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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소리 없는 강자' 손완호, 외로워도 남이 안간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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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소리 없는 강자' 손완호, 외로워도 남이 안간 길을 간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2.18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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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셔틀콕 복식 인기 속에 올림픽 첫 남자단식 금메달 숙원 풀기 위해 외로운 험로, 뚜벅뚜벅 전진

[300자 Tip!] 한국 탁구에서 수비의 달인을 꼽자면 단연 주세혁(34·삼성생명)을 들 수 있다. 그는 깎아 치는 타법을 구사하며 수비 전형 선수로서 세계적인 기량을 발휘했다. ‘깍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주세혁은 오랜 시간 한국 남자탁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여기 배드민턴에서 수비로 롱런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그는 바로 한국 남자 단식의 최강자 손완호(26·김천시청)다. 상대의 혼을 빼는 스트로크가 강점인 손완호는 올시즌을 세계랭킹 21위로 시작한 뒤 꾸준히 상승세를 펼치며 세계랭킹 4위까지 올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대가를 인정받았다.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한국선수로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남자 단식 올림픽 챔피언을 꿈꾼다.

[남양주=스포츠Q 글 이세영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손완호는 한국 배드민턴의 소리 없는 강자다. 오랜 기간 세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복식 선수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손완호의 배드민턴 인생 여정은 창원 대방초 3학년 때인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배드민턴부에 들어간 그는 김미성 감독의 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지도를 받았다.

4년 뒤 밀양중 2학년 재학 시절 청소년대표에 발탁된 손완호는 꾸준히 기량을 쌓으며 국가대표 발탁을 노렸고 마침내 2006년 밀양고 3학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 세계랭킹 21위로 올해를 시작한 손완호는 차근차근 랭킹포인트를 쌓으며 세계랭킹 4위까지 뛰어올랐다.

“그 당시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따로 없었습니다. 실력이 괜찮으면 태릉선수촌에 불려갔고 그 안에서 성적이 좋으면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올해 그의 상승세는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시작됐다. 당시 남자 단체전 결승에 진출한 한국은 세계최강 중국과 맞대결을 펼쳤다. 이때 손완호가 남자 1단식에 출전했는데, 엄밀히 말해 그는 대표팀의 필승카드가 아니었다. 상대가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이자 세계랭킹 2위 천룽(25)이었기 때문이다. 코칭스태프 역시 포기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 손완호에게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손완호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2-1 승리를 거뒀다. 특히 첫 세트에서 21-5로 이기는 놀라운 집중력을 선보였다. 손완호가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다섯 시간이 넘은 혈투 끝에 중국을 3-2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한 게 승리의 요인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자주 맞붙어서 상대의 플레이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감만 버리자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비등한 경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지곤 했는데 마음을 비우니 경기가 잘 풀렸습니다.”

비록 이후 단식 8강에서 다시 만난 뒤 0-2로 졌지만 손완호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천적 천룽에 대한 자신감을 충전했다.

이것이 리턴매치에서 승리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달 23일 홍콩오픈 슈퍼시리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천룽을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6연패를 당한 뒤 거둔 값진 승리였다.

“키가 커서 공격적으로 경기를 펼칠 것 같지만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에요. 상대의 공격을 다 받아 넘기면서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스타일이지요. 제가 비슷하게 경기 운영을 하다 보니 저랑 만나면 하기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손완호는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나는 천룽에 대한 데이터를 이미 상당수 갖고 있다. 향후 어디서 만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대 라이벌인 그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홍콩오픈을 이기며 천룽과의 전적은 2승6패가 됐다.

▲ 손완호가 팔 근력을 기르는 운동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혼자 경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강인한 근지구력이 필수다.

◆ 헤어핀, 천룽 무너뜨린 '신의 한 수'

손완호는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하기보다는 끈질기게 받아치며 실수를 유도하는 스타일의 선수다.

반대편 네트 가까이 셔틀콕을 밀어 넣는 헤어핀 기술이 뛰어난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천룽을 이겼을 때 이를 적절히 사용했다.

아시안게임 단체전 세트스코어 1-1에서 마지막 3세트 19-13 리드를 잡은 손완호는 랠리를 주고받던 중 네트 앞에서 회심의 헤어핀을 넣었고 이것이 20번째 득점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승부를 가른 위닝샷이 바로 헤어핀이었다.

