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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보신각, '청양의 해' 희망의 종소리를 머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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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보신각, '청양의 해' 희망의 종소리를 머금다
  • 유필립 기자
  • 승인 2014.12.30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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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는 책에서나 보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는 항상 우리와 마주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소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가던 길, 또는 몇 백미터만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기회가 되는 대로 휴대폰 앵글에 담아 보고자 합니다. 굳이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안내판이나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꽤 많은 역사적 사실과 지혜, 교훈과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포츠Q(큐) 유필립 기자] ‘청마(靑馬)의 해’도 이제 40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희망을 안고 시작했던 2014년이었지만 세월호 참사 등 공분을 터뜨리게 한 사건사고가 줄을 이었고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도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는 힘겨운 한해였다.

하지만 이제 고해(苦海)같았던 갑오년이 끝을 보이고 있다. 거칠었던 파도도 잔잔해지고 푸른 하늘 아래 평온한 바다가 펼쳐지기를....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2015년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을미(乙未)’년 새해는 말띠 해 중에서도 60년마다 돌아오는 ‘청양(靑羊)의 해’라고 한다. 하루 반나한절 후면 ‘푸른 양떼’가 우리를 마중한다고 생각하니 마음만으로도 평안해지는 듯하다.

양은 예부터 온순하고 부드러운 성격, 배려와 융화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순수하고 친철하며 인정이 많다. '청색'하면 순수함, 맑음, 깨끗함, 젊음 등 싱싱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물론 양도 한번 화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고, 청색에는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도 있다.

‘쳥양’이 행운과 복의 상징이라고 하니 새해가 한껏 기대된다. '청양'이 새해에는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감싸주고 부조리나 부도덕에는 가차없이 화를 내며,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 순간, 대한민국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종로에 위치한 ‘보신각(普信閣)’이다. 12월 31일일 밤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올해도 보신각 주위에는 많은 시민이 모일 것이고, 33번의 타종소리에 저마다 이루고 싶은 소원들을 담을 것이다.

'세상을 비추는 보신각종' 낮에는 그늘져 잘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조명으로 인해 종이 뚜렷하게 보인다. 1985년에 새로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1년 전, 2013년이 저물고 2014년이 밝아오던 때에도 이곳에는 10만여명(경찰추산)이 모여 새해 소원을 빌었다. 올 한해 그들의 소망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2015년 새해는 우리 민족에게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제야의 종소리’는 우리 민족에게 더욱 뜻깊고 남다른 감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보신각의 위치를 잘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신각 공원은 종로 1가 사거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에 접해 있다.

보신각은 조선시대에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과 화재 같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종이 걸려 있던 곳이다. 원래는 종루 혹은 종각이라고 불렸지만 조선 마지막 임금인 고종 때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보신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396년(태조 5)에 종루를 짓고 도성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종을 쳐서 알렸다. 새벽에 치는 종을 '파루(罷漏)'라고 불렀는데 오전 4시 33번 타종하면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 8문을 열었다. 저녁에는 인정(人定)이라고 해서 오후 10시에 28번을 타종하면 도성의 문이 일제히 닫혔다.

태조 때 지어진 종루는 원래 인사동에 있었지만 태종 때 지금의 종로로 옮겨졌다. 지금의 보신각은 세종 때의 건물 규모를 따라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누각 건물로 지어졌다.

 

 

 

 

 

태조 4년(1395)에 만들어진 원래의 종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세조 14년(1468)에 서거정 등이 만들어 원각사(圓覺寺)에 두었다가 광해군 11년(1619)에 보신각으로 옮겼다. 그러나 몸체에 금이 가서 1985년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보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보신각에 있는 종은 1985년에 새로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보물 제2호'의 정식 명칭은 ‘옛 보신각 동종’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으로,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한 보신각 타종행사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부터 시작됐고,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와 삼일절 기념 보신각 타종행사는 1953년부터 이뤄졌다.

최근에는 어린이날 타종행사 등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보신각 타종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때는 33번이 아닌 12번 종을 친다.

 

 

 

 

 

33번을 치는 것은 불교와 관계가 있다. 불교에서의 수호신인 제석천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三十三天)에게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무병장수, 평안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원래 '제야(除夜)의 종'은 '섣달 그믐날 밤' 어둠을 걷어내는 것, 즉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석(除夕) 또는 대회일(大晦日)에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각 사찰에서 108번의 타종을 하던 불교식 행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양의 해를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2014년 한해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고통과 번뇌는 모두 사라지고 희망과 행운만이 남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보신각 공원 자리는 1919년 3월 독립선언과 광복 이듬해인 3·1절 기념행사의 현장으로서 민족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척화비도 있었다.

척화비는 19세기 후반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이 서양인의 조선침투를 방어 격퇴시켰다는 의미로 전국 주요지역에 세운 기념비였다

 

 

 

'청양의 해'인 2015년 새해는 복을 가득 안은 밝은 빛이 온 누리를 비췄으면 좋겠다.

보신각 오른쪽 건너편에 종로타워빌딩이 마주하고 있다. 타워를 감싸는 눈부신 햇살이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새해의 희망을 전해주는 듯하다.

 

philip@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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