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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프로 최고령 '젊은 오빠' 김병지 '굵고 길게, 또 다르게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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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프로 최고령 '젊은 오빠' 김병지 '굵고 길게, 또 다르게 사는 법'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1.05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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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사랑 먹고 프로스포츠 최고령 신화…시련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모두 과정일뿐"

[300자 Tip!]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을 들라고 한다면 차범근(62) 전 대표팀 감독부터 시작해 박지성(34)까지 여럿 있다. 이 가운데 현역 선수로 뛰는 '전설'이라고 한다면 단연 김병지(45·전남)를 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김병지는 각종 기록을 갖고 있다. 1998,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한 수문장으로 K리그 최초 골키퍼 득점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24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남들보다 '굵고 길게'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지난해 11월 22일 귀화 수문장 신의손이 세웠던 역대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44년 7개월 9일)을 44년 7개월 14일로 넘어섰기에 올해부터는 뛰는 것 자체가 신기록이 된다. 이와 함께 통산 700경기 출장에 21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 김병지는 벌써 올해로 만 45세다. 1992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데뷔 동기는 물론이고 후배들까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올해도 전남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허허, 제가 인터뷰할 것이 뭐 있다고."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에서 만난 김병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2014 K리그 클래식에서 38경기에 모두 출전한 그는 말 그대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38경기 개근한 공로를 인정받아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상까지 받았다. 이와 함께 역대 K리그 최고령 출전 신기록까지 써나가고 있는 그는 700경기 출전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직 김병지는 자유계약선수(FA)로 전남과 계약을 갱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 한 재계약이 유력하다. 김병지도 계약을 낙관하고 있으며 동갑내기 친구로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노상래 감독도 김병지의 700경기 출전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김병지는 바쁘다. 비시즌 기간이지만 외부 활동도 해야 하고 2015년도 준비해야 한다. 1992년 울산 현대를 통해 데뷔한 뒤 24번째로 맞이하는 시즌을 보내야 한다. 또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도 앞두고 있다. 2015년 을미년은 그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해가 될 것이다.

▲ 김병지는 어느새 700경기 출전을 바라보고 있다. 2015년 시즌 K리그에서 21경기 출전만 더하면 대망의 700경기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전남이 2015 시즌 K리그 클래식 3위 안에 들어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것이 그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목표다.

◆ "후배들도 더 오래 하라고 응원, 이동국 같은 선수 더 많아져야"

전남은 지난해 12월 29일 전북 현대에서 뛰던 골키퍼 김민식(30)을 데려오며 선수 보강의 첫 단추를 끼웠다. 이 얘기를 하자 김병지는 "제가 오라고 한거예요"라고 한다.

김병지가 지난 시즌 38경기에 모두 뛸 수 있었던 것은 바꿔서 말하면 김병지를 넘어설만한 후배 골키퍼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전임 하석주(47) 감독의 배려가 아니라 김병지만한 골키퍼를 찾을 수가 없었다.

소속팀에 '경쟁자'가 없는 김병지로서는 새로운 후배 골키퍼가 필요했다. 주전 경쟁을 해도 좋고 경험을 축적하고 육성하는 것도 좋았다. 자신을 뒷받침할만한 선수가 필요했고 김민식을 꼽았다.

"민식이에게 전화를 걸어 '형이 현역을 뛰면 얼마나 뛰겠냐. 여기 와서 형과 함께 뛰자'고 얘기했죠."

30대 골키퍼를 데려온 것을 생각한다면 김병지가 골키퍼 장갑을 벗고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김병지도 지난 K리그 대상 시상식 당시 "1년, 잘해야 2년 아니겠느냐"며 자신의 은퇴 시기가 다가왔음을 넌지시 시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병지에겐 지난 시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K리그 클래식 37라운드 상주 상무와 경기에서 신의손을 넘어선 44년 7개월 9일의 최고령 신기록을 썼지만 전남 구단이나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경기 당일 김병지의 대기록 작성 사실을 알지 못했다. 흔한 꽃다발도 없었고 전광판 축하 메시지도 없었다.

