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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대관식 치른 윤성빈, '비운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 향한 애틋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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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대관식 치른 윤성빈, '비운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 향한 애틋함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8.02.1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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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윤성빈(24·강원도청)이 한국 썰매의 역사를 새로 쓴 경사스러운 날. 우리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를 보이는 나라가 있었다. 썰매 종목의 강국 라트비아다. 한 차례 강산이 변하도록 정상에 자리하던 ‘스켈레톤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는 불운의 아이콘이 된 채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을 씁쓸히 마감해야 했다.

윤성빈은 16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경기에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2개의 은메달만을 차지했던 두쿠르스는 4차 레이스에서 큰 실수를 범하며 총 3분22초31로 4위에 머물렀다.

 

▲ [평창=스포츠Q 안호근 기자] 16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1인승 3,4차 레이스에서 희비가 갈린 마르틴스 두쿠르스(왼쪽)와 윤성빈. 윤성빈은 두쿠르스를 향한 특별함 감정을 표했다.

 

두쿠르스는 ‘황제’라는 칭호가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사나이다.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에서 통산 50개의 금메달을 챙겼고 8년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지켰던 스켈레톤의 권위자였다.

그러나 수식어와는 맞지 않게 그의 뒤에는 ‘불운’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월드컵에선 잘만 나가던 그도 올림픽 무대에선 웃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선 개최국 캐나다 존 몽고메리에 0초07 차이로 금메달을 양보해야 했고 4년 전 소치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홈 트랙에서 승부를 본 러시아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에게 밀려 올림픽 2번째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 윤성빈도 두쿠르스의 아성을 깨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였다. 월드컵 데뷔 시즌을 세계랭킹 70위로 시작한 윤성빈은 22위, 5위에 이어 2위까지 치솟았지만 이듬해 1위로 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켰다. 4차례 월드컵에서 1차 시기를 1위로 마치고도 2차에선 미끌어 지며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심지어 이날 윤성빈이 금메달 쾌거를 이뤄낸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지난해 3월 열린 월드컵에서도 윤성빈은 두쿠르스의 노련한 레이스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럼에도 윤성빈은 스켈레톤을 시작한 이후부터 마음에 품어온 두쿠르스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존경과 경외로 가득찬 마음이었다. 다만 두쿠르스는 달랐다. 그에게 윤성빈은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간절한 꿈을 가로막을 수도 있는 가장 신경쓰이는 경쟁자로 여겨졌다.

 

▲ 마르틴스 두쿠르스가 4차 레이스에서 실망스러운 레이스를 펼친 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두쿠르스의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윤성빈은 올 시즌 한계를 깨며 두쿠르스를 넘어섰다. 7차례 월드컵에 참가해 5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휩쓸며 두쿠르스의 랭킹 1위 자리를 빼앗더니 홈 트랙의 이점까지 장착해 두쿠르스를 압도했다.

두쿠르스는 3차 레이스 50초32의 기록을 내며 2위로 올라섰지만 윤성빈은 50초18로 격차를 1초02까지 벌렸다. 아주 큰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금메달의 주인공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금메달을 차지하고 싶어서였을까. 두쿠르스의 평정심이 무너졌다. 4초68로 빠른 스피드를 보인 두쿠르스는 4번 코스를 돈 뒤 오른쪽 벽에 부딪히며 급격히 흔들렸다. 마지막 주행을 50초76로 마치고 헬멧을 벗은 두쿠르스에게서 착잡함 가득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는 두쿠르스가 아닌 윤성빈의 시대가 왔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 감독도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 스켈레톤은 한국이 최강”이라며 “향후 10년은 윤성빈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성빈의 생각은 달랐다.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두쿠르스에 대한 질문을 받은 윤성빈은 “마르틴스(두쿠르스)는 내가 평소 가장 닮고 싶은 선수였다”며 “그는 여전히 내게 우상이고 스켈레톤계에 영원히 남아 있을 선수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보고 배우고 생각할 것이다. 그의 시대가 갔고 나의 시대와 왔다는 말은 별로(듣기 좋지 않다)”라고 전했다.

두쿠르스도 못 해낸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대업을 이룬 윤성빈이지만 자신의 우상의 씁쓸한 퇴장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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