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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영이' 강소라에게 듣는 '미생'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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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영이' 강소라에게 듣는 '미생' 비하인드 스토리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12.26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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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털털한 걸 넘어 터프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영화 '써니'의 리더 하춘화, 선임들의 무시에도 업무로서 능력을 보여주는 '미생'의 안영이까지. '쿨한 여성'을 연기할 때 최적이라는 평을 듣는 배우 강소라(24). '춘화'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같지만, 예쁜 얼굴을 '함부로' 찌푸려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고, "위트사전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는 안영이와 달리 유머도 수준급이다.

"영이를 연기하며 실제 제 성격을 누르느라 힘들었어요. 애드리브가 오면 받아치고 싶은데 꾹 참았죠. 이목구비가 강한 얼굴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과해 보여서, 표정도 많이 눌렀어요.(웃음) 사실 춘화와 영이는 저와 비슷하다기보단 제 동경의 대상이에요. 제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연기하고 싶은 역이죠."

'철벽녀' 안영이와는 다른 강소라에게서 '미생'의 비하인드, 그리고 사람 강소라에 대해 들었다.

[스포츠Q 오소영 기자] '미생'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필리핀 세부로 포상휴가를 가 있던 23일, 강소라는 대신 인터뷰 자리에 있었다. 일정이 꽉 차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려서) 안도감 때문인지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한 번씩 앓는다"는 강소라는 이날도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하지만 쉰 목소리로도 능청스러운 수다를 펼쳐 보였다.

▲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로서의 좀 더 질 높은 고민을 안겨준 고마운 '미생'

강소라는 "'미생'같은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가 한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종방연 때도 눈물을 글썽거리기만 했다는데, 감정에 북받친듯 눈물을 찍어냈다.

"'미생'은 제 눈을 너무나 높여줬어요. 예전에는 대본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하면 이해가 가도록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미생'은 대본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표현을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좀 더 질이 높은 고민을 하게 됐죠. 배우로서 즐거운 고민이었어요."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한 '미생'은 지상파 드라마만큼 인기가 높았다. 원작의 시나리오, 드라마적 연출과 각색, 배우들의 열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린 결과였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미생'의 경우는 회사를 배경으로 촬영하다보니 소속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촬영을 다 마치고 기념으로 영이 책상을 사진으로 찍어놓으려 했는데, 가 보니 이미 그 자리가 다 치워져 있더라고요. 또 울컥했죠."

눈물이 쉽게 멎지 않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던 강소라는 멋쩍게 웃었다.

"시간이 갈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영화를 봐도 눈물을 안 흘리는 스타일이었는데, 이제는 영화 시작하자마자 5분만에 울어요. 그렇게 성격이 바뀌었네요."

▲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 내면 상처 안은 안영이, "친구하면 좋을 캐릭터로 나오길 바랐죠"

'미생' 초반 안영이 캐릭터에는 '완벽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업무적인 면에서 완벽하고 어려운 일이 없어 보였던 안영이는 장그래(임시완 분), 장백기(강하늘 분), 한석율(변요한 분)까지 신입사원 4인방 중에서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였다. 극이 진행되며 영이의 어려움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사원을 반기지 않는 팀원들에게 미움을 받고, 돈을 요구하는 짐과 같은 아버지가 등장했다.

"영이는 내면에 상처를 많이 안은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일은 잘 하지만 인간관계에는 서툰 캐릭터죠. 어린시절 당한 게 많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하고, 자신이 폐를 받는 것도 싫어하죠. 그러다보니 어려운 일과 괸련해 상사에게 고민을 얘기할 법한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하죠."

'미생'의 시청자 중에서는 "여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이를 싫어하는 자원팀 직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 또한 상당했다. 극중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실제 회사를 반영한 모습이 있었다. 강소라는 "자원팀은 보통 프로젝트 기간이 굉장히 길어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4~5년 전의 것까지 설명해주고 가르쳐줘야 한다. 힘든 일이라 잘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아서 여사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극중 안영이는 선임 하대리(전석호 분)의 미움을 받지만, 강소라는 "실제의 나였다면 더 털털하게 다가갔을 거다. 나중에 하대리가 영이를 인정한 것도 여자 동료가 아니라 남성 동료, '우리 팀원'이라는 생각에서 인정한 것 같다. '제가 어떤 점을 고치면 좋을까요', '저는 해외 주재원으로 보내도 도망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먼저 말해봤을 것"이라고 답했다.

▲ tvN 드라마 '미생'에서 '만능 신입사원' 안영이 역을 맡은 강소라.[사진=방송 캡처]

◆ 안영이의 디테일, 세심한 캐릭터 분석과 소품 준비

좋은 드라마는 극 안에서 배우뿐 아니라 조명, 소품 모두가 연기를 한다. '미생' 역시 실제 회사에서 볼 수 있을 만한 소품들이 등장했다. 강소라는 종합상사를 체험하며 실제 사원들의 움직임, 말투, 소품 등에 신경을 써서 봤다.

