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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노부부에게 사랑은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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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노부부에게 사랑은 습관이었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13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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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연말 극장가에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2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소규모 독립영화임에도 쟁쟁한 할리우드 대작과 한국 상업영화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영진위 극장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2일 하루 동안 10만8652명을 모아 누적 관객수 52만8768명을 기록했다. 개봉 16일 만이다.

 

개봉 1주일 만에 10만, 11일째 20만 관객을 넘어서는 흥행속도는 역대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인 ‘워낭소리’(296만명, 2009년)보다 빠르다. 개봉 당시 186개였던 스크린은 12일 현재 595개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강원도 횡성 산골마을에 사는 98세 로맨티스트 고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의 소녀감성 강계열 할머니의 1년을 담은 이 작품은 76년 동안 이어온 노부부의 순도 높은 사랑으로 전 세대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기적의 주인공 진모영(44) 감독을 11일 오후 서교동 주택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극장에 가보면 10대부터 70~80대에 이르기까지 관객층이 폭넓다.

▲ 최근 상영관에 갔을 때 한 할머니께서 “저 할머니와 같은 나이요”라고 하셨다. 시험을 끝내고 온 중학생 무리도 있었다. 주 관객층은 20대였는데 연령층이 폭넓게 형성되는 분위기다. 특히 젊은층은 부모님을 위해 티켓을 구매하거나 직접 모시고들 많이 오더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라는 마음이 티켓에 싣는다고 할까.

▲ 연일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소규모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 관객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 영화를 본다고 보나.

▲ 20대 관객이 “우리는 보통 1~3개월의 연애기간을 가지는 밀당 세대인데 영화 속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완벽하고 좋은 사랑을 하고 싶다”라는 말을 하더라. ‘사랑에 대한 좋은 영화’라고 입소문이 났다. 중학생들도 그들 나름의 사랑을 꿈꾼다. 쪼그라들고 낡아버린 사랑에 아쉬움이 있는 40~50대는 배우자의 손을 잡고 와서 감상한다. 세대를 초월해 사랑에 대한 주제만큼은 명확히 캐치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커플 관객이 많다.

- 지난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처음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영화화하게 된 과정을 들려달라.

▲ 2010년 횡성신문에 ‘장날에 커플한복을 입고 나온 노부부’ 사진이 실리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1년 SBS 신년 특집 4부작 ‘짝’에 소개됐고 가을에 ‘인간극장’에서 다뤘다. 난 2012년 8월쯤 뒤늦게 ‘인간극장’을 봤다. 충격적이었다. ‘진짜일까? 진짜라면 엄청난 건데!’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때는 그분들과 연애하는 것처럼 푹 빠져버린 상황이었다. 이 부부의 사랑은 클래스가 달라서 방송에서 한번 소비하고 말기에는 너무 위대했다. 극장은 방송과 달리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매체니까 전 세계인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생각에 달려들게 됐다.

 

- 1년3개월의 촬영기간, 프로젝트 시작부터 상영까지 2년5개월 정도 걸렸다고 들었다. 우여곡절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 어르신들에겐 6남매가 있는데 장녀에게 면접심사를 받았다.(웃음) 다음날 전화가 왔고 “부모님도 하고 싶어 하신다. 대신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으니 잘 해달라”는 당부를 하셨다. 그래서 2012년 9월부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난해 11월까지 촬영을 진행했다. ‘인간극장’은 호흡이 짧은 방송 다큐라 20일 정도 촬영했는데 영화라 애초부터 1년을 잡았다. 특히 자연 속에 있는 집이라 풍광이 다른 사계를 담아내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봄에 피어난 새순이 여름의 비를 맞으며 성장했다가, 가을을 거쳐 겨울에 져버리는 우리 인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그 정도의 시간이어야 노부부의 디테일을 담을 수 있겠다 싶었다.