▲ 김병지는 아직까지 욕심이 많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주름이 잡혀있지만 마음만큼은 아직 젊은 소년이다. 프로 데뷔 이후 단 한번도 담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을 정도로 몸관리도 철저하게 한 것이 그가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비결이다.

그래도 김병지는 그 아쉬움을 일단 뒤로 물렸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현역 최고령 선수인 그는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며 올해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일본에 '지천명' 또는 이와 가까운 나이인 일본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투수 야마모토 마사(50·주니치 드래곤즈)와 J리그의 전설 미우라 가즈요시(48·요코하마 FC)가 있다고는 하지만 김병지 역시 이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40대 중반 나이에도 아직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옛날 같으면 40대의 나이라면 손자 볼 나이죠. 그러나 지금은 먹거리도 많아졌고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면서 40대도 몸 관리만 잘하면 20, 30대 못지 않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어요. 결국 자기가 어떻게 몸 관리를 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봐요. 저 같은 경우는 프로 데뷔 후에 단 한번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은 없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오히려 후배들이 좋아해요. 제가 선례를 만들어야만 자신들도 선수로 오랫동안 뛸 수 있다는거죠. 그런 점에서 이동국(36·전북 현대) 같은 선수가 K리그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프로 스포츠계에는 노장 선수가 많아졌다. 프로야구에도 이승엽(39·삼성)이 여전히 불꽃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고 주희정(38·서울 SK) 역시 프로농구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프로배구에도 후인정(41·수원 한국전력)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의 기량을 유지해가며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모두 저만큼은 하지 않았을까요. 모두 존경받을만한 선수들이죠."

◆ 남들과 다르게 걸어온 길, 그래서 더욱 위대한 기록

김병지가 대기록을 써가는 '레전드'가 됐지만 그의 길은 다른 선수들과 좀 다르다. 정통 엘리트 코스라고 말하는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적도 없었다. 키가 작아 마산공고에서는 방출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육상을 해 스피드 하나는 발군이었던 그는 감독의 눈에 들어 축구에 입문했지만 고등학생 때 키가 작은 골키퍼가 필요없다며 내쳐진 것이었다.

하지만 김병지는 축구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병지가 소년의 집을 찾아간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화다. 소년의 집은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학교여서 김병지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열망이 너무 강력해 전학이 받아들여졌다. 부산 소년의 집은 현재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김병지는 축구를 계속 하기 위해 부산 소년의 집까지 찾아갔다. 이후에도 실업팀이나 대학팀, 프로팀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국군체육부대에 들어간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고 결국 1992년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그를 주목하는 팀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입단이 아니라 취직이었다.

"금성산전에서 축구선수로 뛰긴 했는데 실업팀이 아니라 직장축구팀이었어요. 취직해서 직장인들과 함께 축구를 한거죠. 제가 학교에서 선반기능사, 전기용접 등 자격증을 취득해 기계측정장비를 다룰줄 알았거든요. 그러다가 테스트를 받아 국군체육부대(상무)로 갔죠. 지금은 선수들이 어떻게 해서든 병역혜택을 받기 위해 애쓰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갔어요.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진정한 축구선수가 된거죠."

그는 상무에서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1991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에서 7년만에 우승했을 당시 최우수상(MVP)을 받았다. 최우수 골키퍼상이 아닌 명실상부한 최고 선수가 됐다. 국민은행과 결승전에서 손에 땀을 쥐는 대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10-9로 이긴 덕이 컸다.

이후 그는 1992년 드래프트에서 추가지명으로 울산의 지명을 받았다. 드래프트 현장에서는 지명을 받지 못했다가 뒤늦게 울산 구단이 '아직 김병지가 남아 있느냐'고 문의했고 지명받지 못했음을 알게된 뒤 데려왔다.

그러나 그에게 울산 구단은 최고의 팀이었다. 차범근 감독과 함께 조병득(57) 골키퍼 코치가 있었기 때문. 여기에 대표팀 수문장 최인영(53)까지 있었다. 조병득 코치도 현역으로 뛰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대표 골키퍼 출신이었다.

