓰기에는 조금 부끄럽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국의 미식축구클럽 중 가장 오래된 팀으로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허 감독은 “팀 컬러가 없는 것이 서울대의 팀 컬러같다. 그래서 거친 부산 지역의 팀들 만나면 고생한다”고 껄껄 웃으며 “그래도 우리가 가장 문무를 겸비한 팀이 아닌가 싶다. 1,2학년생들이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도 대학 무대에서는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은근한 자신감을 보였다.

◆ 서울대 미식축구 66년사, 풋볼 선구자 역할 지속 다짐

인터뷰가 진행된 장소는 서울대 미식축구부 66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이었다. 1947년에 창단한 그들은 이 자리를 위해 역사편찬위원회를 구성, 300페이지에 달하는 ‘서울대학교 미식축구부 66년사’까지 출판하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했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박웅기(왼쪽)와 이원기는 "우리같이 왜소한 사람도 얼마든지 미식축구를 즐길 수 있다"고 풋볼의 매력을 어필했다.

이 책에는 하이라이트 필름을 담은 흑백사진 화보부터 유니폼 변천사, 감독회고록, 동문과 매니저 칼럼, 역대 경기 상세 전적에 이르기까지 환갑을 훌쩍 넘긴 서울대 미식축구부의 모든 역사가 한데 담겨있다.

52학번 대선배부터 14학번 햇병아리 신입생까지 100여명이 참석한 자리. 편찬위원장을 맡은 박경규 경북대 명예교수는 “한국 미식축구의 역사가 곧 서울대 미식축구의 역사”라며 “미식축구를 위해 헌신하신 선배님들께 이책을 바친다”고 말했다.

이승노는 “한국은 풋볼 불모지다. 접하기 힘든 종목을 맨땅에서부터 일궈오신 선배들을 존경한다”고 말했고 유강환은 “장비를 갖추려면 1인당 50만원은 기본인데 1년간 10만원 정도만 내고 운동하고 있다. 모두 선배님들 덕”이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미식축구 도입 초기부터 전술 트렌드를 들여오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도맡아 해온 서울대는 앞으로도 한국 풋볼 발전에 앞장서 나설 것을 다짐하며 축배를 들었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감독의 요청으로 서울대 미식축구부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남중수 간사가 대신 사진 촬영에 임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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