이득춘 배드민턴대표팀 감독도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감독은 “손완호의 헤어핀 기술이 좋아졌다. 중요한 순간에 실수만 줄이면 머지않아 정상에 설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확실한 장점을 발견한 손완호는 이제 단점을 보완하려 한다. 그는 “아직 파워가 부족하다. 한 번에 공격을 끝낼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럴 일이 잘 없다”며 “스피드도 지금보다 길러서 상대 공격에 빠르게 대처하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스트로크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리총웨이(32·말레이시아·세계랭킹 1위)의 공격적인 성향을 닮고 싶어요. 경기를 하는 비디오를 보니 움직임이 빠르더라고요. (이)현일이 형의 정교한 샷과 리총웨이의 공격력을 겸비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헤어핀이라는 무기를 요긴하게 쓴 손완호는 21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BWF 슈퍼시리즈 파이널에 초대받았다.

이 대회는 1년 동안 총 12번의 BWF 슈퍼시리즈를 거쳐 상위 8명(조)만이 출전할 수 있는 무대다. 8명이 4명씩 두 조로 나뉘어 리그전을 치르고 각 조 상위 2명(조)의 크로스 토너먼트(준결승)를 거쳐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 한국 최초의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18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온 손완호의 최종 목표다.

◆ "생애 첫 올림픽,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종목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꾸는 최고의 꿈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손완호가 처음으로 출전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느낀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매년 투어 대회에 나가며 경기장 분위기를 익혔지만 올림픽과 일반 대회는 공기부터 달랐다.

“연습장 분위기부터 경기장 분위기까지 모두 그랑프리 대회와 달랐어요. 특히 첫 경기를 치르면서 긴장이 많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왜 ‘올림픽, 올림픽’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모든 관중들이 나에게 집중한다고 생각하니 쉽게 진정되지 않았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결국 자신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손완호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손완호의 각오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단식에서 2004년에 은메달을 딴 게 유일한데, 이후 현일이 형이 두 번이나 목전에서 메달을 놓친 것을 보면서 ‘역시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형이 못다 이룬 꿈을 제가 꼭 이루고 싶습니다.”

손완호는 이미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펼치고 있다. 한국 최초 배드민턴 남자 단식 금메달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 올해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의 영광을 뒤로하고 손완호는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내후년 올림픽을 향해 다시 뛴다.

◆ 복식만큼 단식에도 성원과 관심을

한국 배드민턴은 전통적으로 복식에서 강세를 보여 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박주봉-김문수 조, 황혜영-정소영 조가 남녀 복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낸 한국은 4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혼합복식의 김동문-길영아 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남자복식 이동수-유용성 조가 결승에서 져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김동문-하태권 조가 우승, 이동수-유용성 조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이용대가 이효정과 혼합복식에서 한 조를 이뤄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4년 뒤 런던 올림픽에서 정재성과 짝을 이뤄 동메달을 딴 그는 지금까지 ‘국민 남동생’으로 부상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복식은 1992년 대회부터 끊임없이 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과 201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좌절됐을 뿐 나머지 대회에서는 금맥을 캐며 효자종목의 자존심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단식은 그동안 올림픽 무대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경우가 많지 않다. 방수현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 4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손승모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남자 단식 올림픽 메달은 손승모가 유일하다.

이후 남자 단식 셔틀콕 간판이었던 이현일(34·MG새마을금고)이 2008년 대회와 2012년 대회에서 4강까지 진출했지만 끝내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아직 남자 단식은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손완호는 배드민턴 단식이 복식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단식보다는 복식에서 강세를 보였다”며 “복식 선수들이 잘하다보니 동호인들이 복식에 관심을 쏟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복식보다 단식의 인기가 높은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복식의 인기가 높다. 2008년에 용대가 금메달을 딴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복식만큼 단식에도 관심을 줬으면 한다"는 손완호의 바람이 머지않아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복식이 아닌 단식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해 아쉬움도 있을 법했다. 손완호는 “복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그는 “내가 만약 복식을 했다면 세계 톱랭커까지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남녀 복식과 혼합복식을 가리지 않고 워낙 잘 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웃어 보였다.

“슈퍼시리즈 파이널 출전권을 따면서 관심을 받게 됐는데, 그 관심을 모든 선수들에게 같이 나눠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드민턴 복식뿐만 아니라 단식도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우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한국 최초 배드민턴 남자 단식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손완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취재후기] 인터뷰하는 날, 손완호는 슈퍼시리즈 파이널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배드민턴 대표팀의 태릉선수촌 입소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선수촌에서 제대로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슈퍼시리즈 파이널 대회는 세계 최상위 랭커들이 참가하는 큰 대회다.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에게 규정을 이유로 최상의 훈련 여건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있는 선수에게 예외적으로 훈련장을 사용하게 해주는 규정이 개설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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