"차범근 감독님과 조병득 코치님은 제게 은인과도 같죠. 그때 울산에는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제가 아직도 존경하는 최인영 선배님이 계셨어요. 하지만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저를 종종 기용하곤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천운을 타고난 것 같아요. 당대 최고의 선수셨다가 은퇴한 감독님에 멕시코 월드컵에서 골문을 지켰던 코치님과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배님이 계셨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데뷔한 그였기에 K리그 최고령 출장 기록 달성과 700경기 출전을 앞두고 있는 기록은 더 위대해 보인다.

▲ 김병지는 울산 현대에서 많은 은인을 만났다고 털어놓는다.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골키퍼였던 조병득 코치가 있었고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 골키퍼를 맡았던 최인영이 선수로 뛰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존경하는 세 사람 덕분에 자신이 성장했다고 털어놓는다.

◆ "수많은 시련, 그것은 좌절 아닌 과정이었다"

김병지가 A매치에 데뷔한 것은 20년 전인 1995년 6월 5일이었다.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을 통해 골문을 지켰고 1-0으로 이겼다.

그러나 김병지는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한 탓인지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갖고 있다. 1990년대 한국 축구의 참패 순간에 그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1996년 이란과 아시안컵 2-6 패배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 0-5 패배였다. 모두 그가 골문을 지켰다.

한 번의 참패도 견디기 어려울텐데 두 번이나 대량실점했다면 웬만한 선수들은 마음에 깊은 내상을 입어 다시 골키퍼 장갑을 끼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김병지는 '멘탈갑'이었다. 시련과 슬럼프는 그저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제가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제로에서 시작한 선수예요. 그랬던 선수가 대표팀 골키퍼까지 됐다면 80, 못해도 70까지 올라갔다고 봐야겠죠. 대량실점하는 시련은 고작 해봤자 5, 6 정도 떨어진 것에 불과해요. 0에서 시작한 선수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좌절할 것은 아니죠."

이후 그에게 큰 시련은 두 번이나 더 찾아왔다.

거스 히딩크 감독 취임 후 아직도 팬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플레이로 제대로 '찍혔다'. 홍콩에서 열렸던 구정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페널티지역을 벗어나 플레이를 하다가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난 것이었다.

"그때 제가 감독님의 마음을 너무 몰랐던 거죠. 취임 초기로 선수들을 휘어잡을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제가 그런 플레이를 하고 말았죠. 저는 본보기가 됐고요. 이후 대표팀을 들락날락거렸습니다. 대표팀에서 제외됐다가 또 막상 K리그 경기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치니까 다시 기용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왔다갔다 하다가 한일 월드컵에서 막상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된거죠."

▲ 김병지는 멘탈갑이다. 1990년대 한국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당했던 대표적인 참패 때 골문을 지켰다. 이란과 아시안컵 2-6 패배와 네덜란드와 프랑스 월드컵 0-5 패배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련과 슬럼프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후에도 몇차례 더 시련이 찾아왔지만 이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2008년에도 김병지에게 시련의 시절이었다.

허정무(62)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다시 한번 대표팀의 수문장을 맡았다. 3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1월 30일 치러졌던 칠레전에서 허리 부상으로 전반만 치르고 나왔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당시 모두가 제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했어요. 저도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였고 가족들도 은퇴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더군요. 결국 이겨냈고 지금까지 왔네요."

김병지의 대표팀 경력은 칠레전을 마지막으로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전남의 주전 수문장이다.

◆ "선수들은 팬들과 스킨십 주저하지 말아야"

김병지는 K리그의 최고참 선수답게 후배들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이 가운데 선수들이 좀더 팬서비스로 무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선수들의 팬들에 대한 서비스는 최근 프로 스포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새해들어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 구단은 12개팀 가운데 가장 적은 관중동원력을 만회하기 위해 선수들의 팬서비스를 연봉에 반영하겠다고 나섰다.

