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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모먼트] '1사 만루 KK' 롯데자이언츠 진명호 미소, "흰머리 나고 살 빠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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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모먼트] '1사 만루 KK' 롯데자이언츠 진명호 미소, "흰머리 나고 살 빠져도 좋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8.05.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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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흰머리가 나도 (야구가 잘되니) 즐거워요. 백발이 돼도 좋아요(웃음).”

야구에서 셋업맨은 마무리 투수만큼이나 심리적인 중압감이 큰 보직이다. 늘 팀이 한두 점 앞서 있거나 동점일 때 마운드에 올라가다보니 압박감을 안 가지려해도 생길 수밖에 없다.

2009년 프로 데뷔 후 10년 만에 셋업맨을 처음 맡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우완투수 진명호(29)가 올 시즌 딱 이런 상황이다. 선발과 추격조로는 던져봤는데, 필승조에서 던지는 게 데뷔 이후 처음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진명호는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조원우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 진명호가 롯데의 셋업맨으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최근 8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 중이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8일 LG 트윈스와 2018 KBO리그(프로야구) 잠실 방문경기에서도 그랬다. 이날 팀이 4-2로 앞선 8회말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진명호는 첫 타자 이형종에게 우전 안타를 맞은 뒤 다음타자 오지환을 삼진 처리했으나, 박용택에게 2루타를 맞고 동점 위기에 몰렸다. 후속 김현수를 자동 고의4구로 내보낸 진명호. 팀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다음 나오는 타자들을 잡아야 했다. 한 방이면 역전까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명호는 이런 엄청난 압박감을 이겨냈다. 곧이어 타석에 선 채은성을 포크볼 2개와 슬라이더 결정구로 삼진 처리한 뒤 김용의마저 공 4개로 삼진을 잡아냈다. 진명호의 손을 떠난 마지막 포심 패스트볼은 시속 149㎞가 찍혔다. 공 7개로 위기를 탈출한 진명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그가 뒤에서 잘 버텨줬기에 롯데가 4-2 승리를 거두고 2연승을 달릴 수 있었다. 8위에서 7위로 올라선 롯데는 3위 한화 이글스와 격차를 3경기로 유지했다. 언제든지 중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간격이다.

 

▲ 'KK'를 완성한 '더 모먼트'. 김용의에게 시속 149㎞ 속구를 꽂아 넣은 뒤 포효하는 진명호. [사진=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경기 후에 만난 진명호는 “포수 (나)종덕이가 내 공에 대해서 워낙 잘 알고 있다. 그냥 종덕이가 사인 내는 대로 던졌다”고 운을 뗐다.

삼진을 잡은 두 타자의 볼 배합을 다르게 가져간 것에 대해서는 “첫 타자(채은성)를 삼진 처리할 때는 2스트라이크를 포크볼로 잡았는데, 또 하나를 더 가면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종덕이가 슬라이더 사인을 내더라. 그래서 슬라이더를 던졌다”고 돌아봤다.

김용의를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운 ‘위닝샷’에 대해서는 “전력으로 던졌다”며 웃어보였다.

8회 1아웃 만루 상황에서 ‘KK’. 오랜만에 중요한 보직을 맡았기에 희열을 느끼진 않았을까. 진명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점수를 주면 팀이 패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실점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컸다. 솔직히 더블플레이로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삼진을 잡았을 때는 짜릿했다”고 덧붙였다.

 

▲ 진명호는 지난 4년 동안 수술과 재활, 군 복무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2013년 1군에서 4경기를 던진 것을 끝으로 어깨 수술과 재활, 군 복무(상무 야구단)를 거쳐 온 진명호. 시련과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야구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 시즌 19경기에서 4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1.40을 찍었다. 최근 8경기 연속 무실점이다.

힘들어도 야구가 재미있다고 느끼진 않을까.

그는 “재미…”라며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재미도 있지만 안 나던 흰머리가 나고 살도 너무 많이 빠지더라”고 토로했다. 처음 맡는 셋업맨의 후유증 때문인지 올해 스프링캠프에 갔다 와서 8㎏이나 빠졌단다. 흰머리는 오현택 등 동료들이 뽑아주고 있다고.

“야구하면서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가는 게 처음이다. 1회부터 계속 집중하다보니 몸에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 같다. 셋업맨으로서 마운드에 올라갈 땐 좋은 게 ‘1’이라면 부담감은 ‘99’다. 잘 막고 내려가면 숫자가 반대로 바뀐다. 1년차 셋업맨이기 때문에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흰머리도, 살 빠지는 것도 사라질 거다.”

그러면서 “흰머리가 나도 즐겁다. 내 활약으로 팀이 이길 수 있다면 백발이 돼도 좋다”고 웃어보였다.

 

▲ 진명호는 "아내와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남편,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가족이 진명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19개월 된 아들과 어여쁜 아내가 있는 진명호는 요즘 가족들이 자신의 활약상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게 낙이다.

“가족들이 내 투구를 보고 좋아하는 게 나로선 정말 뿌듯하다”며 웃은 그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아들이 커서 내 지금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아들의 머리 모양으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시즌 진명호는 뒤를 길게 기르는 머리로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받는 팬들의 함성과 스포트라이트다. 선발과 불펜을 오갔던 2012시즌에는 포스트시즌 선발로도 출장했지만 그때와 지금의 느낌은 또 다를 터.

진명호는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잘한 적이 없는데, (환호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저 저라는 선수를 응원해주시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팬들을 생각하며 싱긋 웃어 보인 진명호는 “올 시즌 기록에 대한 목표는 없다. 몸 건강히 1년을 잘 보내고 싶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지난해 필승조였던 박진형, 조정훈이 부상으로 빠진 롯데는 오현택과 더불어 진명호가 제 몫 이상을 해주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프로 데뷔 10년 만에 봄날을 맞은 진명호는 앞으로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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