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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Guitar]① 시대를 앞서간 창의적 록 기타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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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Guitar]① 시대를 앞서간 창의적 록 기타리스트들
  • 김신일 음악평론가
  • 승인 2014.12.19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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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록(Rock) 음악을 한마디로 딱 잘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록은 강렬한 비트에 사회비판과 저항 정신, 진취적 도전 정신, 젊은이들의 욕구를 실어 샤우트 창법으로 분출하는 대중 음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지난 70~80년대 주류를 이뤘던 하드록, 헤비메탈, 스래시 메탈, 데스 메탈 등의 록 장르는 이런 경향이 특히 뚜렷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두격인 비틀즈의 성공 이래 록 밴드는 보컬, 리드기타, 베이스기타, 드럼의 악기 구성이 정형화되었고 열정적인 전자기타와 드럼 연주는 록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특히 록의 발전과 함께 무대 전면에 나서 현란한 연주를 펼친 기타리스트들은 전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록 기타리스트들은 점차 고도의 테크닉과 퍼포먼스로 무장하며 록 팬들을 사로잡았다. 록과 재즈의 역사를 살찌운 전설의 기타리스트 이야기를 연재한다.

[스포츠Q 김신일 음악평론가] '록 기타리스트' 연재의 첫 번째 순서로 시대를 앞서간 창의적인 록 기타리스트들을 먼저 살펴 보자.

▲ 전설적인 록 기타리스트들의 편집 앨범 재킷. [사진= 스포츠Q DB]

지미 헨드릭스,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가까우니까"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 1942~1970)는 록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구한, 전설적인 왼손잡이 흑인 기타리스트이다.

1960대 말, 그는 포뮬리즘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사회적 동향을 전자기타로 대변하며 록 변혁기를 주도 했다,

그는 공연 도중에 담배를 물고 껌을 씹는가 하면 기타를 부수고 이빨로 물어 뜯는 파격적인 주법과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이러한 문화혁명과도 같은 시대정신은 현 시대의 수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에게 '록기타의 정형'으로 받들게 했다.

특히 그가 창조한 피드백(Feed Back), 와우 와우(Wow Wow) 주법과 선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개방현을 치고 뮤트로 피킹하는 주법은 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정석에 대한 탈피와 록 스피릿의 진정한 실연'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선구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리는 '예술성이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라는 고민 아래, 대중으로서 예술의 진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가상의 마지노 라인을 저마다 갖고 있다.

헨드릭스는 상업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였으며 그 주체가 대중임을 절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진취성과 자유롭고 강한 메시지들이 내재되어 있다.

헨드릭스와 같은 '진정한 비주류가 선택한 창조적 음악의 길'이 바로 예술에 대한 가치 기준의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단순히 시초가 된 파괴적인 플레이와 퍼포펀스만으로 그의 업적을 승화시키려는 게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천곡]

   * Purple Haze

   * Voodoo Child

   * Little Wing

   * Star Spangled Banner

 

제프 벡, 세월을 거스른 살아 있는 전설

제프 벡(Jeff Beck · 1944~)은 록(Rock), 블루스(Blues), 재즈 록(Jazz Rock),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톤과 음악성으로 입지를 다진 영국 기타리스트다.

여러 차례 최우수 그래미 연주상 수상 이력이 있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하였다.

팝가수 로드 스튜어트가 참여한 곡 '피플 겟 레디(People Get Ready)'를 만들어 히트시키기도 했고,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인 '블로 바이 블로(Blow By Blow)'라는 명반을 만들기도 했다. 이 명반은 제프 벡 앨범 중 필자가 가장 애호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제프 벡은 지미 헨드릭스 기타 사운드를 키보드로 모델링하기로 유명했던 키보디스트 '얀 해머'(Jan Hammer)와 조인트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으며, 그외 다양한 뮤지션과 교류하며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프로젝트 음반들을 내놨다.

일반적으로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은 주법과 장르에 있어서 오비일색과도 같다.

스스로 자신의 주법을 '완성'된 것으로 여기다 보면 스스로 하나의 정형을 만들게 되고 그 틀에서 탈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프 벡은 안주하지 않았다. 피크를 버리고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비브라토 암, 볼륨 주법 등으로 전환하며 독특한 그만의 톤을 개척하고 완성했다.

매번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을 아끼지 않았으며 다른 연주자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한 프로젝트 앨범과 에너지 넘치는 공연은 고희를 넘은 그의 나이를 의심케 할 정도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감흥을 얻고 싶어하는 '세월을 잊은 여행자'다. 그가 도전하고 갈구해낸 록 정신은 기타의 영역을 넘어 음악의 본질과 도전정신에 대한 창작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 제프 벡(Jeff Beck) 유투브 동영상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howz7gVecjE

 

잉베이 맘스틴, 손가락에 불 붙는 시대가 도래하다

1980년초, 바로크 메탈의 창시자며 속주 황제인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 · 1963~)이 등장하게 된다.

필자는 1985년, 이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음악 미디어는 주로 LP, 테이프, 라디오가 주요 매체였고 나는 주로 'AFKN'과 '황인용의 영팝스'프로그램을 즐겨듣곤 했다.

'영팝스'를 통해 그가 속한 밴드인 '라이징 포스'(Rising Force)의 1집 앨범 수록곡인 '이카루스 드림 수트 오퍼스 포'(Icarus Dream Suite Opus 4)'가 처음 소개 되었는데, 그의 놀라운 속주와 클래식한 선법은 필자가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다.

