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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금메달] 고3때 썰매 잡은 윤성빈, 한국 동계스포츠사 새로 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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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금메달] 고3때 썰매 잡은 윤성빈, 한국 동계스포츠사 새로 쓴 스토리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8.02.16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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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단 6년. 윤성빈(24·강원도청)이 썰매를 든 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아 스켈레톤과 한국의 동계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집필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특이한 케이스로 경쟁자들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윤성빈은 16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1인승 1~4차(50초28, 50초07, 50초18, 50초02) 합계 3분20초55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니키타 트레구보프(OAR·3분22초18)와는 무려 1초63 차이. 무려 세 번이나 트랙 레코드를 경신했다.

한국이 빙상을 제외한 종목에서 처음 따낸 메달이다. 윤성빈은 그 시작을 금메달로 장식했다.

 

▲ 윤성빈이 16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1인승 3차 레이스를 마치고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성빈이 스켈레톤에 입문한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2012년 신림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성빈은 남들과 다를 것 없는 고3 수험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신경만큼은 남달랐다. 키는 지금도 178㎝지만 서전트 점프로 높이 3m에 달하는 농구 골대를 잡을 정도로 탄력이 좋았다. 각각 배구선수와 탁구선수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덕도 있었다.

이를 눈여겨 본 고등학교 체육 교사였던 당시 김영태 서울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는 윤성빈을 한국 썰매의 선구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에게 추천했다. 한국체대에 썰매 팀 창단을 준비하고 있던 강광배 교수는 윤성빈의 가능성에 주목해 그를 선택했고 윤성빈은 한국체대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스켈레톤을 탄 지 3개월 만인 2012년 9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며 강 교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2012~2013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작은 미약했다. 2012~2013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세계랭킹은 70위에 불과했다. 이때 까지도 월드컵보다 한 단계 아래인 북아메리카컵, 대륙간컵 등에만 나서며 연일 상위권에 오른 윤성빈은 이듬해 랭킹을 22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는 고비가 찾아왔다. 훈련 도중 썰매를 타는 것에 큰 두려움을 호소하며 포기를 외쳤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스켈레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1948년 이후 동계올림픽에서 자취를 감췄던 종목이다. 평균 100㎞가 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특별한 안전장치 없이 트랙을 누벼야 한다. 강광배 교수의 긴 설득 끝에 마음을 다잡은 윤성빈은 2014년 2월 소치 올림픽에 나선다.

월드컵 대회에 나서보지도 않았던 윤성빈은 당당히 16위를 차지했고 이는 동기부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미 윤성빈의 시선은 평창을 향해 있었다.

 

 

2014~2015시즌 월드컵 2차 대회에선 3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워갔고 5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수확하는 등 시즌 랭킹 5위로 도약했다. 대망의 2015~2016시즌. 윤성빈은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까지 넘으며 ‘1강’ 체제 균열을 암시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은메달을 수확했고 생모리츠 7차 월드컵에서도 다시 한 번 우승하며 당당히 두쿠르스의 턱밑인 랭킹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윤성빈은 계속 성장했지만 두쿠르스의 아성을 깨기엔 아직 부족했다. 2016~2017시즌 4차례 월드컵에서 1차 시기에 1위를 차지하고도 2차에서 3위, 4위, 2위 5위로 주춤하며 아쉽게 금메달을 놓치기를 반복했다. 무한한 성장세를 그릴 것이라는 기대가 걱정으로 바뀌었다. 특히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시즌 마지막 월드컵에서마저 두쿠르스에 1위를 내줘야 했다.

올림픽을 반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 윤성빈은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스피드 향상을 위해 몸무게를 15㎏ 가까이 늘렸고 훈련량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결국 올 시즌 두쿠르스와 위치를 뒤바꿨다. 7차례 출전한 월드컵에서 무려 5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당당히 랭킹 1위로 우뚝 섰다. 8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왕좌를 넘겨주지 않았던 두쿠르스는 윤성빈의 기세에 당황했는지 시즌 랭킹 4위까지 추락했다.

결전의 무대는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 스켈레톤은 트랙의 길이와 코스가 가지각색이라 그 어떤 종목보다 홈 이점이 강하게 적용되는 종목이다. 윤성빈은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가 집 같이 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홈 트랙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고 드디어 사고를 쳤다.

부단한 노력으로 한계를 넘어서 또다시 성장했고 완벽한 홈 트랙 분석으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레이스를 펼쳤다. 지금의 노력과 기세대로라면 두쿠르스처럼 향후 10년간 세계 스켈레톤계를 지배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젠 명실공히 윤성빈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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