"실제 그 회사에 안영이같은 분이 계셨어요. 회사에서는 굽 낮은 플랫슈즈를 신는데, 워낙 미팅이 많다보니 늘 책상 밑엔 하이힐을 챙겨두고, 옷걸이엔 재킷을 걸어 놓으셨죠. 눈이 피로할 일이 많으니 안경을 쓰고, 영이는 여사원이지만 책상은 깔끔할 것 같아서 귀여운 소품보다는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한 책상이 좋겠다고 소품팀에 부탁드렸어요."

"'자원팀'이라는 이름이 막연해서 드라마에서 어떤 식으로 자원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세계지도를 많이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영이 장면이 나올 때는 그 나라의 지도나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화면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놨었어요. 아, 이런 게 정말 많은데. 아쉽게도 티는 많이 안 난 것 같지만.(웃음)"

안영이의 머리스타일 또한 캐릭터 표현 중 하나였다. 김원석 감독과의 의논 후 결정된 부분으로, 아들을 바랐던 아버지와 한 집에 살았을 때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숏커트 스타일을 고수했다. 이후 삼정물산에서는 단발머리를,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은 후 원인터내셔널에서는 긴 머리를 묶고 화장을 하는 모습으로 나왔다. 극 후반부에는 머리를 묶지 않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기도 했다.

또한 극중 호평을 받은 '러시아어 연기'의 경우는, 보다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실제 러시아어는 의문문의 마지막의 어조를 높이지 않지만, 한국어에서 질문을 할 때 어조를 높이듯 높여 하기도 했다.

▲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 결국은 우리 모두는 '미생', "회사원의 치열한 일상 알게 됐어요" 

강소라는 원작 '미생'의 팬이었다. '못난이 주의보'를 함께한 임주환의 추천으로 웹툰 '미생'을 보게 됐는데, 일일드라마 촬영으로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이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미생'을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회사에서 정말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 혼자 제가 힘들다고 유난을 떤다는 걸 알았죠."

이는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미생' 촬영 전 실제 종합상사를 경험해 보면서도 깨달은 내용이다. '미생'의 김원석 감독은 "회사 일도 동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 작아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커다랗고 치열한 일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강소라는 '미생'에서 연기하며 이전에 회사원에 대해 생각했던 편견을 깨게 됐다.

"저는 '직장인들은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승진하고, 월급이 오르고,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죠. 그에 비해 저는 작품을 언제 할 지도, 성공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이 선입견이 가장 먼저 깨졌어요. 회사 일은 정말 치열하고, 개개인이 담당해야 할 업무가 많았어요. 특히 종합상사의 경우는 내 이미지가 그 나라에 전해진다는 점에서 부담이 많을 것 같았어요.

회사 일이 마냥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어요. 저는 매니저 분이나 주변 분들께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표현을 많이 하는데, 조직 사회에서는 그런 얘기를 공유하는 것마저 쉽지가 않아 보였어요. 또, 저야 작품을 하고 싶으면 오디션을 보면 되지만, 회사에서는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았어요.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어떻게, 왜 시작됐는지에 대한 기획단계까지는 많이 알기가 힘든데, 이번에 연기하며 기획단계의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됐어요."

또한 극중 오차장(이성민 분)이 술을 마시고 "니들이 술맛을 아냐"고 부르짖고, 속상한 마음을 숨기며 아들에게 "양념통닭 사갈게"라고 답하는 신을 보며, 강소라 역시 회사원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됐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드시고 들어올 수밖에 없는지. 수염을 안 깎은 얼굴로 어린 제게 얼굴을 들이미셨는지, 왜 치킨을 사오시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알게 됐죠."

▲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취재후기] 강소라는 '미생'을 시작하며 "안영이는 차가워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인물이다. 친구하고 싶은 상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했듯 극중 안영이는 표현의 폭은 크지 않지만 신입 4인방과 선임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강소라의 바람처럼 안영이는 친구하고 싶은 상대였지만, 강소라 역시도 친해지고 싶은 상대임은 분명해 보였다. 감상을 말하니 강소라는 차가운 안영이라고 볼 수 없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이, 지금 이 거리라서 그렇지, 더 가까워지면 안 그럴 걸요."

답변마저 능청. 강소라는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실제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을 맡아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표현도 많이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끄럽고 활기찬 인물을 맡아 해보고 싶어요. (임)시완 오빠가 장그래에 자신의 실제 모습을 투영했던 것처럼, 저도 다음 작품에서는 강소라가 더 보이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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