잉베이 맘스틴 출현 후, 80년대 록시대는 이른바 '모터핑거 기타리스트'들의 대거 탄생과 함께 '속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맘스틴을 잇는 속주파 기타리스트로는 '토니 맥캘파인'(Tony MacAlpine) , '비니 무어' (Vinnie Moore) , '조 새트리아니' (Joe Satriani), '스티브 바이'(Steve Vai), '크리스 임펠리테리'(Chris Impellitteri) , '누노 베텐코트'(Nuno Bettencourt), '폴 길버트'(Paul Gilbert), '존 페트루치'(John Petrucci) 등이 있다.

록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1980년대의 록밴드들은 과거의 이념을 버리고 보다 팝적인 사운드와 쉬운 멜로디로 대중에게 한 발짝 다가갔으며 음악적 기술이나 사운드에 더 치중하게 되었다.

특히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속주'는 당시의 기타리스트에게 있어서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레벨 올리기'와 비슷한 형국이었다.

음 하나하나에 혼이 깃들지 않아도 단순히 빠르게 연주할 수만 있다면 고수로 인정을 받는(?) 경우도 왕왕 있었을 정도다. 속주는 그후 지금까지 기타리스트 실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점이기도 하다.

그의 존재감은 록기타를 보다 다이나믹하게, 보다 스피드하게 만들었으며 록기타의 가치를 기술적인 부분으로서 한층 높게 만들었다.

맘스틴은 그렇게 연주를 음악의 근본으로 접근하고 완성하여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경외감과 귀감을 갖게 만든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커크 해밋, 스래시 메탈의 제왕 '메탈리카'의 리드 기타리스트

80년대 중반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의 등장으로 인해 헤비 메탈은 보다 더 강력해진 디스토션 사운드(전자기타에서 발생하는 일그러진 소리)로 진화했다.

'슬레이어'(Slayer)의 기타리스트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을 스래시 메탈의 창시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슬레이어와 메탈리카(Metallica)는 거의 동시대를 활동한 밴드였고 누가 먼저 창시했는가를 따지기 어렵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스래시 메탈의 사운드를 완성하고 그 사운드로 전성기를 주도한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인 '커크 해밋'(Kirk Hammett · 1962~)에 포커스를 맞춰 보자.

기타의 기술적인 역량으로만 본다면 커크 해밋보다 잘치는 기타리스트들은 줄지어(?) 있겠지만, 고도의 기술만 가지고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커크 해밋이 기술이 부족한 기타리스트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음악의 개인 취향을 논하기 전에, 이 정도 반열에 오른 기타리스트들에게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그것의 호불호를 가린다는 건 어쩌면 편협한 관점이 될 수도 있다.

커크 해밋이 이룩해낸 스래시 사운드와 그 업적만으로도 여타 기타리스트들의 장점에 상쇄되기 충분하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어쨌든, 메탈리카는 정확한 박자와 철학적이고도 의미심장한 가사를 탁성으로 토해내기도 하며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자주 쓰는 변박을 도입해 강력한 팀워크로 무장한 팀이다.

커크 해밋은 이 밴드에서 강력한 기타 톤과 깔끔하고 직선적인 리프를 보여주며 강하고 묵직한 디스토션 사운드가 핵심이 되는 스래시 사운드의 시발점을 이룩했다.

많은 기타리스트들은 이 기타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이후로 더 강한 사운드를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 '데스 메탈(death metal)'과 같은 장르가 창출되기도 했다.

스래시 메탈 사운드는 록의 반사회적인 거친 본능과 가장 걸맞는 강력한 사운드라고 생각되며 그 창조적 업적을 커크 해밋의 기타 리프에서 느낄 수 있다.

  ☞ 메탈리카(리드 기타리스트-커크 해밋)의 유투브 동영상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2f1Ny74_ou0

 

 톰 모렐로, 기타에 재미와 주법의 영역을 넓히다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톰 모렐로'(Tom Morello · 1964~)는 마르크스 이론에 영향을 받아서 1992년에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을 결성했다.

이 밴드의 1집(앨범 타이틀:Rage Against The Machine)은 미국에서 300만 장이 팔려나갔고 모렐로는 하드코어(Hard Core)계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로 평가 받았다.

2000년도에 보컬인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의 탈퇴로 밴드가 해체된 후, 모렐로는 '오디오 슬레이브'(Audio Slave)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였으며 '프로디지'(Prodigy)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톰 모렐로가 내는 사운드는 기묘하고 특이하다. 힙합에서 나올 법한 턴 테이블의 스크래치 사운드를 기타로 흉내내기도 하고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픽업(정보를 전기신호로 변환해 주는 부품)의 토글 스위치를 사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주법을 만들기도 하며, 각종 기타 이펙터를 가지고 자신만의 사운드를 위한 세팅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이전의 '에디 반 헤일런'(Eddie Van Halen), '스티브 바이' (Steve Vai)가 만들어 낸 그것과는 방향이 다른 다양하고 재밌는 트리키 주법을 시도했다. 이처럼 톰 모렐로는 그만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주법을 완성한 참신한 기타리스트이다.

기타 노이즈 마저 사운드로 승화시키려는 톰 모렐로의 새로운 도전의식과 돋보이는 센스는, 고갈되어 가는 록 기타주법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 넣었다고 평가된다. <계속>

kimshinil-_-@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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