- 노부부는 늘 서로에게 존칭을 하고, 틈 나면 물장난과 눈싸움을 벌여 웃음을 자아낸다. 그분들의 사랑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느낀 바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 언젠가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다른 길’에 갔을 때 벽에 붙여진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하게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위대한 사랑이라고 여겼던 노부부의 일상은 재밌고 아기자기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사랑이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외출 시 상대의 신발을 돌려놔주고, 보이지 않는 뒷머리를 다듬어주고, 험한 길에서 손을 잡아주는 행동은 76년 세월동안 매일 반복하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서로 배려하고 지원해준 게 쌓인 결과물이다. 이 부부에게 사랑은 습관이었다. 끝까지 하다보면 습관이 되고 결국 그게 위대한 것이 된다는 걸 배웠다. 꽃 1000송이를 한순간 줘서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한송이를 1000일 동안 날마다 주는 게 의미있음을 깨달았다.

 

- 촬영하며 할아버지의 죽음, 홀로 남은 할머니의 슬픔 등 감정이 복받쳐오는 순간을 함께했다.

▲ 관객과 소통하는 순간을 담아야 하기에 매 순간 긴장해야만 한다. 현장에서 감정에 동요되진 않는 편이다. 특히 연출과 촬영감독을 겸해야 했기에 그 어떤 순간에도 난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매일 눈을 맞추고 함께 밥 먹었던 분의 마지막을 담아내는 게 힘들긴 했다. 기록자로서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 할머니가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옷을 태우면서 “먼저 가 계세요. 내가 늦으면 날 데리러 오세요. 거기서 재밌게 살아요”하는 장면은 쉬 잊히질 않는다.

▲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키워낸 그 사랑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랑에 끝은 없더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과정이었다. 다음 사랑으로 가는 징검다리일 뿐이었다. 할머니가 슬픈 가운데서도 할아버지를 보내는 작업을 해내는 걸 지켜보는데 여러 감상이 솟구쳤다. 관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동하신다. 전문 배우들을 능가할 정도여서 깜짝 놀랐다.

▲ 한국의 할머니, 할어버지는 강하시다.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으신다. 이미 카메라를 쳐다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계셨다. 다만 식사 장면에서 미안하셨는지 “같이 밥 먹자”고 카메라에 말을 거시느라 NG가 나곤 했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강계열 할머니와 고 조병만 할아버지

- 눈 덮인 산 속,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주저앉은 할머니가 꺼이꺼이 우시는 걸로 영화의 시작과 끝은 장식된다. 14세 소녀는 한겨울에 나타난 남자를 만나 해로했고 89세의 겨울에 떠나보냈다.

▲ 할머니가 눈밭에서 우시는 장면을 끝으로 모든 촬영을 접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의 메시지를 할아버지께 다 전했기에 더 이상 찍으면 사족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는데 제작자나 감독이 공도 아니고, 축하받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처음부터 노부부를 이용해서 뭔가를 도모하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 3년상 치르는 기분으로 자중하고 싶다.

- 당신에게 다큐멘터리는 어떤 의미인가. 극영화 제작을 권유하는 손길도 많을 것 같은데.

▲ 난 18년차 독립 다큐멘터리 PD다. 3년 동안 방송사의 비정규직 FD로 다큐멘터리를 배웠고, 이후 선배와 독립 프로덕션을 차려서 방송사에 납품할 콘텐츠를 기획·제작 관리했다. 만들고 싶은 갈증에 2011년 회사를 그만 두고 1인 창작자로 콘텐츠를 기획, 제작, 연출하고 있다. 이번이 첫 영화다. 극영화 감독이 창작자라면 다큐멘터리 감독은 일종의 중개자다. 창조하는 세계가 아니라 해석하는 세계다. 난 중개인으로서 출연자들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그들이 세상에 내보내려 하는 메시지를 관객과 충분히 나눌 수 있게 구현하는데 집중하고 싶다. 극영화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 평범한 노부부의 위대한 사랑에 이어 진 감독이 관심을 두는 주제는 무엇인가.

▲ 재래식 잠수기구인 머구리 일을 하는 탈북 잠수부 가족 이야기를 1년 내내 촬영했다. ‘이방인’이란 제목이다. 남과 북, 생과 사, 물과 뭍, 원주민과 이방인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 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언가.

▲ 한국 사람들은 매우 첨단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시류를 잘 탄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슬프고 짠하고 열정적이다. 희로애락을 아주 잘 가지고 있다. 그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게 내겐 매우 의미 있다. 오랫동안 한국인을 지켜보며 살고 있으며 당분간은 이들에 대한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 마지막으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시간이 흐르며 사랑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조금 더 사랑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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