"경기장에 오시는 팬들은 우리를 보러온 손님들이예요. 집에서 편안하게 TV 시청하는 대신 직접 경기장에 와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겁니다. 그런데 경기를 뛰는 90분만 보여주고 끝난다는 것은 팬에 대한 서비스 정신 부족이 아니까요. 관중, 팬들과 좀더 가까워져야만 팬들도 경기장을 더 즐겨찾지 않을까요. 그래서 평소 후배들에게도 팬들과 스킨십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또 구단들 역시 선수들의 팬들과 만남을 마케팅으로 이어줘야만 관중수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날 겁니다."

이 때문인지 김병지는 팬들과 소통이 활발한 편이다. 그의 팬들에 대한 어필은 프로 초기부터 있었다. 그가 데뷔 시절 말총머리 또는 꽁지머리를 하고 머리 염색까지 한 것 역시 '프로선수는 팬들에게 어필을 해야 한다'는 평소 자신의 철학 때문이었다.

예전 경남FC에 있었을 때는 K리그의 스폰서인 현대오일뱅크의 주유소에서 기름 넣은 것을 인증하면 친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증정하기도 했다.

"처음 이런 이벤트를 계획했을 때 아내(김수연 씨)가 그렇게 해야하느냐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내 통장에 돈을 넣어주는 사람은 바로 팬들이다. 그런 팬들을 위해 내가 돈을 써서 팬서비스를 한다면 통장에 돈이 더 많이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어요. 지금은 아내도 내 결정이 맞다고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구단 역시 K리그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에 대해 몸집 줄이기나 예산 감축 등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마케팅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고 충고한다. K리그가 비록 위기에 있지만 분명 헤쳐나갈 길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2014년 K리그 클래식에서 38경기 모든 경기에 출전한 김병지는 2015년에도 전남의 골문을 지킬 전망이다. 자신과 동갑 친구인 노상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김병지 역시 자신의 밝은 미래를 위해 더욱 도약하겠다는 각오다.

◆ "마지막 목표?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나가는 것"

그는 축구를 하는 세 아들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장남 김태백(16)은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3년 정도만 지나면 고등학교 졸업 뒤 K리그에 진출할 수도 있다. 김병지가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부자(父子)가 함께 K리그에서 뛰는 흔치 않은 장면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김병지는 손사래를 친다.

"3년은 좀 긴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대학은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을 가면 조금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요. 대학을 나온 뒤 K리그에 가도 늦지 않다고 봐요."

또 차남 김산(13)과 막내 아들 김태산(9) 역시 축구를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병지의 가업(?)을 이을 아들이 있을까.

"태백이나 산이는 키가 좀 작아요. 그래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어요. 그런데 태산이가 키가 큽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반에서 제일 키가 커요. 지금 134cm인데 더 클 수 있다고 하니까요. 골키퍼는 일단 키가 커야하거든요."

그는 2015년 시즌 목표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는 순위에 도달하는 것으로 들었다. 김병지는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아시아클럽컵대회에 1997년에 출전한 적이 있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이었다.

만약 전남이 2015 시즌 K리그 클래식 3위 안에 들거나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을 차지한다면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다. 거의 20년만의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다.

"전남이 충분히 K리그 클래식 3위까지 갈 실력은 된다고 봐요. 실제로 2014 시즌에 선두권에 있기도 했잖아요. 선수층이 얇은데다가 몇몇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나가면서 순위가 떨어진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서인지 2015 시즌을 앞두고 선수 보강에 많이 나설 것 같아요. 노상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선수 영입을 할 것 같아요. 2016년에 꼭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고 싶어요."

[취재후기] 1992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으니 정말 길고 굵은 선수 생활이다. 그와 같은 연도에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간 선수들이 서정원(44) 수원 삼성 감독과 홍명보(46) 전 대표팀 감독, 신태용(45) 현 대표팀 코치 등이다. 굳이 이들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남기일(41) 광주FC 감독, 조진호(42) 대전 감독, 최용수(44) FC 서울 감독, 서정원 감독, 윤정환(42) 울산 현대 감독들이 모두 그의 후배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욕심이 많다. 눈가에는 나이테처럼 주름이 새겨져 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K리그의 젊은 오빠'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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