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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막Q] 뮤지컬 '스모크' 이상의 '오감도 제15호'의 재탄생… 매력적인 넘버부터 김종구·박한근·정연 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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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막Q] 뮤지컬 '스모크' 이상의 '오감도 제15호'의 재탄생… 매력적인 넘버부터 김종구·박한근·정연 연기까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8.05.0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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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은혜 기자]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나는 지금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

시인 이상의 ‘오감도’(烏瞰圖) 제15호의 첫 구절이다. 이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마지막 시이기도 하다. 이상의 시는 전형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을 들으며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뮤지컬 '스모크' [사진=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이상의 시에는 그가 느꼈던 쓸쓸함, 혼란스러웠던 정신세계 등이 담겨 있다. ‘박제된 천재’ 이상이 남긴 시는 시간이 흘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의 시 중 ‘오감도 시 제15호’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뮤지컬 ‘스모크’는 초(超), 해(海), 홍(紅) 세 사람의 연기로 무대를 채운다. 바다를 꿈꾸는 해와 그를 돕는 초, 그리고 두 사람이 ‘바다로 가는 마지막 티켓’이라며 납치한 홍. 단순해 보이는 관계지만 극은 이들의 정체를 쉽게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때문에 극 초반에는 이야기가 복잡해 보이고, 인물들의 행동이 선뜻 이해가지 않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은 이상의 시 ‘오감도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은 만큼 그 흐름을 철저히 따라가려 한다. ‘오감도 제15호’ 속 ‘나’는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를 보며 타인으로 인식하고 자살을 권유한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내게 가르친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라며 좌절하기도 한다.

‘오감도 제15호’에서 느껴지는 ‘나’의 고통은 뮤지컬 ‘스모크’의 초와 해, 홍의 모습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해가 만들어낸 인격 중 하나인 초는 폐병, 주변인들의 손가락질 등 쉽게 이겨낼 수 없었던 고통을 모두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죽음을 권유하고 나선다.

 

[사진=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뮤지컬 ‘스모크’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연출은 조명으로 만들어낸 거울신이다. 인물과 인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조명이 거울 역할을 하고, 이를 사이에 두고 배우들은 연기를 이어간다. ‘오감도 제15호’를 완벽하게 재연해낸 장면이다.

조명을 활용한 무대 연출은 구조에서 더욱 빛난다. 하프돔 형식을 차용한 ‘스모크’의 무대는 조명이나 그래픽 영상을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이상의 시를 띄우거나 인물들에게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며 무대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상의 시와 수필을 떠오르게 하는 대사와 넘버의 가사들도 인상적이다. 특히 강렬한 피아노 선율과 어우러지는 ‘스모크’의 넘버들은 해의 정신세계를 대변할 뿐 아니라 그의 고통을 발판으로 탄생한 초와 홍의 이야기를 전하는데도 뛰어난 역할을 한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집중력도 상당하다. 초를 연기하는 김종구는 그 초반 관객들의 시선을 모으는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초 캐릭터를 초반부터 강력하게 어필한다.

박한근은 해를 연기하며 어리숙하고 순수한 모습에서 힘겨워하는 예술가의 모습까지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홍 역의 정연은 초와 해 사이에서 자신의 색과 중심을 잃지 않으며 전개를 이끌어 나간다.

 

김종구 박한근 정연 [사진=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스모크’는 시의 내용을 이용한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매력적인 넘버들을 가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오감도 제15호’의 내용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보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바탕이 없는 관객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러운 전개로 보여질 가능성도 있다. 

시를 모른다면 초와 홍이 대립하는 장면의 초반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 ‘오감도’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시킨 ‘스모크’는 한 사람의 고통 섞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자 예술가 이상이 가진 삶에 대한 열망,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초, 홍, 해의 이야기는 이상의 시와 소설을 만나게 되며 더욱 풍부하게 펼쳐진다.

뮤지컬 ‘스모크’는 오는 7월 1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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